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치료포기 없다"…남아공 출신 70대, 한국서 임종한 사연

등록 2023.09.25 11:43:26수정 2023.09.25 13:48:04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남아공 나탈리씨 말기간암으로 의식혼미

서울성모병원서 진료받다가 가족과 이별

[서울=뉴시스]서울성모병원장 윤승규 병원장(왼쪽에서 세번째)과 국제진료센터 옥진주 교수(오른쪽에서 다섯번째),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오른쪽에서 네번째), 故 나탈리씨의 남편과 며느리(왼쪽에서 네번째, 다섯번째)가 지난 13일 행정부원장 이남 신부(맨 왼쪽)가 집전한 교직원 미사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미사를 드린 뒤 본원 로비 성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2023.09.2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서울성모병원장 윤승규 병원장(왼쪽에서 세번째)과 국제진료센터 옥진주 교수(오른쪽에서 다섯번째),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오른쪽에서 네번째), 故 나탈리씨의 남편과 며느리(왼쪽에서 네번째, 다섯번째)가 지난 13일 행정부원장 이남 신부(맨 왼쪽)가 집전한 교직원 미사에서 고인을 추모하며 미사를 드린 뒤 본원 로비 성당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2023.09.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말기 간암으로 고통 받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나탈리(Nathalie M∙세례명 나탈리)씨가 스위스 병원에서의 진료 포기 권유를 거부하고 한국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며 가족과 삶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다.

25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국제진료센터는 지난달 8일 나탈리씨로부터 메일을 받고 옥진주 교수에게 전달했다. 옥 교수는 일차 진료, 비자검진 클리닉 및 여행클리닉 전담 의사, 20여개 주한 대사관의 주치의로 활동 중이다.

메일을 확인한 옥 교수는 바로 나탈리씨의 아들과 통화를 했다. “스위스 병원에서 말기 간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가 의식이 혼미해 대화가 어려운 상태이고,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고 가족들에게 알렸다”는 말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면서 "가족들이 인위적 행위로 죽음을 이르게 하는 ‘치료 포기’를 단호히 거부했고 한국은 간암 치료에 있어 주요 선진국보다 앞서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통화를 마친 옥 교수는 간암 혈관 및 인터벤션 치료의 권위자인 영상의학과 천호종 교수에게 영상자료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탈리씨의 아들로부터 받은 최신 의무기록과 혈액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간암 전문가인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와도 수 차례 의논했다.

나탈리씨는 세균감염으로 인한 패혈증과 간성뇌증으로 인해 의식이 저하된 상태였고 간 기능의 악화로 심한 황달과 복수가 동반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성 교수는 아직 너무 늦지 않았고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옥 교수는 의료진의 판단에 기뻐하며 "아직 희망이 있다"며 현지에 긴급하게 연락했고, 보호자들은 한국에서 치료와 케어를 받기로 결정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돌본다’는 가톨릭 생명존중의 정신이 치료 의지를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문제는 환자 이송이었다. 이송을 준비하던 중 나탈리씨는 갑자기 쇼크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입원하기도 했다. 옥 교수는 스위스의 주치의에게 연락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 후 에어 엠뷸런스 전담 의사에게 이송을 부탁했다. 나탈리씨는 우여곡절 끝에 에어 엠뷸런스를 타고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성모병원에 무사히 도착했다.

나탈리씨가 이송되는 동안 병원은 예측가능한 상황과 여건 등을 고려해 시나리오를 만들어 세심히 점검하고 철저히 대비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 발생과 위기도 염두에 뒀다.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당시 나탈리씨는 황달이 심했고 성 교수와 응급의학과 임지용 교수는 지체 없이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다행히 그날 오후 간 기능 회복을 위한 치료를 시행한 뒤 의식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나탈리씨는 간 기능 회복 치료를 한 지 이틀 후부터 의식이 회복됐고, 일주일 뒤에는 안경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정도로 호전됐다.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면서 의료진은 간암 치료를 계획했다. 하지만 이달 4일 갑자기 폐렴이 오면서 나탈리씨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나탈리씨는 지난 10일 새벽 78세의 나이로 삶을 마무리했다.

 외국인 말기 간암 환자가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한국으로 와 가족과 함께 삶을 마무리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라고 서울성모병원 측은 강조했다.

성 교수는 “해외에서 곧 사망할 것이라고 해 치료를 포기한 환자를 본원에서 치료해 생존을 연장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서 "앞으로도 간암 환자에서 간 기능 보존을 통해 환자들의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올리는 진료를 하겠다”고 말했다.

옥 교수는 “환자가 스위스에서는 의식이 저하돼 가족들과 대화가 어려운 정도였지만 서울성모병원에서 치료받으면서 상태가 호전돼 아들들, 맏며느리, 손녀딸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너무 아름다운 이별을 맞으신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의 남편인 트리베르트(Tribert A)씨는 "서울성모병원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와 보살핌에 감동을 받았다"며 나탈리씨의 이름으로 연구 발전기금 5만 달러를 기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