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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듣다]공장부터 열고 시장조사...'매출 0'로 문 닫아

등록 2020.04.0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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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준 대표, 2001년 곡물가공업 창업

오랜 두부공장 운영 경험에 충분한 시장조사 거치지 않아

공장 개업 후, 시장조사서 "충격...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서울=뉴시스] 박범준 한국미생물비료 대표.

[서울=뉴시스] 박범준 한국미생물비료 대표.

[서울=뉴시스] 표주연 기자 = "공장부터 차리고 시장조사를 했다. 창업하기 전에는 곡물가공업이 쉽게 보였다. 나중에 공부를 해보니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다."

박범준(57) 한국미생물비료 대표는 오랫동안 두부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2000년께 오랜 거래처였던 대성상회로부터 곡물가공업을 해보는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대성상회는 곡물 등을 도매유통하는 회사다. 박 대표가 곡물을 가공해 납품하면 전국에 판매하는 것은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로 설득했다.

수차례 걸쳐 제의를 받았던 박 대표는 결국 2001년 곡물가공업을 시작했다. 여가러지 곡물로 미숫가루를 만들 듯 빻거나, 시금치, 당근 등을 곱게 갈아 천연 미용팩 재료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사업이었다.

오래 두부공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두부 제조는 곡물가공업 분야에서 꽤 난이도가 높은 사업이다. 때문에 곡물 빻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대표는 "두부도 만드는데 곡물깍는게 일이냐. 쉽게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박 대표는 이 때를 '여우에 홀린 것처럼'이라고 표현했다.

 박 대표는 두부공장을 정리하고 대성식품이라는 곡물가공 업체를 창업했다. 대성상회와 수익을 5:5로 나누는 방식이었다.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 대성상회가 동업자이다 보니 판로는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장 1명과 보조 1명, 마케팅 직원 등 총 7명으로 시작했다. 투자금으로 1억원 정도을 쏟았다. 곡물을 빻는 기계는 1500만원 짜리를 중고로 들여와 300만~400만원 정도에 해결했다. 그러나 '가루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 대표는 이 일을 쉽게 생각한 댓가를 톡톡히 치렀다.

우선 남양주에 창고를 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했다. 그런데 창고를 식품공장으로 등록하려다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돈 2500만~3000만원이 깨졌다. 공장등록을 하려면 전력이 일정기준 이상 들어와야하는데, 전력을 끌어오는게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공장등록을 할 때 수질과 폐수 관련한 부대비용도 들어갔다. 공장등록 서류를 구비하는데만 4개월이 걸렸고 돈은 3000만원 가까이 더 지출됐다.

더 문제는 '품질'이었다. 쉽게 봤던 곡물을 빻는 일이 쉽지 않았다. 샘플로 콩을 빻아 만들었고 이를 대성상회에 전달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대로는 유통이 어렵다"는 반응이다. 품질이 낙제점이었던 것이다. 아차 싶었던 박 대표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박 대표는 "난 가공기계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며 "콩, 쌀 모두 그냥 빻으면 되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경쟁공장들을 견학하고, 곡물 분쇄 분말기를 15~20대 들여놨다. 곡물의 이물질을 골라내는 석발기도 필수였다. 게다가 곡물의 성질에 따라서 써야하는 분쇄기가 달랐다. 수분이 많은 곡물을 분쇄하려면 건조기도 갖춰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곱게 빻아지는게 아니었다. 죽이 돼서 나왔다.

약 6개월 공부하던 박 대표는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설비만 10억원이 들어간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박 대표는 "이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이 왔을 때 3~6개월 정도라도 준비를 했었더라면 감당이 안될 것이라는 결론을 냈을텐데 너무 쉽게 봤다"고 토로했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박 대표는 "이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들을 미리 가서 보고, 그 속을 들여다 봤어야 했다"며 "시장사이즈, 유통특성 등을 조사했어야 했는데, 시작부터하고 조사를 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곡물가공업은 매출 0원 상태로 유지가 됐다. 모였던 직원들은 모두 내보내고, 공장 등록을 했던 창고는 경동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고추, 참깨, 메주 등을 보관하는 임대업으로 굴렸다. 박 대표는 "함께 일을 도모했던 사람도 다 떠났고, 이걸 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결국 접자고 할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성식품은 결국 창업 1년만에 매출 0원을 기록하고 문을 닫았다. 곡물가공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제로(0)'였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철저한 준비없는 창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걸 배웠다"며 "뭐에 홀린 듯 시장조사 조차 하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쟁사, 경쟁제품 품질, 가격, 수반되는 기술력 등에 대해 5~10년 경험했던 사람을 미리 만났다면, 나를 말렸을 것 같다. 어떤 기계가 어떻게 들어와야 하고 건조기, 이물질제거기가 있어야 하는 등 설비만 10억원이 들어간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이후 박 대표는 농업분야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잠시 비상근으로 일한 뒤, 현재 회사인 한국미생물비료를 차렸다. 미생물로 농작물이 유충피해를 잡는 연구를 이어가면서 관련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대성식품이 준 교훈이 있어서인지, 이 사업은 2015년부터 구상해 지금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충분한 검증이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초보창업자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박 대표는 가장 먼저 "철저한 준비없이 창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치'를 언급했다.

박 대표는 "내가 사업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왜 이 사업을 하는지 가치를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다"며 "대부분은 돈을 이야기하는데 돈은 결과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의 과정을 중시했으면 좋겠다. 과정이 올바르지 않으면 결과가 좋게 나올 수가 없다"고 조언했다.

※'실패를 듣다'= 수많은 실패의 고백을 담는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값진 실패, 유의미한 실패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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