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만에 세상 나온 윤형근 '빨노파' 기하학적 추상화…국립현대미술관, 최초 공개
1969년 이후 행방 묘연했던 작품
유족이 재작년 작업실 정리하다 발견
과천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서 공개
윤형근, 69-E8, 1969, 면천에 유채, 165×14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침묵의 화가' 윤형근(1928~2007)의 반전이다. 그동안 누리끼리하고 검고 묵직한 그림과 달리 '빨노파' 원색의 강렬하고 밝은 작품이 최초 공개됐다. 54년 만에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이 그림은 마치 '산 작가' 유영국(1916-2002)의 작품 같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16일 과천관에서 개막하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에 윤형근의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작 '69-E8'(1969)을 최초로 공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이 작품은 유족이 재작년 윤형근 작업실을 정리하면서 발견했다. 1969년 브라질 살파울로 비엔날레 출품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이다. 유족은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사진은 있었으나 그간 소재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기하추상 전시를 계기로 이를 발굴하여 수집 제안하고 심의를 거쳐 소장품 목록에 올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최초 공개하는 윤형근 기하학적 추상화 *재판매 및 DB 금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최초 공개하는 윤형근 기하학적 추상화. 윤형근의 사진과 함께 선보인다. *재판매 및 DB 금지
밝은 색감의 윤형근의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작 '69-E8'(1969)은 1969년 제10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이다. 당대에 이루어진 급격한 도시화 및 건축과 미술 분야의 밀접한 관계성은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등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1967년 당시 ‘회화, 조각, 건축의 종합적인 창조’에 기반해 새로운 조형 시대를 여는 것을 목표로, 미술가와 건축가가 참여한 ‘한국조형작가회의’가 창립됐다. 한국조형작가회의 참여 작가 중 건축가들과 지속적으로 연대했던 박서보, 윤명로, 윤형근, 전성우, 조용익, 하종현 등 상당수가 1960~70년대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실험했던 점은 당시 미술과 건축이 형성한 접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특히 윤형근은 김중업이나 김수근 등 당대의 대표적인 건축가들과 교류하며 미술과 건축의 관계성에 주목했다. 박람회의 건축물과 디자인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하학적인 조형과 옵티컬한 원색의 색조다. 전시장 외벽을 각각 색이 다른 다이아몬드 형태의 띠로 장식했고, 박람회 정문에도 이와 같은 형태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당대에 미술가, 건축가, 디자이너가 연대해 활동하는 데 있어 기하학적 추상이 조형적 접점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윤형근은 1970년대 이후 청다색의 어두운 색조에 기반한 표현적인 추상 작품을 주로 제작했다. 윤형근의 1960년대 말 기하학적 추상 작품은 1970년대 이후 그의 대표작이 등장하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윤형근 1960년대 기하학적 추상 작품 〈69-E8〉(1969)이 최초 공개됐다.
*재판매 및 DB 금지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 전시에 유형근 작품을 비롯해 '산 작가' 유영국 등 추상미술가 47인의 추상화 150점을 선보인다.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박서보, 하종현 등 한국 추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기하학적 추상 시기의 작품을 선보이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은 1920년대~1970년대까지 한국 대표 추상미술가 47인의 기하학적 추상 작품 150여 점, 아카이브 100여 점을 출품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더욱 활발한 연구와 논의를 끌어내어 한국 미술의 줄기를 더 풍성하게 키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시대별 주요 양상을 따라 5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이 건축과 디자인 등 연관 분야와 접점을 형성하고, 당대 한국 사회의 변화와 연동되면서 한국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2024년 5월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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