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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증권가, 주 52시간 근무제…실질적 대책 필요

등록 2019.06.25 07:04:21수정 2019.06.25 08: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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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제이 기자 = "52시간 근무제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일 좀 하려면 컴퓨터가 꺼지네요. 잔업하려 할 때 일일이 다 보고하고 결재하고 일도 못 하겠어요. 팀원들한테 일 시키기도 눈치 보여요."

증권업계 관계자와의 점심 미팅 자리에서 들은 얘기이다. 그는 중간 관리자로서 주 52시간 근무제에 불만을 토로했다. 업무의 비효율성을 문제 삼았다.

반면 업무상 만난 다른 사원급 직원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반색했다.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이전보다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여의도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까지 딱 일주일 남았다. 증권사들은 다음 달 1일부터 의무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해야 한다. 각 증권사는 정해진 시간에 컴퓨터가 강제 종료되는 PC오프제, 시차를 두고 출퇴근하는 유연 근무제, 선택 근무제 등을 통해 주 52시간 근무제 의무 시행 적응기에 들어갔다.

애초 300인 이상 증권사는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정식으로 도입해야 했으나 특례업종으로 인정받아 1년의 유예기간을 받았다. 지난해부터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범 운영한 곳도 있지만 공식 시행 한 두 달 전부터 시범 운영한 증권사도 적지 않다. 이에 증권사 내부에서 업무적 고충과 내부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1년의 계도 기간을 부여 받았지만 주 52시간 시행의 안정적 정착에는 시간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사실 고액연봉으로 유명한 업종 중 하나인 증권업은 성과급으로 두둑한 월급을 챙겨가는만큼 노동의 강도가 세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게 관행처럼 여겨졌다.

주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시범 운영되는 PC오프제 등으로 추가 업무가 어려워지자 여의도 카페에는 개인 PC로 업무를 보는 증권맨들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에서도 쉬쉬하는 걸로 보인다. 한 증권사는 회사에서 따로 태블릿PC를 지급해 업무 시간 외에도 업무를 볼 수 있게 했다. 결국 실질적인 주 52시간 근무제는 시행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정부가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건 과도한 근무시간을 줄이고 고용인원을 늘리기 위함이다. 증권업 실무자들은 정책의 효과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타 부서에 비해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리서치센터, 투자은행(IB), 해외주식 부서 등에서는 추가 인력 채용보다 교대조를 짜 근로 중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보조하는 리서치어시스턴트(RA)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의도 증권사에 근무하는 한 RA는 "일은 많은데 법정 근로 시간을 준수해야 하다 보니 낮조, 밤조 등으로 2교대로 돌아가면서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증권사뿐 아니라 다른 증권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언급했다.

지난 20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애널리스트 등 업무 특수성을 지닌 금융투자업계 근로자를 재량근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한다고 발표하면서 증권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예고와 1년 간의 계도기간 등을 고려하면 증권가에는 이미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이제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제대로 정착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규제를 피하기 위한 주먹구구식 보여주기 근무 형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휴식과 업무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회사만의 내부 조치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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