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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집권 3년차 文대통령, 더 열린 소통 '초심'으로

등록 2019.05.1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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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집권 3년차 文대통령, 더 열린 소통 '초심'으로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지난 2017년 5월 19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선을 발표하기 위해 청와대 춘추관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취임 후 9일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문 대통령은 즉석에서 헌법재판소장 임기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인선 배경, 호남 출신 연쇄 발탁 배경 등 3가지 질문을 받았고 모두 답변했다. 당초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질의응답이 없을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에 춘추관에 동행한 직원들도 당황했다.

'소통하는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갖고 있던 생각이다. 문 대통령은 "대변인에게만 브리핑을 맡기지 않고 주요 사안이 있을 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처럼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을 했고, 이를 실천했다. 취임 첫 날 이낙연 국무총리 등의 인선을 발표하면서 처음 브리핑대에 섰고, 9일 뒤에는 기자들의 질문도 받았다. 또 취임 100일 만에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사전 조율 없이 자유롭게 기자들과 문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전 정권의 '불통'에 지친 국민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출범은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임기 2년이 지나면서 문 대통령의 대(對) 언론 스킨십은 이전 정권과 결국 큰 차이가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주요 사안에 대한 대통령 브리핑은 지난해 5월 27일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한 게 마지막이다. 공식 기자회견도 취임 100일 기자회견과 2018·2019년 신년 기자 회견 등 단 3차례에 그쳤다.

문 대통령은 집권 3년차 구상을 밝히는 방식으로 이번엔 기자회견이 아닌 KBS와의 대담을 선택했다. 청와대는 사전에 준비된 질문지와 각본 없이 진행됐다고 설명했지만, 취임 후 첫 국내 언론 인터뷰를 공영방송 단 한 곳과 가진 것에는 여러 의구심이 뒤따랐다. 더군다나 일대일 대담에서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 개인의 태도와 방식 등이 큰 논란이 되면서 본말이 전도된 듯한 형국이 초래됐다. 애초에 기자 한 명의 역량에 크게 좌우되는 대담 방식은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에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취임 2주년 당일인 10일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청와대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제외한 대화를 '비보도'하기로 방침을 정해 적지 않은 불만이 나왔다. 청와대는 '격의 없는 친교와 소통이라는 행사 취지를 고려해 취재 범위를 정했다'고 설명했으나 '이전 정부와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간담회가 연기되면서 논란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이후에도 언론 대응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문 대통령이 직접 언론의 질문을 받지 않고 있는 이유는 어느정도 짐작이 된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언론들의 취재는 더욱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다. 경제 정책의 성과 부진, 북한 비핵화 협상 난항, 인사 관련 잡음 등 국정의 모든 문제에 대한 화살은 결국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언론에 대한 문 대통령의 불신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KBS 대담에서 최근 사회계 원로 오찬 간담회에서 자신이 한 발언을 언론들이 '선(先) 적폐청산 후(後) 협치'라고 해석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언론들이) 헤드라인이나 자막을 그런 식으로 뽑은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적폐 수사나 재판은 앞의 정부에서 시작한 것이고 우리 정부는 기획하거나 관여하지 않고 있다. 또 살아서 움직이는 수사를 통제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 직원들의 비위 의혹이 제기되던 지난해 12월 해외 순방 중 전용기 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지만 국내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불편한 심기를 표시한 적이 있다. 이제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비핵화 대화까지 난항에 빠진 상황이니 당분간은 해외 문제에 대한 질문도 반가울 리 없다.

문 대통령의 입장이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한 가지 부러운 점이 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을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매체들을 '가짜뉴스'라고 부르고 설전을 벌이면서도 언론과의 소통 자체를 멈추진 않는다.

문 대통령에게도 이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고 본다. 현 정권을 출범시킨 촛불 민심이 원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무오류의 절대자'가 아니라 부족함이 있더라도 국민들과 끊임 없이 대화하면서 보완해 나가는 지도자일 것이다.

청와대는 8일 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명의로 대통령 비서실과 출입기자단에게 엿을 돌렸다. 청와대는 "엿처럼 끈끈하게 함께 가자는 의미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와 언론 간의 관계에서 '끈끈함'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와 소통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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