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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는 국가재정 운용을 위해

등록 2020.06.12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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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  대공황, 세계대전 등 패러다임을 바꾸는 위기는 항상 다른 얼굴을 하고 불쑥 찾아온다. 이번에는 전염병의 대유행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출현은 전세계 각 국가가 앓고 있던 지병이 무엇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적 소통의 부재, 인종 갈등, 필수재 생산시설의 역외생산(off-shoring), 공공보건체계의 미비, 공동체 의식의 와해 등 지병은 새로울 것이 없다.

한국의 경우 스스로를 헬조선으로 비하했던 것보다는 훨씬 선진적 사회임에 위로를 받기도 했으나 소득보전이나 고용안전망과 같은 복지제도의 미비함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지병임이 확인되었다. 진단은 내려졌고 병증과 위기의식이 극적이었던 만큼 코로나19의 발발 이전이었다면 불가능해 보였던 파격적 정책실험 제안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보편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나 전국민 고용보험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문제는 돈이다. 한 국가의 살림살이에서 돈의 운용은 어디에 쓸 것이며 얼마나 쓸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으로 집약된다.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돈이 드는 여러 정책실험은 그 자체가 갖는 정책적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자칫 국가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는 문제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한국의 재정 건전성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인 인구구조 변화는 지난 20년간 재정당국의 걱정거리였다. 합계출산율 1.0명을 밑도는 저출산은 생산인구의 감소로 세입 여건을 악화시키고 초고령화로 인한 노인인구의 증가는 복지를 강화하지 않더라도 자연증가분에 의한 세출 확대로 이어진다.

인구구조 외에도 삶의 질에 대한 국민 욕구 상승, 세대별・계층별 소득 격차 확대 등은 복지 및 재분배 정책에 대한 재정 소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최근 긴급재난구호금을 위한 예산 편성 등으로 국가채무관리를 비롯한 재정건전성 논의가 다시금 현안으로 대두하기는 하였으나 사안 자체는 매우 묵은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이슈이다.

재정관리를 위한 방편은 크게 복지지출 확대에 대응하여 세입 또는 국가채무를 늘리거나 세입에 맞추어 세출을 조정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지출, 세입, 부채 간 관계를 감안하면 재정관리는 복지수준의 확대, 낮은 조세부담률, 낮은 국가채무 중 한 가지를 포기하는, 이른바 재정 트릴레마(Fiscal Trilemma)를 어떻게 푸는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고도성장기에는 낮은 정부 예산수준, 낮은 조세부담률, 낮은 국가부채 수준이라는 특징에서 보듯이 경제성장을 위해 복지를 희생하였다. 정부 예산수준은 꾸준히 상승하였으나 이에 대한 재원은 조세부담률의 급격한 상승이 아닌 높은 경제성장률에 연동하여 세원이 확대함으로써 조달 가능하였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통한 안정적 재원조달 모형은 지난 세기로 끝이 났다. 저성장 시대가 시작되었고 생산인구는 줄어들고, 노인부양인구는 늘어난다. 이제는 지출을 줄이든지, 세금을 더 내든지, 빚을 늘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성장동력의 저하에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 충격이 가세함으로써 경제에 혈액을 공급하는 긴급 수혈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그나마 국채 금리의 장기 하락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채 이자 부담의 비중이 2010년대 이후 꾸준히 하락하였다는 점은 재정운용에 있어서는 다행이라 하겠다. 2019년 국채 평균 조달금리는 1.7%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2015년에서 2019년의 기간 동안 정부 발행 국채 규모가 485조원에서 611.5조원으로 증가하였음에도 이자비용은 같은 기간 17.7조원에서 16.7조원으로 오히려 1조원이 감소하였다.

서머스(Lawrence H. Summers)나 블랑샤르(Olivier J. Blanchard) 등 유력 경제학자들의 전망은 국채 이자율의 세계적 하락이 한동안 지속하리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전망에 기대본다면 우리는 적어도 한동안은 부채비용의 급격한 상승 없이도 경기 대응적(counter-cyclical) 재정정책, 즉 경기 수축기에 재정 적자를 통해 정부예산을 확대하고 경기 확장기에 흑자 재정으로 정부 예산을 감축하는 안정화(stabilization) 정책을 추진할 여력을 얻은 셈이다.

다만 국채를 활용한 재정지출 확대는 정치적 부담과 책임성을 수반하는 증세에 비해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할 위험을 높인다. 급격하게 늘어난 예산을 효율성 평가 없이 지출사업으로 졸속 편성한다면 이는 경제에 대한 수혈효과보다는 재정 비효율에 따른 동맥경화 현상을 심화시켜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재정확장 국면을 지나 국채 이자비용 부담이 커지는 시기로 진입하면 한편으로는 점진적 세입 확대를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세출의 효율화를 통해 재정건전화를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경기대응적 재정정책의 일환으로 국채 발행을 확대하는 시기에도 재정지출 구조의 효율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건전화를 위한 재정제도의 구축과 관련하여서는 독일 만하임 대학 본 하겐(von Hagen) 교수의 1992년 연구 및 관련한 후속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von Hagen 교수의 실증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긴 시계의 지표를 통한 재정관리가 재정건전화에 도움이 된다는 중장기 지표관리 가설은 다소 미약하게 입증된 반면, 재정당국의 권한이나 역할과 관련한 재정제도가 영향을 준다는 재정제도 가설은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이 연구가 갖는 의미는 건전한 재정운용에 있어 관건이 단순히 정량적 지표 관리가 아닌 행정부에 대한 권한의 위임이든 정치권의 합의 프로세스를 통해서이든 큰 틀에서 정치권의 자율적 통제에 달려 있음을 밝힌 것이다.

한국의 상황에 von Hagen의 연구결과를 대입해 보자. 재정건전화 시기의 재정정책 수단은 증세 및 지출 효율화이다. 국회는 증세를 주도하는 권한과 정책결정에 대한 책무성을 갖는다. 지출 효율화는 예산 편성권을 갖는 행정부 재정당국에서 출발하지만 제출된 예산을 심의하고 승인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에 속한다.

결국 미래에 대비한 재정운용의 성과는 조세 입법과 예산심의에 있어 행정부에 비해 미약한 국회의 정책역량을 얼마나 끌어 올리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한다. 달갑지 않은 증세와 지출 효율화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회이기 때문이다.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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