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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 미래 혁신성장을 위한 ‘도전’의 토양

등록 2018.08.02 15: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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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성공률은 한때 98%에 육박하다가 최근 90%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 영국 등에 비해서 연구개발 성공률이 약 3배가량이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높은 연구개발 성공률을 가지는 이유는 ‘실패’를 하면 안 되는 연구문화의 영향이 크다.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실패를 할 경우 사업비 환수 또는 이후 과제책임 제한 등의 제재 조치를 받게 된다. 물론 연구수행 과정의 성실성이 인정될 경우 이러한 제재를 면제해 주는 성실실패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적용률도 대단히 낮을뿐더러 실패한 연구가 후속 연구와 연계되어 새로운 혁신으로 연결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구조이다. 이러다 보니, 연구자들은 가능한 실패하지 않는 연구를 할 수밖에 없고, 도전적 연구를 자처해서 실패를 감수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연구개발은 단순히 구매와 조달을 통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make) 일도 있지만, 대부분의 많은 일들이 창조(create)와 관련된다. 연구개발 관련 통계 및 조사분석 활동의 국제적 가이드라인 ‘OECD 프라스카티(Frascati) 매뉴얼’에서는 연구개발을 ‘인간, 문화, 사회에 대한 지식의 집적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응용을 고안하기 위해 집적된 지식의 사용을 증가시키려는 목적으로 체계적 토대위에서 수행하는 창조적 작업’이라 정의한 바 있다.

 창조(創造)는 사전적으로 ‘전에 없던 것을 만듦’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연구개발은 기존의 상식적 수준이나 지식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쉽게 제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불확실성은 성공과 실패의 확률을 쉽사리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공의 방향으로 확률을 높이기 위한 ‘도전’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은 대륙이동설,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와 같이 기존 지식체계의 변혁시키고, 인간의 뇌와 몸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행위를 유발하거나, 스마트폰, 슈퍼컴, AI 등 새로운 응용 분야로 적용 범위가 지속 확대되는 것과 같은 파급력 높은 변화의 창조를 ‘혁신적 연구(transformative research)’로 규정하고, 이를 위한 도전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문부과학성을 중심으로 학술의 패러다임 변혁 및 전환, 새로운 영역의 개척을 선도할 수 있는 잠재성 높은 연구를 개척연구와 맹아연구로 구분하여 개별 연구 당 최대 6년간 2000만엔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해 말 창의·도전형 연구 확대 및 평가제도 개선을 골자로 하는 도전연구 장려 정책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2018년 자유공모 기초연구를 전년 대비 896억 원 증액하고, ‘성공/실패’의 판정보다는 연구의 과정중심, 연구 결과의 파급효과 및 활용성을 중심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평가하겠다고 한다.   연구개발 과정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도전의 과정을 응원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적 시도는 매우 고무적인 변화이다.

 최근 개최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도전성’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가 실질적인 대한민국의 미래 혁신성장동력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실패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연구개발을 도전할 수 있도록 연구현장에 그 토양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우선,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미래에 대한 도전 특히 기술적 난제들이 많은 도전적 연구개발의 경우, 과정의 가치를 더욱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즉, 도전적 연구를 수행하다 실패한 연구자가 실패의 낙인 혹은 제재의 면제를 고민하게 할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에 도전한 영예로운 연구자로서 오히려 다른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재도전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해당 연구가 꼭 필요한 연구라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향점에 다다르지 못했어도 후속 연구 혹은 후속 연구자가 이를 이어받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패의 과정이 교훈(lessons learned)으로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축적된 정보가 실질적으로 공유되어 후속 연구의 기획에 활용될 수 있도록 살아있는 지식정보 체계로  구축되어야 한다.

 둘째, 도전적 연구에는 더욱 강화된 기획과정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 실패가 명백히 예측되는 ‘무모’한 행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연구개발 초기에 연구 추진에 대한 정당성(justification), 목적, 목표 등이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기술 준비도, 기술 확보 가능성, 참여 연구진의 역량, 연구 착수시점에 예측되는 위기(危機) 등이 충분히 기획에 활용되고, 점검되어야 한다.

  또한, 착수 초기 수립된 계획이 연구 수행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보완, 갱신 될 수 있도록 계획변경을 포함한 연동기획(rolling wave planning)의 제도적 정착이 필요하다. 연구 수행 과정의 불확실성을 지속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해가면서 점진적 구체화(progressive elaboration)를 통해 계획의 완결성을 제고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한 도전 연구 체계를 지원할 수 있는 전문가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 전문성은 책임감(accountability)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특히, 전문가는 정부의 의견 대변이 아닌, 연구개발 과제의 선정, 평가, 컨설팅 등에 있어 의사결정체계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도전적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주체는 계획 대비 실행이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환경변화에 대한 예측과 대응을 통해 불확실성의 극복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는 이를 근거로 연구가 궁극적인 지향점에 도착할 수 있도록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저명한 과학기술사회학자 토머스 휴즈는 그의 연구에서 기술시스템의 성장과 진화에 있어 과학적 유형(有形)의 인공물뿐 아니라, 조직, 규제, 법률, 문화 등 사회적 무형(無形)의 구성요소와의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강조 한 바 있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정부의 혁신성장동력 정책이 순항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주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새로운 ‘판’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할 시점이다.

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mail protected])
연세대학교 전기전자공학박사
한양대학교 행정학박사(과학기술정책전공)
전 국가핵융합연구소 혁신전략부장
전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기술전략팀 책임연구원
한국기술혁신학회 운영이사(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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