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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와 맨발의 박상원 허심탄회한 이야기[이 공연Pick]

등록 2022.01.24 05:00:00수정 2022.01.24 05:5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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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상원 콘트라바쓰' 공연사진. (사진=박앤남공연제작소 제공) 2022.01.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상원 콘트라바쓰' 공연사진. (사진=박앤남공연제작소 제공) 2022.01.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하얀 자갈로 둘러싸인 회색빛의 6도로 기울어진 무대, 20㎏이 넘는 커다란 콘트라바스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곧이어 조명이 무대의 끝쪽을 비추고, 그곳엔 뒤돌아있는 한 남자가 독백을 시작한다. 외로운 섬 같은 이곳에서 콘트라바스와 한 남자의 세상을 향한 조용한 투쟁이 펼쳐진다.

2020년 초연 이후 다시 돌아온 연극 '박상원 콘트라바쓰'는 더 깊어진 소리를 낸다. 박상원은 콘트라바스 연주자가 되어 그의 삶, 사랑, 음악을 허심탄회하게 꺼낸다.

"지휘자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있어도, 콘트라바스가 없는 오케스트라는 없죠!" 국립오케스트라 단원인 남자는 가장 낮은 음으로 연주의 밑바탕이 되는 콘트라바스가 오케스트라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라고 강조한다. 콘트라바스를 뺀다면 음악이 파편이 되고 연주자들은 혼란을 겪게 될 거라며 자신만만해한다.

하지만 사실 큰 덩치에도 콘스라바스가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이 불만이다. 오케스트라 맨 끝줄에 서는 콘트라바스, 그 역시 악기와 함께 존재감 없는 연주자일 뿐이라고 토로한다. 객석의 박수도 늘 독주자, 지휘자 차지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박수도 이어지지만, 콘트라바스는 개중 하나일 뿐이다.
[서울=뉴시스]'박상원 콘트라바쓰' 공연사진. (사진=박앤남공연제작소 제공) 2022.01.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상원 콘트라바쓰' 공연사진. (사진=박앤남공연제작소 제공) 2022.01.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인생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과 정반대의 소리를 내는 소프라노 세라를 마음에 두고 있다. 하지만 무대 위 솔로로 돋보이는 그녀는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어느 곳을 가든 콘트라바스가 최우선이 되는 삶이 됐지만, 처음부터 이 악기를 사랑한 건 아니었다. 공무원인 아버지를 거스르고자, 예술을 하는 어머니를 너무 사랑했기에 예술가가 됐지만 돌아오는 사랑은 없었고 공허함만이 남았다.

콘트라바스에 녹아있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우리 인생과도 닮아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 속 콘트라바스처럼, 현실에서 조명받지 못한 채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이들이 많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지만, 그 자존감과 가치는 때때로 시험에 든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가치와 투쟁하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그는 이 시대 소외된 평범한 이들의 자화상이다.

땀에 흠뻑 젖어 90분간 모노드라마를 펼치는 박상원은 한마디로 종합 예술을 보여준다. 초연 당시의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 안경 대신 맨발에 멀끔하고 익숙한 모습으로 선 그는 한층 더 자유로워지며 무대 위를 훨훨 날아다닌다. 기존 무대를 채웠던 의자와 축음기, 전화기 등 소품도 모두 없애 여백을 주는 동시에 집중력을 높였다. 무대 위에는 콘트라바스와 그, 단 둘뿐이다.
[서울=뉴시스]'박상원 콘트라바쓰' 공연사진. (사진=박앤남공연제작소 제공) 2022.01.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상원 콘트라바쓰' 공연사진. (사진=박앤남공연제작소 제공) 2022.01.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콘트라바스를 한 생명처럼 여기며 사랑스러워하다가도 원망하는 등 환희, 절망, 슬픔, 희망 다채로운 감정이 무대에서 변주된다.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관객에게 말을 건네며 환하게 웃고 장난스럽게 다가가고, 반대로 고독함과 서글픔에 울분하고 좌절하는 밑바닥 감정들이 뒤섞이며 깊숙이 묻어놓은 감정들을 툭툭 건드린다.

특히 단조로울 수 있는 모노드라마의 틀을 깬다. 박상원은 무용수 같은 몸짓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춤추며 온몸으로 감정을 분출해낸다. 마지막 절정에 다다라서는 콘트라바스를 직접 켠다. 프로의 실력이 아니지만, 오히려 한음 한음 길고 묵직하게 이어가는 콘트라바스의 소리가 마음을 더 진하게 울린다.

음악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흐른다.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주듯 브람스, 슈베르트, 바그너, 베토벤, 모차르트 등 다양한 클래식 곡과 그에 얽힌 음악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씩 풀어지면서 몰입감을 높인다. 생소할 수 있는 콘트라바스의 역사 등 음악적 지식도 빼놓지 않는다.
[서울=뉴시스]'박상원 콘트라바쓰' 공연사진. (사진=박앤남공연제작소 제공) 2022.01.2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상원 콘트라바쓰' 공연사진. (사진=박앤남공연제작소 제공) 2022.01.2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향수', '좀머씨이야기' 등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세계적인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 '콘트라바스'가 원작이다. 콘트라바스는 국내에서 주로 콘트라베이스로 불리는데 사실 없는 말이라고 한다. 독일권에서 콘트라바스, 영어권에서 더블 베이스로 불리는데 바스(bass)가 영어에서 베이스로 발음되는 점이 혼동을 불러 콘트라베이스가 탄생했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30일까지 공연.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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