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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크리스마스에도 계속되는 '필리버스터'

등록 2019.12.25 10: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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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필리버스터에 나섰던 한 의원은 발언을 마치며 의원석을 향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쳤다. 그러나 지금의 국회 상황을 감안하면 괴리감이 느껴지는 인사다.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탄절이지만 국회는 전혀 '메리'하지 않은 장면들만 국민들에게 연출하고 있다.

[기자수첩]크리스마스에도 계속되는 '필리버스터'

[서울=뉴시스] 강지은 기자 =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국회에선 이른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3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하고, 같은 날 이를 본회의에 전격 상정하면서다.

선거법 개정안 상정에 강력 반발하고 있는 한국당은 4+1만으로도 의결 정족수가 과반을 넘어 본회의 통과가 가능한 만큼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수단인 필리버스터를 통해 어떻게든 표결만은 결사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주호영 의원을 시작으로 릴레이 필리버스터에 돌입, 의원당 평균 4.3시간의 마라톤 발언으로 밤샘 연설도 불사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의원들까지 '맞불' 필리버스터로 가세하면서 여야 공방은 더욱 가열되는 모양새다.

사실 민주당이 한국당의 '시간 지연' 전략에 힘을 보탤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필리버스터에 나선 것은 선거법 등 한국당 주장에 대한 반박 차원과 함께 지난 11일 시작된 임시국회 회기가 이날까지로 정해진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국회법에 따르면 특정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해당 회기 내에서만 유효하고, 다음 회기가 시작되면 표결에 부쳐진다. 민주당은 오는 26일 임시국회 소집도 요구한 상태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에 동참해도 손해볼 게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여야 모두 필리버스터에 출격한 가운데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안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협상에 불응한 한국당 질타에, 한국당은 4+1의 선거법 합의를 '야합' '불법'으로 규정하며 부당성 부각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여야가 필리버스터 내내 서로를 향해 고성과 야유, 비아냥을 일삼거나 반말을 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만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배려는 일절 찾아볼 수 없다.

실제로 4시간 가까이 발언을 이어가던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동의를 구하고 화장실을 다녀오자 한국당은 반발하며 문 의장에게 항의했다. 권성동 한국당 의원은 문 의장을 "문희상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선거법 개정안이 '밥그릇 싸움의 결과물'이라는 권 의원의 발언에 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 간 거친 고성도 오갔다. 이 과정에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말조심하라"고 반발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이 문 의장에게 불법 패스트트랙 책임을 물을 때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문 의장이 뭘 잘못했어! 어이가 없어"라고 야유를 보냈다. 이에 문 의장이 제지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의장이 그만하라잖아"라고 비꼬았다.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이 발언하면 한국당 의원들이 우르르 본회의장을 나가고, 한국당이 발언하면 민주당 의원들은 책을 읽거나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을 봤다. 꾸벅꾸벅 조는 것을 넘어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자는 의원들도 목격됐다.

선거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이날 자정을 기해 종료된다해도 이런 코미디 같은 장면들은 당분간 반복될 전망이다. 한국당이 검찰개혁 법안, 유치원 3법 등에 모두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데다 민주당도 맞대응에 나설 수 있어서다.

특히 당장 26일 열릴 예정인 본회의에서 4+1이 선거법 표결을 강행할 경우 여야의 정면 충돌은 물론 그 어느 때보다 거센 후폭풍이 예상돼 국회는 그야말로 '시계제로' 상태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필리버스터에 나섰던 한 의원은 발언을 마치며 의원석을 향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쳤다. 그러나 지금의 국회 상황을 감안하면 괴리감이 느껴지는 인사다.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성탄절이지만 국회는 전혀 '메리'하지 않은 장면들만 국민들에게 연출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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