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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나는 마신다, 고로 존재한다”

등록 2022.08.2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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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서울의 한 대형마트 와인코너를 찾은 시민이 와인을 살펴보고 있다. 2022.05.12.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지구의 46억년 역사 중 다양한 생물종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적이 있다. 5억년 전 발생한, 이른바 ‘캄브리아기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다. 인류 문명 6000년 역사에도 비슷한 일이 있다.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300년 정도 지난 BC 800년부터 BC 200년경까지 향후 인류의 정신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상가·철학자·종교 지도자 등 위대한 인물과 사상이 동서양에 걸쳐 한꺼번에 등장한다. 독일의 철학자인 칼 야스퍼스는 1949년 출간한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인류의 지성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 시기를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불렀다.

BC 800년경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가 나타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썼다. 비슷한 시기 인도에서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적 사유로 불리는 ‘우파니샤드’가 쓰이기 시작했다. BC 6세기경에는 마하비라가 자이나교를 정립했고, BC 624년에는 석가모니 고타마 시타르타가 탄생한다.

BC 5세기 이스라엘에서는 성전 중심주의 유대교가 등장했다. BC 570년 그리스에선 피타고라스가 태어나 ‘피타고라스 학파’를 이끌었고, BC 535년경에는 헤라클레이토스가 태어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BC 469년에는 소크라테스가, BC 420년대에는 그의 제자 플라톤이, BC 384년에는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태어난다. 비슷한 시기인 BC 460년경에는 데모크리토스가 태어나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atom)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BC 287년에는 아르키메데스가 태어났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인 BC 551년 노나라에서 공자가 태어난다. 비슷한 시기에 초나라에서는 노자가, BC 479년에는 묵자, BC 372년에는 맹자, BC 369년경에는 장자, BC 280년에는 한비자가 태어나는 등 제자백가의 시대가 열렸다. 상호 교류가 거의 없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놀라운 사상적 전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시기는 후기 고조선과 삼한시대이다.

와인은 8000년전 중앙아시아로부터 시작해 6000년전에는 소아시아, 5000~6000년전에는 미노스 문명이 시작된 그리스의 크레타 섬으로 전래됐다. BC 1500년경에는 미케네 문명이 이를 이어 받았다. 이때 와인은 이미 그리스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고, BC 1300년경에는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가 기록된 신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BC 800년경에는 이탈리아를 거쳐 서유럽으로 전파되고, BC 700년경 그리스는 세계 최초로 와인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 원산지를 표시한다. BC 8세기부터 그리스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트를 중심으로 도시 국가인 폴리스가 형성되었다.

BC 500~400년경에는 ‘심포지아(symposia)’가 성행해 철학이 융성한다. 심포지아는 ‘함께 술을 마시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symposion’에서 유래했다. ‘심포지엄(symposium)’의 기원이다. 참석자들은 와인을 마시고 음악과 춤을 공연하고 사랑과 예술과 철학을 논했다. 14~27명 정도의 참석자들은 7~9개정도의 소파에 앉거나 기대어 밤새 와인을 마시고 토론했다.

‘크라테르’라 불리는 용기에 물과 와인을 희석해 제공했다. 주최자에 따라 그 비율은 달랐지만, 보통은 2:1로 섞었다. 그리스 심포지아에는 여성이 참석할 수 없었으나, 비슷한 시기 이태리 북·중부를 지배한 에트루리아(Etruria)에서는 여성이 자유롭게 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로마로 이어진 심포지엄에도 여성이 참석할 수 있었다.

와인은 심포지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완시키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와인은 토론의 직접적인 주제가 됐다. 철학을 와인의 부산물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술을 마시는 문제는 향후 철학과 종교 및 신학에 있어 중요한 논쟁거리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심포지아에서 와인과 음주에 관하여 많은 토론을 했다. 그의 생각은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각각 기술한 ‘심포지온(향연)’과 플라톤의 ‘파이드로스(Phaedrus)’ 등 여러 책에 남아 있다. 소크라테스는 와인을 좋아했지만 취하여 ‘맑은 정신(소프로신, sophrosyne)’을 잃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술이 세어 아무도 그가 취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테네의 장군인 알키비아데스가 만취한 채 심포지아에 나타나 소크라테스의 주량을 공개적으로 찬양한 적도 있다. 플라톤도 18세가 되기 전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다.

“술을 금할 필요는 없으나 적당하게 마셔 자신의 본성을 잃지 말라”는 가르침은 동서양의 다른 철학자나 종교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공자도 논어 향당편(鄕黨篇)에서 ‘유주무량 불급란(唯酒無量 不及亂)’이라며 술을 얼마나 마시는가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자도 술이 세어 한자리에서 100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도 ‘신학대전’에서 술 마시는 것을 ‘적절하지 않다(unlawful)’고 했지만 ‘적당히’ 마시는 것은 이해했다. 불교나 기독교에서도 술 자체를 명시적으로 금하는 계율은 없다. 술이나 음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신 후의 행동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술을 금하는 이슬람교에서도 그 이유는 동일하다.

후세의 철학자들에게도 와인은 양식이었다. 얼마 전 타계한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와인 애호가인 로저 스크러튼은 “나는 마신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 와인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철학적인 일이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ybb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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