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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한·일관계 위기' 피로증 :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제언

등록 2019.02.22 11: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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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사진=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서울=뉴시스】한국 해군함정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겨냥 '논란'이 한일 관계 전반을 급속하게 냉각시키고 있다. 최근 나온 문희상 국회의장의 '책임 있는' 지도자의 사과 요구와 맞물려 우경화 되고있는 일본 아베 내각의 대(對)한국 정책 역시 초강경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한국과 일본의 국민들은 이러한 양국 간의 갈등 및 관계악화가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누구라도 양국 관계를 부분적 협력과 끊임없는 갈등의 반복이라고 정의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양국의 관계는 완전한 화해와 협력 아니면 갈등과 전쟁이라는 두 개의 극단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아주 낮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일 관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래된 경제 및 문화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갈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문제는 이런 관계가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국가들의 정상적인 관계에 비추어 상당히 '비생산적'이며 '소모적'이라는 점이다.

한·일간의 반복되는 외교 갈등과 군사적 긴장의 원인은 수많은 역사적 연구를 통해서 입증되었다. 구체적으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일관적’인 사과 부재, 불완전한 1965년의 한일 협정, 일본 고위층 인사들의 돌발적인 망언, 한국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대일정책 그리고 한국 시민사회의 증가하는 역사적 '정의' 인식 등이 불안전하고 갈등적인 양국 관계의 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좀 더 일반적이고 분석적인 한·일 관계 설명 및 미래 예측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이 시각은 간단히 말해 한국과 일본이 숙적(宿敵)관계 혹은 라이벌리(international rivalry) 관계에 진입한 지 오래며 이 관계는 다른 라이벌리 국가들-혹은 숙적관계 국가들-이 보이는 갈등적 외교 관계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이런 숙적관계는 이미 다른 숙적국가들이 시도했던 비슷한 방식으로 '전쟁'이 아닌 '종결 협상'을 통해 끝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의 라이벌들은 보통 식민지배, 커다란 전쟁, 국제정치적 거대한 힘의 변화, 영토적 변화라는 구조적 충격(shock) 후에 숙적관계로 진입한다. 한국과 일본은 식민지배가, 아랍과 이스라엘은 영토적 변화-즉 이스라엘의 탄생-로 인하여, 미국과 소련의 경우 패권 혹은 군사력 경쟁이 그리고 그리스와 터키는 전자의 후자로부터의 독립이 숙적관계 형성을 가져왔고 그 지속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 숙적국가들 관계의 공통적인 특징은 전쟁수준 이하의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전쟁 후 72년 동안 제한적 군사갈등과 외교적 대립을 반복하고 있다. 과거 2차대전 전의 독일과 프랑스는 이런 숙적관계를 약 111년 동안 지속했다. 이스라엘과 이란 그리고 터키와 그리스 역시 1947년 후 지속적인 군사분쟁과 외교적 대립을 오늘날까지 반복하고 있다.

그럼 이런 소모적이고 고비용의 숙적관계는 왜 오랫동안 지속되는가? 숙적관계 시각에서 보면 아주 단순한 답안이 나온다. 첫 번째 갈등의 핵심-주로 영토분쟁-이 전혀 해결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라이벌 국가들은 평화 혹은 관계 정상화 조약을 시도한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이런 조약에서 양자 간의 영토갈등이 추후 논의사항으로 배제된다는 점이다. 이는 분쟁의 대상이 된 영토가 양 국가 국민들의 역사적 정체성, 자존심, 문화, 혹은 상징과 연결되어 전혀 나눌 수 없는 대상(indivisible pie)이기 때문이다. 독도 영유 및 소유권 문제가 1965년 한일 협정에서 추후 논의사항으로 빠진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두 번째로 강대국의 개입이다. 예를 들어 2차 대전 후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위해 한국과 일본을 소위 말하는 유사 동맹체제(quasi-alliance system)에 편입시킨다.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적 관계를 미국이 선호하는 한·미, 일·미 동맹으로 재편하여 두 국가를 대(對)공산권 봉쇄(containment) 전략의 첨병으로 이용하며 한·일간의 갈등을 관리해왔다. 미국은 이런 전략을 터키와 그리스에 그대로 적용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주도의 동맹체제는 갈등당사자들-한·일 혹은 터키·그리스-이 자신들의 첨예한 양자 갈등을 억누르고 현상 유지정책을 선호하게끔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국내정치행위자의 문제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은 사과 않는 '경쟁 국가'이며 일본 입장에선 한국이란 과거에 집착해 미래를 논할 수 없는 '못믿을 대상'이다. 이런 양국 간에 화해되지 않은 적대감을 양국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지율 올리기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일본의 한국 때리기 그리고 한국의 일본 때리기는 양국 정치인들이 언제든지 자신의 국내정치적 기반 강화를 위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카드다. 4년, 5년의 임기를 바라보는 양국 정치인들은 20년, 30년 후의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보다 지금의 갈등적인 관계가 정치적으로 훨씬 유리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근시적인 인센티브 구조는 갈등 관계의 진정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과연 이런 악순환적 관계에 관한 진정한 해결책은 없는가? 필자는 다소 이상적이지만 미국이 중재하는 한-일 협정 v. 2.0을 해결책으로 제시해 본다. 이 협정을 위해서는 먼저 양국에서 진정한 미래지향적 정치인들이 등장해야 한다. 일단 일본의 미래지향적 수상이 반(反)문명적인 식민지배의 과거사를 불가역적으로 사과하고 무리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이 실행되면 한국의 정치인들이 일본의 지난 역사적 과오에 대한 용서를 과감히 받아들이고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조약을 통해 공언하는 것이다. 이 모든 협상 과정을 동맹국 미국이 중재 및 보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근본적인 화해조약이 체결된 후 한국과 일본은 경제협력의 제도화나 부분적 경제공동체를 다음 단계로 추진해야 한다. 지난 역사 특히 유럽통합의 역사는 100년을 넘게 싸워온 독일과 프랑스가 친구이자 이웃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관계가 정상화된 한국과 일본은 양국의 공통이득(joint gain) 즉 경제적 이득을 확실히 인지하고 이를 제도화해야 한다.

다소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들릴듯한 위의 해결책은 실제 역사상 수많은 숙적국가들이 과거의 적대관계를 끊어내고 미래 이익을 위해 친구로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방법이다. 독일 프랑스뿐 아니라 미국과 쿠바, 요르단과 이스라엘, 칠레와 아르헨티나,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의 숙적들이 이런 원칙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실천’하면서 지금도 관계개선을 해나가고 있다. 이런 해결책이 수립 집행되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 국민들은 앞으로 20년 후에도 30년 후에도 '한·일 관계 악화일로'라는 동일한 신문기사에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유재광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오하이오 주립대(OSU) 국제정치학 박사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학부(UIC)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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