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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4천년 전이나 지금이나…메소포타미아의 와인

등록 2022.10.0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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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조지아의 와인 항아리 ‘크베브리’. (사진=조지아관광청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지아의 와인 항아리 ‘크베브리’. (사진=조지아관광청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남자는 모름지기 책 다섯 수레를 읽어야 한다는 말인데, 지금 보면 책 읽는데 남녀를 가리는 것이 우습다. 아무튼 ‘책 다섯 수레’는 2300년전 장자가 처음 사용한 표현으로, 두보의 시에도 나오는 구절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장자의 시대에는 대나무로 만든 죽간을 끈으로 묶어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책 한권에는 보통 한 수레 분량의 죽간이 필요했다. 오거서(五車書)는 책 다섯 권 정도이다. 서기 105년 중국에서 발명된 종이가 널리 쓰이기 전까지 인류는 기록을 위해 다양한 매체를 이용했다. 대나무, 나무, 나뭇잎, 짐승 뼈, 조개껍질, 동물 가죽, 거북껍질, 암석, 갈대줄기, 점토 등이 대표적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기원전 400년경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을 정복하기 전까지를 일컫는다.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이 시대에 따라 메소포타미아에 존재했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500년경 쐐기 문자를 만들었고 이를 점토에 기록했다. 점토에 쓰인 기록은 19세기에 대부분 해독됐는데 그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나 사회상, 국제관계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와인이나 맥주에 관련된 세세한 기록도 있다. 기원전 2000년경 점토판에도 와인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 지금 얼음도 구할 수 있다. … 그리고 만일 네가 마실 좋은 와인을 구하기 힘들거든 나에게 연락해라. 내가 좋은 와인 좀 보내주마. 네가 타향에서 고생하니 뭐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편지 보내라.” 4000년전 메소포타미아 북부 카르케미시의 아플라한다 왕이 멀리 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다.

친구에게 와인을 가지고 와서 함께 마시자는 내용도 있다. 기원전 13세기 아람 왕국의 아후니 왕자가 친구에게 받은 편지에서는 “은화 10쉐켈어치(현재 가치 12만원 정도)의 와인을 사가지고 내일 여기 바빌론으로 와서 나랑 한잔 하자”라는 내용이 있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4000~3000년경부터 와인을 직접 생산했다. 하지만 와인을 생산한 이후에도 지금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가 위치한 코카서스 산맥 이남 지역으로부터 수입을 계속했다. 조지아의 트리빌시 인근 지역은 기원전 6000년경 인류가 최초로 와인을 양조한 지역이다.

자그로스 산맥은 페르시아만 입구에서 시작해 만을 따라 북쪽의 아나톨리아 반도까지 뻗어 있는데, 자그로스 산맥의 북쪽에 있는 ‘하지 피루즈’에서도 기원전 5400년경 와인을 양조한 유적이 발굴됐다. 이곳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간 고원 지역으로, 우르미아 호수와 가다르 강을 끼고 있어 와인의 양조에 적합하다. 지리적으로도 서쪽에 있는 바빌론과는 500㎞ 정도 떨어져 있는 메소포타미아 평원과 교통이 연결된다.

메소포타미아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그 위쪽에 있는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지역으로부터도 와인을 수입했는데, 기원전 3500년경 이후로는 아르메니아의 비중이 가장 컸다. 카스피해와 산간지역의 육로를 거친 후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통해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으로 보급됐다. 운송거리가 1600㎞에 달하기도 했지만 수익성이 높았다.

토기는 기원전 9000년전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8000년전 조지아의 와인 양조용 ‘크베브리’ 항아리는 보통 300리터를 담을 수 있었으나 수천 리터를 담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 사이의 와인 무역에는 송진이나 밀랍으로 내부를 코팅한 ’카라스’ 혹은 ‘나스파쿰’이라 불리는 1500~3000리터 용량의 대형 암포라가 주로 사용됐다.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3400년경 맥주를 생산했다. 어렵게 들여온 와인은 값이 비싸 상류층이 마셨고 일반 대중들은 주로 맥주를 마셨다. 예외적으로 왕궁에서 일하는 하인에게는 1인당 하루 180㎖, 목수 등 기능공에게는 360㎖의 와인이 지급됐다. 국가적인 축제나 왕이 주최하는 대규모 연회에서도 와인을 마실 수 있었다. 기원전 9세기 아시리아의 아슈르나시팔 2세(기원전 883~859년)가 주최한 10일간의 수도 완공 경축연에는 7만명이 초대됐고, 1만개의 빵 덩어리, 1만 단지의 맥주, 와인 1만 부대가 제공됐다. 기원전 7세기의 아슈르바니팔 왕은 적국 왕의 참수한 머리를 정원의 나무에 걸어 놓고 왕비와 함께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맥주, 와인과 더불어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음식문화도 발달했다. 2019년 예일대와 하버드대의 공동 연구진이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인들이 4000년전 기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레시피 4개를 복원했다. 이 레시피에는 “고기, 물, 잘게 간 소금, 말린 보리 케이크, 양파, 밀크, 부추와 마늘을 으깨서 넣는다”고 기록돼 있었다. 식재료가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그 당시 빵의 종류만 300가지가 넘었다. 색깔에 따라 적어도 다섯 종류, 원료에 따라서는 수십종의 맥주가 있었고, 사람들은 이를 마시기 위해 빨대를 사용했다. 와인에 맥주를 섞기도 했다. 수메리아 여인들은 생계를 위해 술을 양조하고 바를 운영할 수 있었다. 대추가 흔해서 시럽을 만들어 맥주에도 넣었다. 대추로 와인을 빚기도 했다. 이슬람에서도 한때 대추 와인을 허용했다.

몇천년 전 사람들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이 요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이 놀랍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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