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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술의 알콜로드]평양냉면같은 술, '송명섭 막걸리'

등록 2020.07.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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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가물 없는 '막걸리 원형'

단 맛 없이 담백하고 깔끔

청와대 만찬상에도 올라


【정읍=뉴시스】이학권 기자 = 송명섭 막걸리.(뉴시스 DB)

【정읍=뉴시스】이학권 기자 = 송명섭 막걸리.(뉴시스 DB)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주모, 여기 탁배기 한 사발 주시오!"

사극에서 이렇게 외치고 받아든 막걸리가 바로 이 맛일까? 첫 번째 쌀뜨물 정도의 희뿌연 액체를 입에 머금었다가 목구멍으로 넘겼는데, 어라? 이것 낯설다. 한참을 음미하듯 한 모금, 또 한모금, 한 사발을 비웠는데도 아리송하다. '어디서 이 느낌을 느껴봤지?'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을 때와 흡사한 낯설음이다. 애주가들 사이에서 '송막'이라고 불리는 '송명섭 막걸리'다. 전통주 제조 명인 송명섭씨의 태인합동주조(태인양조장)에서 만들어진다.

흔히 마시던 막걸리를 생각했다면 아마 당황스러울 것이다.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이는 처음에 "맛이 없어. 무(無)맛인데?"라고 했을 정도다. 이유가 있다. 시판 막걸리에서 강조하는 단맛이나 탄산이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쌀과 물, 누룩으로만 술을 빚었기에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

시중에 유통되는 막걸리 중 상당수는 아스파탐 등 인공감미료를 첨가해 단 맛을 낸다. 콜라나 맥주처럼 목젖을 탁 칠 수준의 탄산감도 있다. 그런데 첨가물을 넣지 않은 송명섭막걸리는 첫 입에 꽂히는 자극적인 맛이 없기 때문에 '왜 아무 맛이 안나지?"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달고 신 맛의 공장제 냉면 육수에 익숙했다가,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보고 받는 충격과 비슷하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셔보면 그제서야 쌀의 맛이 다가온다. 차게 식힌 진한 숭늉에서 알코올 기운이 은은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장터에서 주모에게 탁배기를 청하는 사극의 한 장면이 떠오른 것은 '막걸리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술을 맛봤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뉴시스] 송명섭막걸리는 매콤한 김치비빔국수에도, 튀겨낸 닭에도 좋았지만 집밥 한 상 차려놓고 마시는 것이 가장 어울렸다.

[서울=뉴시스] 송명섭막걸리는 매콤한 김치비빔국수에도, 튀겨낸 닭에도 좋았지만 집밥 한 상 차려놓고 마시는 것이 가장 어울렸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은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말과도 통한다. 별다른 안주를 차리지 않고도 밑반찬을 집어먹으며 한 사발, 또 한 사발, 끝을 모르게 들어가는 술이다. 매콤한 김치비빔국수에도, 튀겨낸 닭에도 좋았지만 집밥 한 상 차려놓고 마시는 것이 가장 어울렸다. 쌀로 만든 술이니, 마시는 밥이려니 하며 들이키다보면 어느 새 바닥이 보인다. 보통 막걸리 한 통을 다 비우면 입도 달고 더부룩해서 트림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런 거북함이 덜하다는 게 큰 장점이다.

송명섭 막걸리는 대형마트나 편의점 같은 대형 유통채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술은 아니다. 나는 정읍 태인버스터미널 옆 슈퍼에서 병 당 2000원에 사 들고 왔다. 20병 단위로 전화 주문을 하면 택배로도 받을 수 있다. 접근성은 떨어져도 입소문이 퍼지며 유명세를 얻은 술이다. 지난해 11월엔 청와대 만찬상에도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5당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연 만찬 회동 때 손학규 당시 바른미래당 대표가 추천해 화제가 됐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즐겨마시는 막걸리로도 알려져 있다.

곧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장마철엔 지글지글 부침개와 함께하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막걸리가 끓어오르지 않을 선선한 날, 20병을 주문해 지인들에게 인심을 베풀어볼까나.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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