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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유물 3건·조각승 색난 대표작 4건, 보물 됐다

등록 2021.10.25 09: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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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데니 태극기 (사진 = 문화재청) 2021.8.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데니 태극기 (사진 = 문화재청) 2021.8.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현주 기자 = '데니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과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조선 17세기 조각승으로 이름을 떨친 색난(色難)이 만든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을 비롯해 '데니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을 포함한 총 7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태극기 유물 3건은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다. 19~20세기 초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문화재다.

'데니 태극기(데니 太極旗)'는 고종의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Owen Nickerson Denny, 1838~1900)가 소장했던 것이다.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가지고 간 것을 1981년 그의 후손이 우리나라에 기증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서울=뉴시스]김구 서명문 태극기 (사진 = 문화재청) 2021.8.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구 서명문 태극기 (사진 = 문화재청) 2021.8.12. [email protected]

학계에서는 이 태극기가 데니의 유품 중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그가 조선에 마지막으로 머문 해인 1890년을 제작의 하한연대로 보고 있다.

세로 182.5㎝, 가로 262㎝로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옛 태극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기 제정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점에서 뜻깊은 사료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는 1941년 3월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1876~1949)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친분이 있던 벨기에 신부 매우사(梅雨絲, 본명 샤를 메우스 Charles Meeus)에게 준 것이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됐다.
[서울=뉴시스]진관사 태극기 (사진 = 문화재청) 2021.8.12.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진관사 태극기 (사진 = 문화재청) 2021.8.12. [email protected]

'서울 진관사 태극기(서울 津寬寺 太極旗)'는 2009년 5월26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된 것으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됐다.

신문류는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신대한', '독립신문' 등 5종으로 1919년 6월6일부터 12월25일까지 발행된 사실로 미루어 진관사 소장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抗日)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특히 왼쪽 윗부분 끝자락이 불에 타 손상됐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린 흔적이 있어 만세운동 당시 혹은 그 이후 현장에서 사용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서울=뉴시스]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사진 = 문화재청) 2021.8.3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사진 = 문화재청) 2021.8.31. [email protected]

조선 후기 조각승 색난의 대표작 4건도 보물로 지정됐다.

색난은 17세기 전반에 활약한 여러 선배 조각승들을 이어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조각승이다. 조각승은 불교조각을 전문하는 승려로, 일군의 조각승 중 으뜸을 '수조각승(首彫刻僧)'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동시대 조각승들처럼 정확한 생몰연대와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관련 기록 등을 통해 1640년을 전후로 출생해 1660년대 수련기를 거친 후 1680년 우두머리인 수조각승이 되어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약 40년 넘게 활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뉴시스]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사진 = 문화재청) 2021.8.3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사진 = 문화재청) 2021.8.31. [email protected]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光州 德林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지금까지 알려진 색난의 작품 중 제작시기가 가장 빨라 그의 일대기에 있어 상징성이 큰 작품이다. 발원문을 통해 수조각승으로 활동한 40대인 1680년(숙종 6년)에 제작했음을 알 수 있으며, 총 26구로 구성된 대규모 불상이다.

수조각승으로서 색난의 현존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작품으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있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의 위상까지 고려하면 상징성과 중요성이 인정된다.

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주요 존상(尊像)의 손실이 없고, 작품성도 뛰어나 17세기 후반 명부전 불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서울=뉴시스]김해 은하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사진 = 문화재청) 2021.8.3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해 은하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사진 = 문화재청) 2021.8.31. [email protected]

'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高興 楞伽寺 木造釋迦如來三尊像 및 十六羅漢像 一括)'은 능가사 응진당에 봉안돼 있는 불상 일괄이다. 1685년 6월 전라도 홍양현 팔영산 능가사 승려 상기가 발원했고, 색난이 수조각승으로서 그의 동료·제자들과 함께 주도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김해 은하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金海 銀河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은 1687년(숙종 18년) 제작돼 김해 신어산 서림사 시왕전에 봉안된 불상이다.

서림사 시왕전은 현재의 은하사 명부전을 가리킨다. 은하사 명부전 존상은 모두 21구로,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귀왕, 판관, 사자, 금강역사 등 거의 완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서울=뉴시스]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사진 = 문화재청) 2021.8.31.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사진 = 문화재청) 2021.8.31. [email protected]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求禮 華嚴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은 1703년 조성된 평균 높이 약 3.3m 대형 불상으로서, 색난의 50대 만년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불상 조성에 있어 숙종을 비롯해 측근 왕실인사들인 인현왕후, 경종, 숙빈최씨, 영조 등을 비롯해 여흥민씨, 해주오씨 등 권세 있던 가문의 인물들도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18세기 초 최대의 왕실불사 중 하나로 꼽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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