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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파업' 업무방해? 이걸 10년 심리…헌재가 너무해

등록 2022.05.27 14: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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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근거부, 업무방해죄 처벌" 10년만 결론

전합이 11년 전 내놓은 판결과 밀접 관련

판결내용 심판해야 했던 헌재, 법원 의식?

법원 직접 겨냥했던 한정위헌도 감소추세

노사권리 직결돼 장고했나…"속도 높여야"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있다. 2022.05.26.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있다. 2022.05.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김재환 기자 = 헌법재판소가 '단순 파업' 업무방해죄 여부에 대한 판단을 10년 만에 내놓은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사실상 기본법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이자 노동조합원의 파업과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탓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긴 했지만, 최종 판단까지 10년이 걸린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따른다.

대법원 판결이 헌법소원의 계기가 된 만큼, 법원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헌재의 사건처리 지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전날 A씨 등이 형법 314조 1항 등에 관해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대5(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A씨 등이 헌법소원을 내게 된 건 11년 전의 일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은 2010년 3월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직원 18명을 해고하겠다고 알렸고, 이에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인 A씨 등이 반발했다.

이들이 쇠파이프를 들거나 사장실로 몰려가 점거농성을 벌인 건 아니었다. 휴일에 출근해 일하는 특근을 거부하는 등 비폭력 파업, 즉 '단순 파업'을 벌였다.

수사기관은 이같은 단순 파업도 형법 314조 1항에 따른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A씨 등은 항소심 단계인 2012년 2월 업무방해죄가 단체행동권 행사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A씨 등은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았지만 헌재소장이 4차례 바뀌는 동안 헌재의 판단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심리 대상인 형법이 전체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이 되는 기본법적 성격이 있는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대 최장 미제사건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헌재가 대법원 등 외부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심도 무리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011년 판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당시 전합은 전국철도노조 집행부가 출근을 거부한 것 역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대 의견을 낸 것은 고(故) 이홍훈 전 대법관, 김지형 전 대법관 등 5명이었다.

전합은 파업이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업운영에 막대한 혼란과 손해를 입히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구체적 기준을 내놨다.

A씨 등은 이러한 전합 판례의 취지에 따라 유죄를 확정받은 것인데, 헌법소원을 접수한 헌재로선 사실상 '전합의 해석이 헌법에 부합하는지'에 관한 판단을 내려야 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선 법원의 재판을 헌재의 심사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헌재에서 위헌으로 결정된 법이 적용돼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만 아주 예외적인 절차로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
'단순 파업' 업무방해? 이걸 10년 심리…헌재가 너무해


물론 헌재가 법원의 재판을 불가침의 영역으로 뒀던 건 아니다. 과거에는 한정위헌이라는 결정의 형태로 법 조항을 특정하게 해석하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 역시 헌재가 파업 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의 성립 여부를 전합 판례처럼 해석하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최근에는 법원의 재판을 부정한다는 문제의식과 법원에서 헌재의 한정위헌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관행 때문에 한정위헌은 선고되지 않는 편이다.
     
헌재로선 법원과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최종 결정의 형식을 계속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 사건의 경우 근로자의 단체행동권, 기업의 경제활동 자유 등 여러 주체의 기본권이 충돌하고 있는 문제였다. 헌재가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비치지 않으려 장기간 고민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서 법원의 해석이 잘못됐다면 바로잡는 노력을 신속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헌재법 38조는 사건이 접수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헌재가 결정을 내리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기준 접수기간이 180일을 넘긴 사건은 약 1000건에 이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코로나19나 인력문제로 사건처리 지연은 법원도 겪고 있는 문제"라면서도 "국민의 기본권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헌재 사건은 더 빠르게 처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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