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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

등록 2020.02.28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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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  애초에는 잘 알려진 영화를 패러디하여 이 글에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Young Men)는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부터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이 붙은 국내 언론사의 기고문이 어림잡아 열 건은 검색되었다. 어떤 방송사에서는 동일한 제목으로 기획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다.

심지어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논의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청년층이 고용난에 시달린다는 아일랜드 소식(2009)이나, 청년층에 해당하는 밀레니얼세대(1981~2000년생)가 X세대(1966~1980년생)보다 생애소득이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영국 소식(2017)도,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국경을 초월한 '청년 걱정'은 청년실업 문제로 수렴한다. 세계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로 다같이 어렵기는 하지만 이러한 '청년 걱정'이 더욱 뼈아픈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의 15~29세 청년 노동시장 참여율을 비교하면 2018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은 58.4%인 반면, 우리나라는 11.3%p 낮은 47.1%이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청년 노동시장 참여율과 우리나라의 청년 노동시장 참여율 격차는 2015년 14.1%p, 2016년 13.4%p, 2017년 13.1%p로 점감하고 있으나, 10%대의 격차가 유지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안정성 등의 격차에서 기인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의 일자리가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인가는 또 다른 '청년 걱정'의 쟁점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임금 근로자의 10% 정도만 양질의 근로조건을 갖춘 1차 노동시장(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등)에 종사하고 있고 90%의 근로자는 2차 노동시장(중소 및 영세기업, 비정규직 일자리)에 속해 있다. 1차 노동시장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차 노동시장에 비해 1.7배 높고 평균 근속연수도 1차 노동시장 근로자가 2.3배 길다. 우리나라의 '청년 걱정'이 깊어지는 이유이다.

청년실업은 개인의 노동시장 참여 시기 지연에 멈추지 않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상호작용하면서 특정 세대의 생애소득 감소를 유발하고, 한때 청년이었던 인구집단의 총체적인 삶의 질 저하로 귀결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취업을 할 때까지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 나눠지는 부담, 취업 시기와 질의 영향에 의한 새로운 가족구성의 지연 혹은 불능, 저출생에 의한 세대 간 이전에 근거한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실효성 저하와 인구규모가 훨씬 적은 청년세대의 자녀세대가 지는 부담…. 최근 '청년 걱정'이 단골 걱정거리일 수밖에 없다.

혹자는 부모세대가 일자리를 나누고 양보하자고, 혹자는 청년이 정치에 참여해 직접 목소리를 내라고, 혹자는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어서 취업해 돈을 벌라고 훈수를 둔다. 누구 말이 옳은가?

나아가 정부는 다양한 청년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이 자산을 마련할 수 있도록 2년 또는 3년 간 적립금을 모으면 기업과 정부에서 돈을 합쳐 총 1600만원(2년형) 또는 3000만원(3년형)의 목돈으로 만들어 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를 도입하고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실시하여 미취업 청년을 비롯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업빈곤층을 지원하는 등 백방으로 뛰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잘 하고 있는 건가?

솔직히 모르겠다. 어찌 해야 하는지. 끝없이 의심이 든다. 정부가 나서서 될 일인지. 지속되는 '청년 걱정'의 근본적인 원인은 누구도 겪어본 적 없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경제구조의 변화에서 기인하므로 지혜로운 어르신도 유능한 정부도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 가지는 명확하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고 시장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변혁에 맞서 영웅이 되는 시대는 다시 올 수 없다는 것과 현 시대의 청년은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여 온갖 대책을 쏟아내도 힘겨운 청년기와 씁쓸한 중년기를 거쳐 비참한 노년기를 맞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

강풍과 지진을 견디는 건물은 모순되게도 강풍과 지진에 흔들리는 건물이라고 한다. 정부는 당장의 고용지표에 연연하여 강풍과 지진에도 흔들리지 않을 철옹성 같은 청년대책을 고안해내기보다 현 시대 청년의 전 생애를 고려한 정책을 미리 마련해 두는 유연성을 발휘하기 바란다.

정부는 규제정책을 통해 노동시장이나 주택시장을 조정하기보다 청년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파도에 스스로를 맡길 수 있도록 눈 먼 돈을 쥐어주는 대신 대대적으로 규제를 풀어 거리낌 없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들이 어려운 와중에도 노후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도록 연금개혁을 단행하는 등 청년들이 이 시대를 도전과 모험의 시대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진흥정책을 펼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당초 이 글의 제목을 짓는 데 참고하려고 했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네가 겪은 불운이 너를 얼마나 더한 불운에서 구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You never know what worse luck your bad luck has saved you from.)." 우리가 중년이 된 혹은 노인이 된 현 시대의 청년에게 이렇게 속삭일 수 있는 지혜로운 기성세대이기를 바란다.

기성세대에게 '라떼는 말이야(Latte is horse)'라며 킥킥거렸던 현 시대의 청년이 중년이 되어 혹은 노인이 되어 숨 가쁘게 지나간 청년기를 회상하며 웃음을 머금고 '라떼 이즈 홀스'를 읊조릴 수 있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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