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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전쟁]⑦美·中 무역전쟁 다시 '꿈틀'…'글로벌 대공황 2.0' 뇌관

등록 2021.10.09 07:00:00수정 2021.10.09 15: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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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본질은 패권 경쟁…글로벌 기술·산업 주도권 달려

美, 대중 투자 제한·공급망 의존↓ VS 中, 기술 자립· 내수 확대

"미중 둘만의 무역 전쟁이란 없어…세계 모두가 지는 게임"

[오사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2019.6.29.

[오사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2019.6.29.

[런던=뉴시스]이지예 특파원 = "미국 경제와 노동자,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중대하고 지속적인 피해를 경감해 달라…비생산적 관세를 최대한 빨리 제거하기 위해 중국과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미국 상공회의소 등 30여 개 미 경제단체)

"미중 관세 인상은 세계 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끼치며 양국 기업과 소비자에 큰 부담과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수줴팅 중국 상무부 대변인)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무역 전쟁에 대한 경고음이 요란하지만 양국의 힘겨루기는 한치의 양보가 없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 4일(현지시간) 대중 고율 관세를 유지하면서 동맹들과 힘을 모아 중국의 국가 중심적이고 비시장적 관행을 억제하겠다고 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대중 무역 공세를 이어가면서 공동 전선 전략을 내세워 압박 수위를 한층 높였다. 중국은 미국의 무역 공세에 대해 국제적 영향력과 경제력 약화를 놓고 중국을 희생양 삼으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 정책을 놓고 무역 전쟁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서로 다른 이념이 이끄는 냉전으로 비화했다"며 "현재 미중 긴장은 경제적 현실보다는 상호 불신이 부채질하는 강대국 경쟁과 민족주의에 의해 추동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미중 패권 다툼의 일환이 된 무역 전쟁이 자칫 전면전으로 번지면 1930년대 경제 대공황에 맞먹는 '대공황 2.0'이 세계를 덮칠 거란 우려가 높다.
[서울=뉴시스]2001년 11월 11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중국의 WTO 가입 서명식. (사진: WTO주재 중국대표부)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2001년 11월 11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중국의 WTO 가입 서명식. (사진: WTO주재 중국대표부)  *재판매 및 DB 금지

美 기대한 대로 변화하지 않은 中…이젠 첨단 기술·산업 경쟁

미중 무역 전쟁의 싹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한 공산국가이던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국제 자유무역 체계에 발을 들였다. 그 배경엔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지지가 있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한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를 구축하고 나섰다. 당초 중국의 방향성에 회의적이던 미국은 중국 시장경제 발전을 지켜보며 변화 가능성에 기대를 걸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중국이 WTO 가입을 통해 미국산 상품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유'라는 민주주의 가치 역시 '수입'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중국은 WTO 가입 이후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이자 거대한 신흥시장으로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오늘날 중국은 미국을 추격하는 제2의 경제 대국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서구가 기대하던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하기는커녕 자국식 국가 주도 시장경제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중국의 막대한 산업 보조금, 지적재산권 탈취, 외국 기업들에 대한 차별과 기술 이전 강요는 고질적 문제로 남아 미국을 비롯한 무역 파트너들의 속을 끓였다. 그러나 이미 글로벌 공급망의 '허브'로 자리잡은 중국과 관계 악화를 무릅쓰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미중의 동상이몽은 지난 몇 년 사이 중국의 부활을 주장하는 '중국몽'과 미국 대내외 전략 재정비를 꾀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정면충돌하면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중국은 2015년 저비용의 노동집약형 산업에서 10년내 첨단 제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국 제조 2025'를 선포했다.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와 불공정 관행에 불만이 쌓일대로 쌓인 상황에서 미국은 이를 자국의 글로벌 기술 주도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했다. 영국 채텀하우스는 "세계 2대 경제대국 간의 현 분쟁은 무역 관세나 맞보복 문제를 넘어선다"며 "충돌의 근본적 동인은 글로벌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뉴시스]중국제조2025 로고. (사진: 중국정부포털) 2021.10.7.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중국제조2025 로고. (사진: 중국정부포털) 2021.10.7. *재판매 및 DB 금지

불안한 휴전 속 디커플링 계속…중국 끊어내기 VS 자력갱생

미중의 '팃포탯'(tit for tat·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관세 때리기는 2020년 1월 1단계 무역 합의로 일단 휴전 상태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추가 대중 관세 계획을 취소하고 기존 관세도 일부 철회했다. 대신 중국은 2021년까지 미국산 농산물, 상품, 서비스의 대량 구입과 지재권, 기술 이전 관련 구조적 변화 추진을 약속했다. 이로써 2018년 7월 미국의 대중 관세폭탄으로 촉발된 미중 관세 분쟁은 2년여 만에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는 '불안한 휴전'에 불과하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중국이 올해 8월까지 사들인 미국산 상품은 1단계 합의치의 6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국이 합의를 성실하게 준수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중국은 미국이야말로 대중 규제를 일삼으며 합의를 이행할 조건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맞섰다.

관세 주고받기를 넘어선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경제적 충격 속에 미중의 서로에 대한 반감이 최악으로 치달았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국제 질서 재편 과정에서 우위를 겨루기 위한 상호 견제는 더욱 험악해졌다.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과 류허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부총리가 2020년 1월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중 1단계 무역 합의에 서명했다. 2020.01.16.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과 류허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 겸 부총리가 2020년 1월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중 1단계 무역 합의에 서명했다. 2020.01.16.

미국은 올들어 중국의 소수민족 강제노동을 이유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산 면화와 태양광 패널 재료 수입을 금지했다. 또 화웨이 등 중국 방산·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 금지를 확대하고 반도체, 대용량 연료전지, 희토류, 의료용품 등 전략산업의 대중 의존도 축소를 추진하고 나섰다. 미국 의회는 중국에 맞서 과학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혁신경쟁법안'과 '미국 국제리더십·관여 보장 법안'(EAGLE act) 등 다양한 대중 견제용 법안을 초당파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쌍순환'에 초점을 맞춘 경제5개년(2021~2025년) 전략을 대응책으로 수립했다. 쌍순환은 핵심 기술과 공급망의 자력갱생을 강화하는 '국내대순환'을 통해 내수 시장을 대폭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여기에 '국제대순환'(기존의 수출 주도 성장과 시장 추가 개방)을 병행해 외국 기업들의 대중 의존도를 더욱 키움으로써 중국의 대외 영향력을 강화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내부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공동부유'를 제시하면서 민간 기업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중국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를 한층 심화하는 움직임으로 미중 갈등의 또 다른 잠재적 요인이다.
[워싱턴=AP/뉴시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2021.05.11.

[워싱턴=AP/뉴시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2021.05.11.

미중 무역 전면전은 '루즈루즈' 게임…'글로벌 대공황' 경고

미중 무역전쟁은 양국은 물론 세계에도 '루즈 루즈'(lose lose·모두가 패자) 게임이 될 거란 경고가 빗발친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는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한 양국간 무역 비용 증가는 교역 감소와 소비자 가격 상승, 무역전환(제3국 수입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며 미중 양국의 소비자와 수출업체를 최대 피해자로 지목했다.

미 상공회의소는 전면적 미중 디커플링이 현실화되면 통상, 투자, 인적교류, 연구개발(R&D) 측면에서 미국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특히 항공, 반도체, 화학, 의료장비 산업의 수익 저하와 일자리 감소를 우려했다. 중국에서는 미중 무역 갈등 장기화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정비 움직임까지 맞물리면서 기업과 투자자들의 '차이나 엑소더스'(탈중국)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국제 경제에도 미중 디커플링은 상상하기 싫은 악재다. 냉전 종식 이후 수십년에 걸쳐 '초세계화'(hyper globalization)가 진행되면서 전 세계 생산·소비 활동이 '글로벌 가치사슬'(CVC)로 촘촘히 연결된 탓이다. 캐서린 만 시티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중관계전국위원회(NCUSCR)에 "양자간 무역 전쟁이란 없다. 특정 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 무역 전쟁도 없다"며 "미중 무역 전쟁은 모든 나라와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관세를 통해 보호받는 몇몇 승자가 있더라도 전반적으로 보자면 세계 경기 둔화로 이들 역시 패배자"라고 말했다.

국제경제컨설팅 업체 디퍼런스그룹의 단 슈타인보크 설립자는 '미중 무역 전쟁과 전 세계적 영향'이라는 연구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글로벌 무역 전쟁'을 상정했다. 미중 무역 합의 무산과 추가 관세 부과에 더해 사회, 정치, 군사 부문까지 상호 공격이 확대되면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이로 인한 세계 무역·투자 위축 지정학적 갈등과 뒤엉키면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대공황 2.0'이 확산할 수 있다고 슈타인보크는 경고했다.
[차오저우=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0년 10월 선전특구 설립 40주년을 맞아 광둥성을 방문해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2020.10.13

[차오저우=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0년 10월 선전특구 설립 40주년을 맞아 광둥성을 방문해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2020.10.13

'리커플링' 가능할까…보호주의 떨치고 자유시장 재건 호소

미중 무역전쟁을 모두가 이기는 게임으로 이끌려면 결국 타협이 필요하다.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SR) 대표는 미국이 추구하는 바는 미중 디커플링이 아니라 새로운 '리커플링'(재동조화)이라며 중국과 '솔직한 대화'와 '직접적 관여'를 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중국은 관영 매체들을 통해 타이 대표의 발언은 미중 무역 관계에 '긍정적 신호'라고 호응했다. 올 하반기 들어 미중 정상의 2번째 통화와 고위급 대면 회담이 이어지며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연내 화상으로 첫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중국의 뿌리깊은 불공정 관행은 무역 갈등 해소를 위해 바로잡아야 할 근본적 문제로 지목된다. 중국 정부는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며 추가적인 시장 개방을 재차 약속해 왔다. 2019년 이래 지재권 침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로 처벌을 강화하고, 외국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금지와 내외국 기업 동등 대우를 강조하는 외상투자법도 도입했다. 이런 조치가 실효성 없는 말 뿐인 약속이라는 불신도 여전하다. 채텀하우스는 다만 "중국 정부가 적어도 개념적으로라도 구조 개혁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중 윈윈(win-win·모두가 승자)을 위한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이 점을 활용해 구속력을 가진 검증가능한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론 위기에 빠진 글로벌 자유무역 체계를 재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미국이 보호주의 유혹을 거부하면서 같은 우려를 지닌 파트너들과 공조해 자유시장 질서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채드 바운 PIIE 선임 연구원은 "미국이 단독으로 관세를 부과한다고 (중국의)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보지 않는다"며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인도, 한국 등 핵심 파트너들과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NPR에 말했다. 아울러 미중 갈등과 코로나19 여파로 마비된 WTO에서 구속력 있는 분쟁 해결 시스템을 복구하고 변화한 통상 환경에 맞게 개혁을 추진하는 일 역시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베이징=AP/뉴시스]2011년 8월 당시 중국 부주석이던 시진핑 현 국가주석과 미국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베이징=AP/뉴시스]2011년 8월 당시 중국 부주석이던 시진핑 현 국가주석과 미국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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