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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5월의 광주 마지막 증언도 화해도 없이 떠났다

등록 2021.10.26 17:58:16수정 2021.10.26 21: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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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87년 광주역 유세 돌세례, 88년 광주청문회, 5월 광주진압 등 17년형 선고
아들 통해 최근 3년간 매년 광주 5월 추모화환, 사죄 나섰으나 진정성 의심
발포명령자·군헬기사격·암매장 등 미완의 5·18 과제 증언 기대했는데, 역사의 뒤안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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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한 행사에 참석했다. 뉴시스DB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배상현 기자 = 1980년 5월 광주학살의 책임자 중 한명으로 꼽히는 노태우(89) 전 대통령의 사망소식에 광주는 허탈감에 휩싸였다.
 
 5·18의 진실을 숨긴 채 오만으로 일관하고 있는 전두환(90) 전 대통령과 달리, 최근 3년간 화해 제스처를 보여 마지막 '5·18 진실의 문'이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게 한 노 전 대통령이 끝내 입을 열지 않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신군부의 쌍두마차로 평생 뗄 수 없는 인연만큼이나 '광주 5·18 학살'하면 떠오르는 대명사였다.

 노 전 대통령의 광주역 유세현장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5·18을 겪은 광주의 분노는 1987년 대선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광주 유세에서 폭발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승계할 노 후보는 5·18 피해자에 대한 사죄나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에 대한 언급 없이 광주를 찾았다가 돌세례를 받고 광주역 유세현장을 황급히 빠져 나갔다. 지역감정으로 치부된 이 장면은 호남을 대변하는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을 배제한 3당 합당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보통사람의 시대'를 연 노 전 대통령의 집권기인 1988년 광주 청문회를 통해 미완의 광주의 진상이 그나마 알려지게 됐다. 급기야 같은해 인생의 동반자이자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친구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사의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전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의 5·18특별법에 따라 1995년 12·12 쿠데타와 광주5·18 무력진압 등으로 나란히 구속돼 단죄됐다. 1997년 김영삼 정부때 두 사람 모두 사면됐지만 전두환은 무기징역, 노태우는 17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 두 사람은 광주 5·18과 질긴 인연 속에 다른 행보를 보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까지 회고록에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재판을 받고 있으며 수차례 광주의 재판정에 섰지만, 5·18학살 책임자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고 사과도 없었다.

 반면, 노태우는 장남 노재헌씨를 통해 최근 3년간 매년 국립5·18민주묘지에 추모화환을 보내고 5·18 유가족에게 사죄를 했다.

일각에서는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전 전 대통령과 달리 노 전 대통령의 5·18 화해 제스처는 5·18 군 발포명령자나 군 헬기사격, 암매장 등 미완의 5·18 과제를 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부풀린 것이 사실이다.

 수십년간 병마에 시달린 노 전 대통령이 죽기 전 역사적 진실을 말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증언없이 눈을 감았다. 화해는 제스처에 그쳤고 결국 진정한 화해는 이뤄지지 않았다.

 용서를 구했지만, 결국 광주시민에게 용서받지도 못하고 떠났다. '역사의 죄인'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화해 제스처로 미완의 5·18 진실규명에 기대를 가졌지만, 물거품이 된 것같다"면서 "역사가 그를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raxi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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