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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美 100대 영웅에 선정된 한국산 경주마 아침해 '레클리스'

등록 2022.06.23 10:23:30수정 2022.06.23 11: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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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한국전쟁 당시 美 해병 1사단 배속돼 탄약수송 등 활약

라이프지 선정 '100대 영웅'…정식 하사관 계급장 수여

미 전역 6곳에 추모 동상 건립…영화화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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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한국전쟁 영웅말 '레클리스' (제공=한국마사회)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우은식 기자 = 다양한 스포츠 경기에서 사용되는 트리플 크라운(대삼관)이라는 말은 원래 경마에서 나온 용어다.

148년 전통의 최고 권위 켄터키 더비 그리고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 3개 대회를 모두 석권한 경주마에게 붙여주는 칭호다.

경마의 고향으로 불리는 미국 동부 켄터키주 렉싱턴에 위치한 호스 파크에는 1973년 '대삼관'을 차지한 전설적인 경주마 '세크리테리엇'과 1920년대 활약한 20세기 최고의 경주마 '맨오워'의 동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적인 경주마의 '명예의 전당' 격인 이곳에 한국산 말의 동상이 있다.

◆전설적인 경주마와 함께 동상으로 세워진 한국산 말 '아침해'

지난 2018년 5월12일 호스 파크에서는 '레클리스'라는 이름의 말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레클리스는 어떤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켄터키 더비’의 고장인 이곳 호스파크에 전설적인 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을까.

레클리스는 1950년대 초반에 지금은 없어진 서울 성수동 서울경마장에서 활약하던 제주산 몽골리안 경주마 ‘아침해’라는 우리 말이다.

이 말은 1950년대와 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꽤나 유명한 말이었다. 레클리스는 미 해병대 소속으로 한국전에 참전해 미 역사상 유일하게 동물로서 정식 하사 계급장을 수여받았다.

이날 행사는 이 말이 숨을 거둔지 50주년을 맞아 거행됐으며, 한국전 참전용사 4명이 함께 자리해 이 말의 업적을 기렸다.
 

▲레클리스 기념 사이트 '서전트레클리스(setreckless.com)'에서 소개한 영상물

제주에서 태어나 경주용으로 서울경마장에서 활약하던 ‘아침해’는 1952년 한국 전쟁 당시 미 해병대 에릭 피더슨 중위에게 250달러(현재 가치로 400만원)에 팔렸다.

당시 이 말을 판 한국인은 전쟁속에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여동생에게 의족을 해주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김혁문이라는 젊은 청년이었다.

'아침해'의 범상치 않은 능력을 알아본 피더슨 중위는 이후 이 말을 미 해병 1사단 5연대 대전차 부대에 배속시켜 탄약수송 훈련을 시켰다. 미 해병들은 그의 친구가 돼 주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 배속돼 탄약수송 훈련…용감함 빗대 '레클리스'라고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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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뉴시스] 우은식 기자 =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 '호스파크'에 있는 한국전 참전 영웅말 레클리스의 동상의 모습. 2019.03.14

친근감이 깊어지면서 ‘아침해’는 동료 해병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동료들은 그 용감함을 빗대 ‘레클리스(Reckless)'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기동성이 뛰어난 레클리스는 산악지형에 통신선을 설치하는 임무에 있어서 일반 병사 12명의 몫을 해내기도 했다. 

전장에 투입된 레클리스는 한국전 막바지인 1953년 3월 미군과 중공군의 마지막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미군 1000명과 중공군 2000명이 전사한 치열했던 이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하루 동안 51번을 오르내리며 대전차 무반동포의 포탄를 실어 나르며 맹활약했다.

‘베가스 고지 전투(Battle for Outpost Vegas)’로 알려진 5일간의 이 전투에서 레클리스는 4000㎏이 넘는 탄약을 386회나 실어 날랐다. 총 56㎞에 이르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린 것이다.

레클리스는 전장에서 포탄 파편에 왼쪽 눈 위를 다치고, 왼쪽 옆구리에 찢어지는 등 2차례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고 다시 임무에 복귀해 오히려 부상당한 병사들을 안전지대로 후송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레클리스는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같은 모든 임무를 수행했고 말을 조정하는 기수 없이 스스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레클리스는 철조망 같은 장애물을 피하고, 포탄이 터지면 바닥에 엎드리도록 훈련 받아왔다. 해병들은 레클리스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방탄복을 사용해 보호해주기도 했다.

그의 업적은 2014년 발간된 ‘미국 전쟁영웅 말, 레클리스 하사’라는 책에서 자세히 소개됐다. 이 책은 레클리스 하사 기념재단 이사장인 로빈 허턴이 펴냈다.

◆참전용사 "레클리스는 말이 아니다…미 해병이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하워드 E. 워들리는 “레클리스는 우리의 탄약을 지원해주는 생명선이었다”며 “엄청난 소음과 진동이 요동치는 전장에서 그는 놀라지 않고 견뎌냈다. 그러면서도 무사했던 것을 보면 나는 수호천사가 레클레스를 타고 있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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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클리스 하사관 정식 진급식 (사진=서전트레클리스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허턴 이사장은 저서에서 “레클리스는 식탐이 대단했다. 레클리스는 모닝 커피와 함께 계란 스크램블과 팬 케이크를 즐겼고, 초콜릿 바, 사탕, 전투식량, 코카콜라도 마셨다. 심지어 맥주도 마셨다”며 “저녁에는 군인들 숙소 텐트 안에서 잠을 자는 등 동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1954년 한국전이 끝난 후 레클리스는 미국으로 이송이 추진됐고 수많은 환영 인파속에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왔다. 이 말은 한국전 당시 병장으로 진급한 이래 1959년 미 해병대 하사로 정식 진급했다.

당시 미 해병대 1700명이 도열하고 19발의 예포가 발사된 가운데 진급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미 해군 1사단 페이트 사령관은 이날 레클리스에게 "앞으로는 담요 외에 어떤 것도 등에 싣지 않도록 한다"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며 업적을 기렸다.

◆미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식 하사 계급장 수여…퍼플하트 훈장·대통령표창 받아

레클리스는 한국과 미국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전사자나 부상자에게 수여되는 참전용사의 최고 권위 ‘퍼플하트’ 훈장을 2개나 받았다.

뿐만 아니라 미 국방부 종군기장, 미 해병대 모범근무장, 미 해군 사령관 표창 2개, 한국전 참전 유엔 훈장, 한국전 참전훈장 4개 등 수많은 수훈 표창을 받았다.

2016년7월 영국도 전쟁이나 국가안보에 기여한 동물에게 수여하는 ‘디킨 메달’을 레클리스에게 수여했고, 2019년 11월에는 위싱턴 미 의사당에서 평화를 위해 업적을 남긴 동물에게 수여하는 '용기 훈장'의 영예도 안았다.

특히 1997년 라이프지가 선정한 미국 역사상 위대한 100인의 영웅에 레클리스의 이름이 올랐다. 조지 워싱턴, 애이브리험 링컨, 마틴 루터킹 목사 등과 함께 동물로서는 유일하게 100인의 영웅에 선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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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클리스가 받은 훈장과 수훈 표창들 (사진=서전트레클리스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레클리스는 1960년 11월10일 명예 전역을 하고 캘리포니아주 펜들턴 해군기지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1마리의 암망아지와 3마리의 수망아지를 낳았으며 1968년 5월13일 20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레클리스는 고향인 제주로 돌아오지 않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션사이드 미해병대 팬들턴 기지에 안장됐다.

레클리스의 죽음은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등 미 전역에 관심을 불러모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전쟁 영웅마 레클리스의 전설이 재조명됐다.

◆미 전역 6곳에 추모 동상 건립…레클리스 영화화도 추진

한국전 정전 60주년인 지난 2013년 버지니아주 국립해병대박물관에 동상이 세워졌고, 2016년 팬들턴 해병기지에도 동상이 제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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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난 2018년 레클리스 사망 50주년을 맞아 켄터키주 렉싱턴에 있는 호스파크에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이밖에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있는 국립 카우걸 박물관 명예의 전당, 일리노이주 베링턴힐스 농장, 플로리다주 오카라 세계승마센터 등 미국 전역 6곳에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져 업적을 기리고 있다.

미국 기념사업회에서는 현재 레클리스의 감동 실화를 주제로 한 영화 제작까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에서도 레클리스의 이야기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동상 건립이 추진됐고, 지난 2016년 경기도 연천군 고량포구 역사공원에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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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가 주최하는 마상 뮤지컬 '레클리스' (제공=한국마사회) *재판매 및 DB 금지



◆마사회 2014년 '위대한 영웅' 선정…6월에 강한 아침해 후예들

한국에서도 경주마로서 '레클리스'의 못다한 꿈을 기억하며 2002년에 태어난 한 경주마에 '아침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2015년생의 마명 '돌아온아침해' 경주마도 서울 경마공원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두 마리의 경주마는 특이하게도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에 치러진 경주를 모두 우승해 관심을 모았다.

전쟁 이전 자신의 꿈이었던 한국 경주마로서의 우승 레이스를 반세기만에 자신의 후예들을 통해 실현한 셈이다.

미국 경마계에서도 하사관 레클리스의 이름을 딴 '서전트 레클리스(Sergeant Reckless)'라는 경주마가 활동했었다. 2014년 켄터키더비 경주에서는 마주의 제안으로 영웅 '레클리스'의 추모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전쟁영웅' 레클리스의 원래 소속이었던 한국마사회에서도 2014년 우리나라 말 문화를 빛낸 위대한 영웅으로 아침해를 선정하고 업적을 기렸다.

아울러 '아침해'의 용기와 호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5년부터 뮤지컬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2019년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말 문화공연 '레클리스1953'은 전 좌석이 매진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72주년을 맞는 이 때 레클리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잔잔한 감동과 굴곡진 우리 현대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sw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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