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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팀킴' 떴다②]개사료 공장 알바, 막노동…컬링 국대의 실상

등록 2021.06.22 06:00:00수정 2021.06.22 13: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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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엔 인력사무소 찾아…생업과 운동 병행

"밥 한번 먹자"도 사치, 돈없어 한 때 운동 포기

개사료 생산 공장에서 일한 박세원(왼쪽) 선수와 온라인 의류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훈련한 이준형(오른쪽) 선수.

개사료 생산 공장에서 일한 박세원(왼쪽) 선수와 온라인 의류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훈련한 이준형(오른쪽) 선수.

[의정부=뉴시스]김도희 기자 =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감동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실업팀 해체로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 주인공이 마트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노장 선수들과 아테네올림픽에서 투혼을 발휘하는 이 영화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핸드볼에 대한 선수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400만 흥행 신화를 썼다.

동시에 비인기 종목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실업팀의 부재가 선수들에게는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경기도컬링연맹 선수들의 삶도 이 영화 못지않다.

비인기 종목인데다 비실업팀으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고 훈련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이 영화 주인공의 삶과 다르지 않아서다.

박세원 선수는 20살에 개 사료 생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퇴근할 때면 코를 찌르는 쾌쾌한 냄새가 온 몸에 배였다.

막내 이준형은 얼마 전까지 온라인 쇼핑몰에서 의류 포장 아르바이트를 했고, 서민국은 드라마 세트장에서 일하며 힘든 훈련을 이어갔다.

정영석과 김정민을 포함해 5명 모두가 비시즌인 여름에는 새벽부터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9시간을 땡볕에서 보냈다.

선수들은 이렇게 용돈이라도 벌어야 부모님께 덜 죄송할 거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서민국(코치 겸 선수)은 "비시즌인 여름에 돈을 바짝 벌어야했는데, 단기간만 일한다고 하면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일용직 건설현장으로 가게 됐다"며 "운동만하는 선수들을 보면 부러울 수 밖에 없다. 일과 운동을 동시에 한다는 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경기도컬링연맹 선수들은 한 달 50~100만원 정도의 부수입으로 운동과 생계를 병행하다 지쳐 1~2년 동안 컬링을 그만두기도 했다.
지난 4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21 세계남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컬링 강국 캐나다를 꺽은 남자컬링 국가대표 경기도컬링연맹. 왼쪽부터 이준형, 김정민, 서민국, 박세원, 정영석 선수.

지난 4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2021 세계남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컬링 강국 캐나다를 꺽은 남자컬링 국가대표 경기도컬링연맹. 왼쪽부터 이준형, 김정민, 서민국, 박세원, 정영석 선수.


현실의 벽은 매번 높기만 했다.

하지만 이들의 발걸음은 어느새 또 컬링장을 향했다.

오직 컬링에 대한 열정과 의지였다. 힘들 때일수록 더욱 이를 악물었다.

마침내 경기도컬링연맹은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기적과 같은 태극마크를 달았다. 버티고 버텨 이뤄낸 값진 승리였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적인 여유는 없다.
 
국가대표지만 비실업팀이라는 현실은 바뀌지 않아서다.

선수들은 돈이 없어 단체 회식은 꿈도 못 꾼다고 했다. 단체복도 없고 전용 차량도 없어 다른 지역으로 전지훈련을 갈 때면 자차를 이용한다.

선뜻 주변 친구들에게 '밥 한번 먹자, 술 한 잔 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동문인 의정부고등학교 컬링부 후배들을 챙겨주지 못한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

김정민(서드)은 "컬링 선수라고 하면 '컬링이 뭐냐'고 되묻는 경우도 많았고,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친구들한테 '내가 사겠다'고 말 할 수 없을 때면 서글퍼졌다"며 "운동에만 매진할 수 있는 실업팀이 창단돼 후배들도 이끌어주고 대한민국 컬링을 더욱 알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선수들은 컬링경기장 대관료와, 식비 등을 지원해준 경기도컬링연맹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또 지난 4월 세계남성컬링선수권대회 당시 캐나다에서 현지 통역을 지원해준 컬링 커뮤니티 '컬링 한 스푼' 덕분에 대회를 잘 마쳤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경기도컬링연맹은 22일 강원도 강릉에서 2021-2022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른다.

이준형(리드)은 "또 한 번 국가대표가 될 수 있도록 자신감을 갖고 매 경기에 임하겠다"며 "국가대표가 돼서 12월 열리는 올림픽 자격경기(퀄리피케이션)에 출전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권에도 도전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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