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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고아 품어준 터키군…수원 '앙카라학교'

등록 2021.06.25 06: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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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1966년 14년 동안 640여 명 전쟁고아 돌본 터키군
2017년 영화 '아일라'로 세상에 알려진 '앙카라학교'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앙카라길·앙카라학교공원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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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터키군이 전쟁고아 보살피기 위해 만든 수원 앙카라학교. (사진=형제의이야기 앙카라학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앙카라학교를 만든 터키군은 내가 지금껏 이렇게 살게 해준 은인들이지.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

6·25전쟁 71주년인 25일 전쟁고아들의 보금자리였던 '앙카라(Ankara)학교'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남수업(75)씨는 터키군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군이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만든 '앙카라학교'에서 6살부터 독립하기 전인 20대 초반까지 살았다.

당시 수원 서둔동 일대에는 부모를 잃고 역 주변을 배회하는 고아가 많았다. 남씨도 그중에 하나였다.

6살이던 남씨는 어머니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피난가던 중 폭격을 맞고 기차에서 떨어졌다. 그렇게 어머니 손을 놓치고 고아가 된 남씨는 아수라장이 된 기차 선로를 따라 걷다가 수원역 근처에서 터키 군인을 만났다.

당시 농촌진흥청 건물에 주둔하던 터키군은 1952년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모아 '앙카라학교'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부대에 천막을 쳐 하나둘 아이들을 거뒀고, 30여 명이 모이자 인근 도축장 건물을 빌려 고아원을 만들었다.

'앙카라학교'는 지난 2017년 영화 '아일라’(Ayla:The Daughter of War)'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영화는 한국전쟁에 파병된 터키군이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5살 소녀를 발견하고, 전쟁과 부모를 잃은 충격으로 말을 잃은 소녀에게 '달'라는 뜻의 '아일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살아가는 내용을 그렸다.

종전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터키군 '슐레이만'과 전쟁고아 '아일라'의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관객에게 전쟁 속에서 피어난 휴머니즘을 느끼게 해준다.

남씨는 훗날 어머니를 만났지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전쟁고아로 살아가던 시절 남씨에게 손을 내밀어준 이들은 터키군뿐이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군인들은 전쟁을 겪은 가엾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갔다. 이들은 한국전쟁 휴전 이후 동두천에 주둔하면서도 앙카라학교에 대한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은 주말마다 부대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동두천에 가서 그들이 알려준 터키군가를 부르고 밴드 공연도 했다.

'앙카라학교'는 휴전 이후 터키군이 한반도를 모두 떠난 1966년까지 14년 동안 전쟁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다. 이곳을 거쳐 간 아이들은 모두 640여 명에 달한다.

남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서도 앙카라학교에서 지내다 취업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앙카라학교는 터키군이 떠난 뒤 수원시에서 관리하다 전쟁고아가 사라질 무렵 없어졌다.

남씨는 '앙카라학교'에 대한 흔적이 역사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가 당시 앙카라학교와 그 역사를 기억하는 산 증인이다. 아무도 우리를 돌봐주지 않을 때, 국가에서도 책임지지 않을 때, 우리를 먹고살게 해준 사람들이 터키군"이라며 "참 고마운 일이다. 우리가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군인들이 악기나 노래를 알려주고, 풍차 모양 놀이기구를 만들어준 기억이 난다. 논뿐이던 곳을 아이들이 다니기 편하게 자갈길을 만들어준 것도 터키군이었다. 이제 내가 사업도 하고 성공해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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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앙카라학교공원'.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시는 지난 2012년 터키군의 인도적 활동을 기리기 위해 권선구 서둔동 서호초등학교 인근 길에 '앙카라길'이라는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 이후 2017년 명예도로명 사용 기한을 2022년10월까지 5년 연장했다.

길 한쪽에는 터키군과 전쟁고아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벽화와 2013년 수원시가 조성한 '앙카라 학교 공원'이 있다.

작은 공원이 마련돼 있지만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앙카라 학교'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전쟁 당시부터 이 일대에 살았던 한 주민은 "터키군이 여기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냇가에서 아이들 목욕시키고, 공부시키고 하는 모습 생각해보면 지금과 똑같이 사람 사는 모습, 친절한 이웃 같은 모습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터키인들이 우리나라에 손을 내밀었던 그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니까 수원에서라도 기리고 기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UN참전국은 모두 22개국(의료지원 6개국 포함)이다. 터키군은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많은 2만1212명이 참전했다. 전투 중 966명이 전사하고, 1155명이 부상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1950년 10월17일 부산항에 도착한 터키여단은 군우리 전투를 비롯해 평양철수작전, 장승천 전투, 사기막 전투, 네바다 전초전 등 한반도 도처에서 수차례 공방전을 거듭하면서 격전을 치렀다.

특히 터키여단은 유엔군의 대규모 위력수색작전인 썬더볼트작전에서 김량장리와 151고지전투, 수리산 전투를 승리함으로써 유엔군의 전체 작전에 크게 기여했다. 1951년 1월25일부터 27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된 용인 김량장리와 151고지 전투에서는 터키군 장병들이 총검에 의한 백병전으로 적을 무찔러 '용감한 터키군'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amb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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