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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사망 당일 통장에서 5억 이체 80대 노모 '집행유예'

등록 2020.05.20 06: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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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아들 채무변제에 써…이득 얻은 것 없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 모두 유죄 평결

【수원=뉴시스】이병희 기자 = 수원법원종합청사.

【수원=뉴시스】이병희 기자 = 수원법원종합청사.


[수원=뉴시스] 이병희 기자 = 아들이 사망한 당일 아들 명의 통장에서 5억여원을 딸의 통장으로 옮긴 혐의로 기소된 80대 노모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김미경)는 2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 위반(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A(82)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A씨는 딸(52)과 공모해 아들(사망당시 42세)이 사망한 당일인 2018년 8월8일 아들이 생존해 있는 것처럼 행세해 아들 명의 예금거래 신청서를 위조하고, 이를 은행직원에게 제출해 돈을 인출해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아들이 숨진 지 8시간이 지난 오전 9시께 딸과 은행에 가서 4차례에 걸쳐 돈을 이체했다.

아들이 딸에게 빌렸던 돈을 갚기 위해 4억4500만원 상당을 딸 계좌로 이체하고, 아들과 딸이 함께 운영하던 사업 인건비·재료비 등으로 쓰기 위해 딸의 통장으로 5000만원과 2200만원 상당을 각각 이체했다. 또 1000만원 상당을 병원비·장례비 등으로 쓰고, 남은 금액을 아들 계좌로 다시 입금했다.

이후 같은 달 13일에 아들 사업 관련 인테리어 공사대금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공사업체의 신용정보회사로 1800만원을, 같은 달 28일 아들 사업장 전기료를 내기 위해 딸 계좌로 300만원을 이체한 혐의도 있다.

A씨가 아들 통장에서 모두 6차례에 걸쳐 이체한 금액은 5억4800만원에 달한다. 이 돈은 아들이 숨진 뒤 초등학생 손녀에게 상속돼 A씨가 마음대로 인출할 수 없는 돈이다.

별거 중이던 아들 부부는 2018년 4월부터 이혼 절차를 진행하다 같은 해 6월11일 이혼조정이 성립됐다. 이 기간인 6월5일 A씨 아들은 지병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다 두 달 만에 숨졌다.

A씨 측은 이날 재판에서 아들이 숨진 뒤 예금청구서를 작성해 은행 직원에게 제출한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는 인정했다.

다만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A씨가 2004년부터 아들의 재산을 관리해왔고, 이 행위로 취한 이득이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아들이 생전에 누나인 딸들에게 빌렸던 돈을 갚거나 병원비 등으로 썼기 때문에 피고인이 편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은 "피고인 행위가 채권을 변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하더라도 위법성은 인정된다. 아들 생전에 재산을 관리할 권한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망과 동시에 모든 재산은 손녀에게 상속돼 재산 관리 권한이 없어진다"며 징역 2년을 구형했다.

이어 "피고인이 이득을 얻은 것이 없다지만 아들의 채무 가운데 딸의 채무를 우선 면제하고, 아들이 죽어 딸의 단독 사업이 된 사업을 위해 딸에게 돈을 보냈다. 딸의 이득을 위해 보낸 것"이라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A씨 변호인은 최후변론을 통해 "피고인은 아들의 실제 빚을 갚고 사업에 필요한 비용을 통장이 막힐까 봐 빨리 해결하려고 넣어준 것뿐이다.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었고, 아들이 살아 있을 때 갚으라고 했던 돈"이라며 "이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이며, 다른 목적 없이 딸에게 갚아주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산을 관리할 권한을 아들로부터 위임받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채무를 갚아 손녀에게도 이익되는 행위다. 또 피고인은 본인의 이득을 챙기지 않았다. 비난 아니라 칭송받아야 할 일, 감사해야 할 일"이라며 "피고인은 이게 죄가 된다고 생각 안 했고, 사기죄가 이런 경우 적용된다고 생각 안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 며느리의 끝없는 욕심과 옆에서 부추기는 조력자가 있어서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며 "피고인은 손녀를 도와주려다 이익 챙기려 한 할머니가 됐다. 피고인이 진짜 죄를 지은 것인가 생각해달라"라고도 했다.

 A씨는 "아들을 보내고 생각해보니 아들이 어질러놓은 것을 정리 안 하면 며느리한테도 피해가 갈 것 같아서, 아들이 욕먹을 것 같아서 한 것이다. 아들이 갚는다고 했던 돈이니까 갚으려고 한 것"이라며 "내가 이득 얻은 것은 전혀 없다. 손녀에게 갈 돈을 빼돌렸다고 해 너무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전날 오전 10시30분께 시작된 재판은 16시간 넘게 진행돼 이튿날인 이날 오전 2시40분까지 이어졌다. 재판에서 배심원 7명은 A씨에 대해 모두 유죄로 평결했다.

재판부는 "아무리 아들 재산을 관리하던 어머니라도 사망 사실을 숨기고 적법한 권한 없이 예금을 인출한 것은 법 질서 정신이나 사회 통념에 비춰 허용되는 행위라고 할 수 없어 위법성이 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이 사건 피해 금액이 5억원이 넘고, 피해자인 은행에 피해가 회복되지 않은 사정이 있다"며 "다만 피고인이 아들 예금을 인출해 채무를 변제함으로써 범행 뒤 실질적으로 이익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이후 민시소송 등 통해 피해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피고인이 고령인 점 등을 고려했다"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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