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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인간과 기계의 예측 대결

등록 2018.09.14 17:58:30수정 2018.09.17 10: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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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국회 미래연구원 연구위원(사진제공=미래연구원)

박성원 국회 미래연구원 연구위원(사진제공=미래연구원)

독일 안스바흐의 아디다스 신발공장은 스마트 팩토리로 불린다. 600명이 하던 일을 로봇으로 자동화하여 지금은 10명만 일한다. 1년6개월 걸리던 신제품 개발기간은 10일로 단축되었고 수백만가지 옵션을 제공하는 고객맞춤형 생산시간은 6주에서 5시간으로 줄었다. 머지않아 이 공장에는 작업장을 훤히 밝히던 전등이 모두 꺼질 것이다. 사람없이 기계만 스스로 조용히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공장에서 스마트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다. 인간의 지적 능력보다 뛰어난 기계는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른바 기계의 ‘초지능’을 실현할 현재의 기술들은 학습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인간의 뇌를 상세하게 스캔하고 이를 모형화하여 지능적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전뇌 에뮬레이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개별 인간의 생각을 다른 인간의 뇌나 인공물에 연결하는 기술을 들 수 있다.

 기계는 경제적 생산력, 전략 수립, 과학기술 연구, 해킹, 사회적 조정 등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갖출 것이다. 지능이 증폭된 기계는 다양한 기술들을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결합하고, 경로 설계를 통해 목표 달성을 위한 최적의 전략을 수립할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 연구에도 적용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학적, 심리학적 모형을 만들어 인간들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 고도의 지적인 활동은 예측이 선행된다. 예측하지 않는 일은 반복적인 일뿐이다. 기계가 예측하고 가설을 세워 최적의 답안을 찾아내는 스마트 시티에서 인간은 과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인간의 예측활동은 어느 상황에서 유리할까.

 <표>를 보면 예측의 목표로서 높은 정확도와 다양성이 한 축이고, 예측의 효과로서 높은 보편성과 개별성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한다. 예측의 정확도가 중요하며 보편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것은 기계가 유리할 것이다. 앞서 아디다스 공장으로 대변되는 스마트 시티가 한 예다.  
[미래생각]인간과 기계의 예측 대결

    예측의 다양성이 중요하면서 높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영역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예측대결이 예상된다. 예측의 다양성을 정확성보다 높게 평가하는 사회는 ‘누군가의 예측은 틀리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철학이 있다. 미래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통제로 미래가 결정된다면 다른 누군가는 원치 않는 미래를 억지로 견디거나 참아야 한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한 사람의 지시, 하나의 목적에 모든 행동은 통제되고 억압된다.
 
  이런 점에서 예측의 다양성이 권장되고 그 결과가 공유되어 더 다양한 예측이 시도되는 사회의 실현은 필요하다. 이런 사회가 실험사회다. 핀란드는 실험사회의 모범을 보여준다. 핀란드 사회복지국은 지난 2017년 1월부터 장기 실업자(25~58세) 2천 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조건 없이 매달 560유로(72만여원)를 지급했다. 2018년 말까지 2년 동안 진행하는 이 실험의 목적은 기본소득제가 실업자들의 구직행태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 실험은 핀란드 복지정책에 활용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다. 기본소득 도입을 전제로 실험하는 것이 아니다. 실험해보고 도움이 된다는 증거를 발견하면 사회에 도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멈출 것이다.

  기계와 인간의 예측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될 또 다른 상황은 높은 예측 정확도와 높은 개별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보편성보다 개별성을 추구하는 사회는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한 가지 방안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표>에서는 게임(Game) 사회로 표현되어 있다. 게임에는 룰이 있다. 그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이렇게만 본다면 게임의 세계도 기계가 정복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우리는 지난 2016년 구글의 알파고 프로그램이 이세돌 9단을 바둑경기에서 이긴 것을 목격한 바 있다.

  그러나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게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학계에서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다양한 게임을 활용한다. 직접 만드는 경우도 많다. 예측을 위해 활용하는 게임에 규칙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여러 변수를 이해하고 이 변수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지 예측하면 된다. 이런 미래가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실천의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될 때 게임은 종료된다. 대안 미래들은 경제성이나 윤리성이 높을 수도 있고, 형평성이나 투명성이 높다고 평가될 수도 있다. 이런 게임들은 통상 많은 사람과 의논하면서 한다. 이 때문에 기계보다 사람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인간의 예측이 기계보다 훨씬 유용한 때도 있다. 예측의 정확도보다 다양성이 중요하며, 보편성보다 개별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그렇다. 포도와 올리브 등을 재배하는 농가가 대부분인 작은 산골 마을이 있었다. 인구는 1만4천여명에 불과했다. 이웃한 도시들은 유명 관광지이거나 크고 작은 공장들로 경제활동이 활발했지만, 이 마을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났고 노인들만 남았다. 이 마을에 새로 부임한 시장은 이 마을을 둘러보고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다른 도시처럼 공장을 유치하고 신작로를 놓아 대단위 개발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거나. 시장은 두 번째 방안을 선택했다. 그에 따라 몇 가지 전략을 마련했다. 자연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매우 시골임을 강조하고, 도시의 특성인 빠른 속도와 정반대인 느림, 여유를 내세우기로 했다. 시장은 치타슬로(cittaslow)라는 이탈리아 말을 구호로 내세웠는데, 영어로 슬로시티(slow city), 우리말로 느린 마을이다.

 느림을 표방한 이 마을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에 있는 그레베 인 키안티로 1990년대 슬로시티를 처음으로 주창했고, 이 모델은 세계로 퍼졌다. 철저하게 자연 생태를 보호하고 있는지, 주민들이 문화보존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지, 대형마트나 패스트푸드점이 없는지 등의 기준을 만족해야 슬로시티로 인정받는다. 한국에도 전남 완도군 청산도의 상서마을, 경북 청송 참소슬마을, 충남 예산 대흥마을, 강원 영월 김삿갓면 등 12개 지역사회가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빠름과 느림은 지향하는 가치가 매우 다르다. 빠름이 현재성, 효율성, 전문성, 개발, 목표지향을 뜻한다면 느림은 미래지향성, 자연의 순리, 기다림, 과정의 재미 등을 뜻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설계할 때는 중장기적인 시계를 갖춰야 한다. 중장기적인 시계로 미래를 내다보려면 우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모든 가능한 상황을 따져봐야 한다. 빠름을 추구하는 사회는 중장기적 시각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슬로시티는 느려야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거나 느리게 할수록 더 재미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대안을 고안하고 실천하는 것은 기계보다 인간이 더 나을 것이다. 기계에게 이런 대안은 오류지만 인간에겐 유머가 되고 뜻밖의 발견이 되기 때문이다.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email protected]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미래연구 전공) 박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 미래창조과학부 X-프로젝트 간사위원, 육군 미래준비위원회 기획위원 역임
2017년 세계미래학연맹(World Futures Studies Federation) 수여 '미래연구자상(Outstanding Young Futurist)' 수상.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2037년 다가오는 4가지 미래(이새, 2017)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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