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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프랑스 futuribles 컨퍼런스 참관기

등록 2019.01.03 14:25:55수정 2019.01.04 18: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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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지난 11월 말 파리에서는 '2050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shall we live in 2050?)'라는 주제로 뿌뚜루블 인터내셔널(futuribles international)이 주최하는 미래연구 컨퍼런스가 있었다. futuribles international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비영리 독립 민간 미래연구 단체로 베르트랑 드 주브넬이라는 프랑스 현대 미래학의 선구자가 일찍이 1960년에 설립했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미래연구 분야에서 선도적인 국가였다. 세기말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부터 시작해서 '해저 2만 리', '80일간의 세계 일주' 등으로 잘 알려진 공상과학 소설가 쥘 베른도 프랑스인이다. 세바스티앙 메르시에는 1770년에 '서기 2440년'이란 책을 통해 서기 25세기의 프랑스를 상상했으며 샤를 리셰라는 생리학자는 1892년에 '100년 후'라는 책을 통해 실제로 전 세계적인 인구증가를 매우 정확하게 예측했다. 이렇듯 프랑스는 18세기부터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문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가 공존해온 국가이다. 이런 과학적, 사회적, 문화적 풍토에서 미래학이 선구적으로 발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futuribles 컨퍼런스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연구 발표와 토론을 통해 2050년 사회를 예측해보고 어떤 대비가 필요할지를 논의하는 장이었다. 100여 명 정도의 참석자는 대부분이 불어 및 영어권 미래연구자들이었다. 해외의 미래 관련 컨퍼런스는 다수가 기술 전망 보고나 과학 및 산업 관련 전시회인 데 비해 이 컨퍼런스는 다분히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미래를 논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2050년의 기술발전 예측과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인간, 정주여건, 시민의식, 이동과 환경, 식품과 노동의 미래를 프랑스 사회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암울한 미래를 회피할 수 있는지,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흡수해야 할지가 주된 논의 방향이었다.

하루 반나절에 걸친 컨퍼런스 참석에서 도출한 결론을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컨퍼런스는 인간 중심의 과학 연구 개발을 강조했다. 컨퍼런스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과학의 가치는 '인간의 삶을 망치지 않는 것'이 전제될 때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한 축이라면 사회가 그 발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다른 한 축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생명공학과 정보기술(IT) 분야에서의 과학기술 발전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사회는 그 기술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합의 없이 따라가는 것에 급급해 왔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본주의와 결합할 때 걷잡을 수 없는 그 추진력을 얻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에도 경험했고 현재에도 목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 시간에는 자본주의적인 플랫폼 기반의 기술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플랫폼 기반의 노동이 노동환경과 근로조건을 명시적으로 보지 못하게 한 나머지 실제 노동자들이 직업상 위험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노동자로서 자신의 법적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집단적 행동을 저해 받고 있음을 꼬집었다.

현대 과학이 내포하고 있는 파편화, 개인화를 유도하는 유물론적이고 이기적인 철학도 논의의 대상이었다. 생명공학은 인간을 유전자 단위로 대체할 수 있다는 공학연구 관점으로 발전돼 왔다. 그로 인해 야기될 인간이 가진 가치와 존엄, 윤리의 문제가 사회에 큰 논란을 가져오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 또한 만능이 절대 아니며 인간이 가진 편견과 그릇된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 자체로 바람직한 가치관을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지적했다. 기술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데 선용 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경제적인 측면을 넘어 어떤 미래가 인간과 공동체에 바람직한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미래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어떻게 인간을 바라보고 규정해야 하는지의 근본적인 문제로 회귀시킨다. 이러한 문제에 우리가 답할 때 과학기술이 온전히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컨퍼런스의 두 번째 결론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본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인간은 자연을 단순한 물질의 집합으로 보거나 인간을 자연 범주 밖에 두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거나 통제하려 하는 습성이 있음을 꼬집었다.

과연 우리는 자연이 훼손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종종 남의 일로 인지하곤 한다. 이러한 관점에 바탕을 두고 그동안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허용돼 온 근대 이후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지구의 자원에 대해 취해온 공리주의적 입장을 비판하고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자본주의를 재고할 것을 주장했다.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공익과 지구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돼야 하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 희소성의 시대에 맞는 경제 모델을 고안할 것을 요구했다.

컨퍼런스의 마지막이자 근본적인 결론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전 사회적, 전 지구적인 협력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형태의 집합적인 공동체성(new forms of collective solidarity)이 선호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열쇠로 봤다.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 과학기술이 가져올 특이점(singularity)보다 사람들의 연대와 연결을 통한 집합적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미래를 위한 활동은 개인적인 헌신이나 희생을 수반하게 돼 활발하게 확산하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협력적이고 사회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시민, 기업, 공공부문에서의 시너지가 필요하다. 다양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공동체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과 전망을 모색하는 프랑스식 미래전략 비전 수립이 돋보였다.

컨퍼런스에서 던지는 질문은 한국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매우 미진하다. 미래에 대한 논의는 4차 산업혁명, 신성장동력, 미래의 먹거리 등의 용어로 대체돼 건전한 비판도 없이 무차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됐다. 특히 다른 선진국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은 미래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와 합의의 여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컨퍼런스를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국회 앞에서 카카오 카풀서비스 저지를 위해 한 택시 기사가 분신한 일이 있었다. 컨퍼런스에서 들었던 말들이 더욱 크게 울렸다. 다가올 미래가 던지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을 찾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희생과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컨퍼런스는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2050년 한국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허종호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샌디에고 캠퍼스 보건학 박사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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