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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제2의 전태일은 여자였다…'미싱타는 여자들'

등록 2022.01.18 05:00:00수정 2022.02.14 09: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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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다큐 '미싱타는 여자들' 2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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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감독 이혁래·김정영)은 제2의 전태일에 관한 작품이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또 다른 전태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이들에게 '미싱타는 여자들'은 극 중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제2의 전태일은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여성조합원이었다. 그들이 다 전태일이었다." 이제 영화는 1977년 9월9일 발생한 이른바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사수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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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다소 생소한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앞서 배경을 알아야 한다. 청계피복노조는 1970년 11월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게 계기가 돼 만들어진다. 아들의 못다한 꿈을 이뤄주기 위해 마흔살에 노동운동에 투신한 이소선 여사가 정부를 상대로 투쟁한 결과물이었다. 노조 결성 약 3년 뒤 만들어진 노동교실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숨구멍이었다. 특히 초등학교만 겨우 나와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던 10대 소녀 노동자들에겐 유일한 휴식처요, 피난처였다. 그리고 노동교실 실장이었던 이 여사는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어머니'로 불리며 정신적 지주가 됐다.

노동교실을 기반으로 한 이 여사의 노동운동이 활기를 띄자 당시 정부는 부담감과 위기감을 느낀다. 이 여사 활동에 어떻게든 제동을 걸려고 했던 정부는 1977년 '장기표 재판'에서 이 여사가 판사와 검사에게 호통을 치는 일이 발생하자 그를 법정 모독죄로 몰아 전격 구속, 노동교실도 폐쇄하기에 이른다. 이에 10대 여성 조합원이 주축이 된 노조원 50여명이 당시 청계천 유림빌딩 3층과 4층에 있던 노동교실로 들어가 이 여사 석방과 노동교실 복구를 요구하며 격렬한 농성에 돌입한다. 이게 바로 노동교실사수투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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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타는 여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록(document)이다. 전태일처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태일이라는 상징에 가려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수많은 노동운동가를 새겨두려는 움직임이다. 그리고 노동운동가 이전에 10대 소녀였던 이들의 고달팠던 노동 현장을 기록하기 위한 작업이다. 농성 당시 15살의 나이로 "제2의 전태일은 여자가 돼야 한다"며 윗옷을 벗고 창문에 매달려 1층으로 몸을 던지려고 했던 임미경은 이제서야 자식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공개했다. 이 기록을 통해 환갑의 평범한 중년 여성은 노동운동가로, 참혹했던 한국 노동 역사의 산증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카이빙(archiving)에서 출발했다. 김정영 감독은 2018년 1월 서울시 봉제역사관 디지털 영상 아카이빙을 위해 봉제 노동자 32인을 인터뷰하던 중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 출신 노동자 두 명을 알게 됐고, 그게 영화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당시 평화시장 노동자 1만5000여명 중 80%를 차지한 여성노동자에 관한 기록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걸 알고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평화시장엔 전태일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이혁래 감독이 합류하면서 '미싱타는 여자들'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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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미싱타는 여자들'은 필연적으로 기록에만 머물 수 없는 영화다.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시대의 불합리를 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여성 노동자를 착취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는 과거 우리 사회에 대한 처절한 증언이자 고발이다. 집 안에서 그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긴 채 평화시장으로 내몰렸다. 집 밖에서 그들은 매일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매일 15시간을 일하며 인권을 유린당했다. 1966년 13살의 나이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평화시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신순애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살려고 한 짓이 아니라 죽으려고 한 짓이었던 거야."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사수투쟁에 관한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미싱타는 여자들'은 명백한 페미니즘 영화으로 도약한다. 이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노동운동가 중엔 여성도 있었다는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그 숱한 모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친 여성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우리 사회 최약자라고 할 수 있는 10대 여성 노동자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얘길 하는 것이다. 그들을 인간답게 살게 해주고 꿈을 꾸게 해준 노동교실을 뺏으려고 했을 때, 그들은 노동운동가가 반드시 돼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을 빨갱이로,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매도해 감옥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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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연대에 관한 기록이다. 유난히 숫기가 없어 노동교실 문 앞을 기웃거리기만 하던 이숙희가 여성 조합원 최초 노조 교육선전부장이 된 것도, 악착같이 돈을 모으던 신순애가 조합원을 위해서라면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마다치 않은 것도, 일을 하다가 죽을 같았다던 임미경이 끝까지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같은 고통을 겪으며 함께 싸워나간 동료 노동자가 바로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때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잘 살았어. 지금도 잘 살고 있고."

'미싱타는 여자들'은 이숙희·신순애·임미경이 너른 들판에서 미싱 기계를 돌리는 장면으로 열리고, 이 세 명을 포함해 1970년대 평화시장에서 함께 일한 여성 노동자 10여명이 저항가요 '흔들리지 않게'를 합창하는 것으로 닫힌다. 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항상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일했던 그들을 환한 빛이 있는 밖으로 꺼내어 주는 일이면서 동시에 그때 그 소녀들이 아직도 그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 동료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해준다. 이젠 관객이 제2의 전태일이었던 그들을 기억해야 할 때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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