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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술의 알콜로드]술병을 낫게 해주는 생선이라…

등록 2020.05.2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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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보다 해장이 메인인 주객전도 알콜로드

해장 탁월한 꼼치…'자산어보'에도 등장


[서울=뉴시스] 꼼치는 살 자체에 별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식감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 주로 국으로 끓여 많이 먹는데, 동해안에서 곰치국을 시키면 어느 곳을 들어가도 대개 비슷한 그릇을 받게 된다. 멀겋게 끓여낸 김칫국에 대파 몇 조각, 허옇고 몽글몽글한 꼼치 살점이 들었다.

[서울=뉴시스] 꼼치는 살 자체에 별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식감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 주로 국으로 끓여 많이 먹는데, 동해안에서 곰치국을 시키면 어느 곳을 들어가도 대개 비슷한 그릇을 받게 된다. 멀겋게 끓여낸 김칫국에 대파 몇 조각, 허옇고 몽글몽글한 꼼치 살점이 들었다.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동해안에서 술을 마시면 숙취가 두렵지 않다. 독하게 못생긴 생선 덕분이다. 뭉툭한 머리에 두툼한 입술, 몸집에 비해 작은 눈, 흐물흐물한 살성에 검은색 반점으로 뒤덮힌 모습이 식욕이 당기는 모양새는 아닌데…이것이 해장국 재료로 으뜸이라는 '꼼치'라는 생선이다.

'곰치'라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꼼치가 정확한 명칭이다. 곰치는 뱀장어목이고, 우리가 흔히 아는 곰치국의 주재료는 쏨뱅이목의 꼼치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에 서식하는 꼼치류는 꼼치, 물메기, 미거지 등 10여종이다. 하지만 생선을 건져올리는 어민들이나 식당 주인들도 정확하게 분류하지는 않고 그냥 '곰치'로 부르곤 한다.

생선 살 자체에 별 맛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한 식감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 주로 국으로 끓여 많이 먹는데, 동해안에서 곰치국을 시키면 어느 곳을 들어가도 대개 비슷한 그릇을 받는다. 멀겋게 끓여낸 김칫국에 대파 몇 조각, 허옇고 몽글몽글한 꼼치 살점이 들었다.

살에다가 숟가락을 가져다대면 수저 머리가 저항감 없이 살점 안에 폭 파묻히는 것이 마치 연두부와 비슷한 질감이다. 국물과 함께 한 술 뜨면 이로 씹을 필요도 없이 입천장으로만 살짝 눌러도 목젖을 타고 훌훌 넘어가는 그 식감이 일품이다. 껍질 부분은 미끄덩한것이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혹자는 콧물 느낌이 난다고까지 표현하며 질색을 하지만, 난 그 느낌을 극도로 좋아한다.

묵은지와 함께 끓여내 국물은 칼칼하고 시원하다. 싱싱한 해산물이 반갑다며 한 잔, 공기가 좋아 반갑다며 또 한잔 하다가 엉망이 돼 버린 위장을 달래주는 뜨끈한 국물이여. 동해안에서의 알콜로드는 술 자체보다 술 마신 다음날 곰치국 해장에 방점이 찍혀 있는 주객전도 여행기다.

[서울=뉴시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는 생김새가 비슷하고 불리는 이름이 다양한 꼼치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동해안 꼼치류 이렇게 불러주세요!' 포스터를 제작했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제공)

[서울=뉴시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는 생김새가 비슷하고 불리는 이름이 다양한 꼼치류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동해안 꼼치류 이렇게 불러주세요!' 포스터를 제작했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제공)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도 꼼치, 물메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책에는 해점어(海鮎魚)라고 표기돼 있는데, 우리 말로 풀어보면 바다메기라는 뜻이다. '살과 뼈는 매우 연하고 무르며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쓰여 있다. 이 구절을 알고난 다음부터는 플라시보 효과 인지, 곰치국만 먹으면 말끔하게 해장이 되는 느낌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때때로 빗방울도 흩날리던 어느 날, 강원도 묵호항 근처에서 먹은 곰치국이 나의 '인생 곰치국'이다. 자부심이 대단한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나니 더 꿀맛이었다.

"후포에서 통발에 홍게를 넣어 잡은 꼼치라 표면이 상처 없이 깨끗하잖아요. 그물을 쳐서 일주일 만에 건져올린 것들은 이미 죽어서 부패하기 시작한 생선이지. 우리 집은 살아있는 꼼치로 국을 끓이니까 살이 풀어지지 않았잖아요."

바닷 사람들만 알음알음 먹던 것이 이제는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가격이 뛴 것이 매우 아쉬운 지점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은 한정적이다보니, 이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한 그릇에 2만원 하는 해장국에 선뜻 지갑을 열기란 쉽지 않다. 1만5000원인 줄 알고 찾아왔다가 오른 가격을 보고는 발길을 돌리는 모녀를 보며 마음 속으로 '가지 말고 앉아서 한 술 떠봐요!'를 애타게 외쳤다.

[서울=뉴시스] 강원도 묵호항 근처 수족관에서 본 꼼치.

[서울=뉴시스] 강원도 묵호항 근처 수족관에서 본 꼼치.

"우린 숫놈만 써요. 암놈은 큰 것도 5만원 밖에 안 하는데, 숫놈은 30만원이니 한 그릇에 2만원씩 받고 팔아도 남는 게 없지. 그래서 돌아나가는 손님을 붙잡지도 않아. 배들이 다 대게를 잡으러 나가서 지금은 비싼데, 6월이 되면 1만5000원에 팔테니, 다시 와요."

꼼치는 겨울이 제철이라지만 이번 여름휴가땐 해외 여행도 글렀으니 동해안으로 길을 잡아볼까나.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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