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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어진 봉안한 사찰 안성 '봉업사지', 사적 됐다

등록 2024.06.07 09:25:13수정 2024.06.07 10: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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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동외동 유적'도 사적 지정

[서울=뉴시스] 안성 봉업사지 진전영역 발굴조사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06.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안성 봉업사지 진전영역 발굴조사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06.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국가유산청은 왕의 초상 어진을 봉안한 사찰 '안성 봉업사지'와 삼한·삼국시대 동아시아 해상교류 거점 '고성 동외동 유적'을 각각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7일 밝혔다.

'안성 봉업사지'는 고려 광종(949~975년) 때 왕권 강화를 위해 태조 왕건의 어진을 봉안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에 공민왕 12년(1363년) 왕이 봉업사에 들러 태조 왕건 어진을 알현한 기록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탑만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초기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주변에서 발견된 보물 청동 향로와 청동 북 등에서 봉업사(奉業寺)라는 글자가 확인됐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5차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중심사역과 진전영역 외곽 담장이 확인됐다. 

특히, 진전영역은 중심 건물지와 중정 주변으로 회랑이 배치되는 등 고려시대 왕실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제작 연대, 사명, 지명, 인명 등 60여 종이 넘는 정보가 기록된 명문기와도 출토됐다.

절터에는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과 '안성 죽산리 당간지주'가 있다.

봉업사에서 인근 칠장사로 옮겨진 보물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 주변에 장명사지, 매산리사지, 장광사지 등 고려시대 사찰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국가유산청은 "어진을 봉안한 것으로 전해지는 많은 진전사찰 중에 이처럼 고고학적으로 구조적 특징이 규명된 유적은 매우 드물다"며 " 고려시대 기와 문양의 특징 외에도 봉업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평가했다. 
[서울=뉴시스] 고성 동외동 유적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06.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고성 동외동 유적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제공) 2024.06.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고성 동외동 유적'은 남해안 해양교통 요충지에 있어 삼한·삼국시대 고대 동아시아 해상교류 네트워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이 시기는 한반도 남부 지역 변한 소국들이 주변의 집단들을 통합해 보다 큰 정치체로 발전하는 전환기다.

고성 동외동 유적에서는 기원 2-3세기 외래계 유물로 중국 왕망의 신나라 화폐 '대천오십', 청동거울, 낙랑계 가락바퀴, 수레 부속구인 개궁모, 조문청동기 등을 비롯해 지배계층이 사용하는 청동 허리띠 고리 장식, 일본열도의 야요이계 토기, 광형동모 등이 발견됐다.

이곳은 삼한 고자국에서 삼국 소가야문화권까지 연결된 고성의 생활문화 중심 유적으로, 수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집 자리, 조개무지, 의례와 제사터, 철과 철기 생산 등 당시 해양 거점집단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유구와 유물들도 확인된 바 있다.

구릉 형태 지형을 쌓고 깎아서 계단식 방어시설을 만들고 구릉 정상부의 의례시설, 광장, 주거군과 이 시설들을 감싸는 방어시설로서 환호를 둘렀다.

국가유산청은 "이 방식이 고성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의 정치체 성립과 발전을 보여주는 등 기원 전후부터 6세기 전반까지 성장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복합생활유적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며 "대외교류가 정치체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할 수 있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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