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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 최초 판단

등록 2022.05.26 10: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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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 이상 직원들에 성과로 임금 차등지급

1·2심 "특정연령 차별한 것…무효로 봐야해"

대법 "도입목적·불이익정도 등 기준 따져야"

대법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 최초 판단


[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특정 연령부터 임금을 삭감할 이유나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 등이 없는 '임금피크제'는 차별을 금지하는 현행법에 어긋나 무효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내용적 효력을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오전 A씨가 옛 전자부품연구원(현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연구원은 지난 2013년부터 기존 성과급제를 임금피크제 형태로 바꿔 시행했다. 정년을 61세로 유지하되 55세 이상 근로자들에 대해선 성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지급한 것이다.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게 된 A씨는 자신이 이전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게 되자 소송을 냈다.

특히 55세 이상의 직원들에게 성과를 기준으로 임금을 차등지급하는 임금피크제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에 어긋난다는 게 A씨의 주장이었다.    

고령자고용법 4조의4는 사업주가 임금 등을 지급할 때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A씨가 근거로 든 고령자고용법이 강제성을 갖는 '강행규정'에 해당하는지 심리했다.
 
1심은 고령자고용법이 예외사유를 벗어나는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강행규정이라고 봤다.

같은 법 4조의5는 ▲직무 성격상 특정 연령기준이 요구되는 경우 ▲근속기간 차이를 고려해 임금·복리후생에서 합리적 차등을 두는 경우 ▲법에 따라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에서 정년을 설정하는 경우 ▲법에 따라 특정 연령집단의 고용유지·촉진을 위한 지원조치를 하는 경우 등을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원이 도입한 임금피크제는 사실상 55세 이상 직원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이고, 1심은 명예퇴직 제도나 업무량 삭감 등 조치가 있더라도 근로자들의 불이익을 보전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55세 이상 근로자들이 성과가 부족하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실적 달성률이 떨어지는 건 51세 이상 근로자들도 해당할 수 있으므로 55세 이상 근로자만 차별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1심은 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강행규정인 고령자고용법에 어긋나 무효라고 판결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대체로 유지했다.

대법원도 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연령에 따른 차별을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우선 재판부는 연령차별을 당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할 수 있는 점, 구제조치·시정명령이 내려질 때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되는 점 등을 근거로 고령자고용법이 강행규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봤다.

이러한 고령자고용법에선 '합리적 이유가 없는 경우'에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는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대우할 필요성이 없거나, 다른 처우를 제공해도 그 방법과 정도가 적정하지 않은 경우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본부 회원들이 지난 2019년 11월2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임금피크제 지침 즉각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1.21. since1999@newsis.com *기사와 관련 없음.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본부 회원들이 지난 2019년 11월2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임금피크제 지침 즉각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1.21. [email protected] *기사와 관련 없음.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목적의 타당성 ▲적용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삭감에 대한 다른 조치의 도입 여부 및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돈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A씨에게 적용된 임금피크제의 경우에는 연구원이 인건비부담을 완화하고 경영성과를 높이기 위해 도입됐는데, 이는 55세 이상의 특정 연령의 임금삭감을 정당화할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A씨는 임금삭감으로 급여가 대폭 줄어드는 불이익을 입었고, 업무를 줄여주는 등 조치가 회사 차원에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성과연급제(임금피크제)를 전후로 A씨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춰보면 연령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정년을 유지하면서 특정 연령부터 급여를 줄이는 모든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본 건 아니다. 각 사업장에서 도입한 임금피크제의 목적,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보완 조치 등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다른 기업에서 시행 중인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나 하급심에 진행 중인 사건 관련 개별 기업들이 시행하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의 인정 여부는 도입 목적의 정당성 등 기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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