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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우리와 함께하는 아이들도 돌봄이 필요하다

등록 2019.11.29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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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기태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박기태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 얼마 전 전국 유치원의 신입생을 모집하는 또 하나의 연례행사가 끝났다. 다행히도 지난해와 올해 국민들이 경험한 일련의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영유아 교육을 둘러싼 학부모들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침 8시 전후에 시작하는 유치원의 '교육과정'은 오후 2시면 끝난다. 이후 유치원의 선택을 받은 소수의 맞벌이 가정 아이들만이 '방과후과정'에 참여하여 늦은 오후에 돌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맞벌이 부모의 일반적인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전후이고 일부에게만 허락된 소위 '칼퇴근'이라 불리는 정시퇴근은 오후 6시이다.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돌봄 시간과 부모의 출퇴근 시간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전업주부 어머니를 전제로 설계된 우리의 보육 시스템은 맞벌이 부모에게 자녀 양육과 일자리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출산장려금 제도를 도입한 모 지역은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출산 전 해당 지역으로 전입을 하여 높은 출산장려금을 받은 후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지적된다. 개인의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그들이 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간한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은 자녀 출산과 양육을 상당한 부담으로 인식한다.

자녀를 낳고 길러 보육시설에 보낸 후 다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고 싶어하지만 시설 입학 자체가 전쟁인 곳, 지속적으로 아동학대 이슈가 발생하는 곳, 여러 장애물을 극복하고 직장에 복귀하더라도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당연시 하는 곳, 방과 후에 자녀를 돌보아 줄 곳이 없어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또 다른 보육제공자를 찾아야 하는 이 나라에서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을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최근 배우자 출산휴가(유급)가 10일로 늘었고 육아휴직은 부모 양측이 한 번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자녀를 낳고 기르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어떠한가? 양부모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사용해 발생하는 소득감소는 누구의 책임인가? 출산과 양육의 어려움으로 인해 젊은 세대의 출산 기피가 계속된다면 저출산으로 국가가 망하게 되었다고 그들을 비난할 것인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출산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개인의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정부가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아이를 낳고 양육을 담당하는 이 땅의 수많은 부모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정책은 그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현 정부는 출산율 제고에 집중하지 않고 개인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두겠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이름만 달라졌지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고자 하는 기존의 정책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저출산 및 일-가정 양립 관련 제도의 관련 부처 수장부터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고 인터뷰하는 것은 여전히 정부의 정책 목표가 출산율 향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백번 양보해서 새로운 사회구성원이 충원되지 않아 국가가 곧 망하게 된다는 주장이 맞다고 하자. 그렇다면 현재의 저출산 관련 정책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기혼 여성들은 이상적으로 생각하거나 원하는 만큼 자녀를 갖지 않는다. 낳아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이미 출산한 자녀수에 향후 출산을 계획한 자녀수인 기대 자녀수가 1.92명, 기혼여성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수는 2.16명임을 고려할 때 정부의 정책 방향이 바뀐다면 정부가 희망하는 출산율 증가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미 태어나 자라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들어가는 개인의 비용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한데 정부의 정책은 수요자의 필요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 관점을 갖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보육에 대한 예산 재분배가 필요한 시점이다. 궁극적으로는 저출산 현상을 극복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사실로 인식하고 저출산이 초래할 사회적 효과에 대한 체계적 분석이 필요하다.

아프리카에는 "한 아이를 키우는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이미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는 자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를 바꿀 정책을 통해 자녀 양육에 온 마을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박기태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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