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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and]차별금지법 발의한 의원들 몸살…"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록 2020.07.05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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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의원실과 개인 번호로 전화 빗발쳐…업무 지장

그럼에도 진보적 가치, 혐오 극복, 생존 위해 발의

항의 전화에 취지 자세히 설명해주면 납득하기도

"찬성하는 국민 80% 넘어…반대 소수가 과대대표"

거대여당인 민주당의 협조 필요…"회피 옳지 않아"

심상정, 종교계 지도자들 직접 면담·설득할 계획

[서울=뉴시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자필 팩스 (제공=권인숙 의원실)

[서울=뉴시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자필 팩스 (제공=권인숙 의원실)


[서울=뉴시스] 김남희 기자 = 정의당이 '21대 국회 5대 우선법안'으로 선정해 지난달 29일 발의한 차별금지법에 대한 저항이 거세다. 발의 전부터 '결사 반대' 서명운동이 시작된 데 이어 발의 후에는 공동발의 국회의원들에게 항의 전화 및 팩스가 이어지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법이 제정되면 차별을 당한 피해자가 법원을 통해 실효성 있는 손해배상, 적극적 구제 등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에 보수 기독교계가 반대해왔다.

발의에 참여한 정의당 의원 6명을 비롯해 권인숙·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민정 열린민주당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이 같은 반발의 직격탄을 맞았다.

뉴시스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별 금지를 법제화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생존을 위해, 소수자 혐오 극복을 위해, 진보적 가치를 위해, 구조화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등 결심의 배경은 다양했다.

[서울=뉴시스]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을 독려하는 문자(좌)와 반대서명 페이지(우) (제공=류호정 의원실)

[서울=뉴시스]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을 독려하는 문자(좌)와 반대서명 페이지(우) (제공=류호정 의원실)


◇항의 전화·문자 빗발…"동성애 처벌법 아냐" 설명에 감사 인사도

공동발의에 참여한 의원실에는 격한 항의 전화와 팩스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동성애를 조장하는 법'이라는 이유로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성적 지향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많다"면서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거나 동성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거나, 의원님 인성이 그것밖에 안 되니까와 같은 내용도 있었다"고 전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어떤 분은 정의당 의원 6명을 카톡에 임의 초대해 단체방을 만들어 항의하더라"며 "막내 비서가 전화를 받고 놀라서 울기도 했다"고 밝혔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의원실 구성원들이 민원 전화에 대응하느라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 전화로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게 목적인 것 같다"며 "발의에 찬성한 의원들 번호를 공유하고 항의하는 가이드라인을 설명한 글이 돌더라"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를 바탕으로 한 항의 전화에 법 취지를 찬찬히 설명하자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경우도 있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실이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군대 간 아들이 상사에게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를 못하냐, 동성애가 안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면 처벌받냐고 항의하는 등 논리적이지 못한 주장을 한다"며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감으로 무조건 반대하는 경우들"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 부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지 않고, 고용·교육·재화의 공급·행정서비스 이용 등 특정행위에 대한 차별이 있을 때만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며 "끝까지 들어주고 설명하다 보니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처럼 설득이 가능한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오히려 발의하기 전에 발의를 막으려고 전화가 더 많이 왔다"며 "잘못된 정보와 가짜뉴스가 혐오를 조장하더라도, 그 목소리가 국회에서 법을 통과하지 못하게 할 정도의 힘은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차별금지법 추진위원회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0.06.14.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 차별금지법 추진위원회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0.06.14. [email protected]


◇예고된 반발…그럼에도 입법 나선 이유는

배 원내대표는 발의 이유에 대해 "차별금지법은 과거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최근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의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법"이라며 "진보적 가치란 '사람이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이다. 어떤 정책을 펼치든 불평등과 그로 인한 불공정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정신"이라고 답했다.

강 의원 역시 "삶의 기본인 고용, 교육, 정부에서 제공하는 재화에서 차별을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지난번 국가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찬성하는 국민이 80%가 넘는다. 반대하는 소수가 과대대표된 것이고 침묵하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고 본다"고 짚었다.

그는 "많은 국민들이 찬성하는데도 불구하고 소수의 반대세력이 무서워서 하지 않으면 정치가 있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권 의원은 페이스북에 "오랫동안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왔고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극복을 지지해온 사람으로서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적었다.

용 의원은 "누군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마치 권리가 경쟁적인 관계에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데, 권리라는 것은 경합하는 게 아니라 모두의 권리는 보장돼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의원은 "차별금지법은 생존을 위해,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법"이라며 "문자나 전화로 배터리가 닳는다고 제가 뒤로 물러설 일은 아니다. 저는 이런 것을 하기 위해 정치인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민주당이 나서 당론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내걸어야 한다"며 "과거의 거센 저항에 대한 기억에 얽매여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개혁을 하라고 거대여당이라는 권력을 준 만큼, 그 권한을 필요한 곳에 행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한국교회수호결사대 등 단체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평등기본법)은 동성애 독재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2020.06.29.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한국교회수호결사대 등 단체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금지법(평등기본법)은 동성애 독재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2020.06.29. [email protected]

◇어렵게 발의한 차별금지법, 다음 목표는 '통과'

오랜 세월 풍파를 겪고 좌초를 거듭했던 차별금지법은 천신만고 끝에 이제 '발의'라는 첫 걸음을 내디뎠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까지 갈 길이 멀다.

정의당은 심상정 대표를 주축으로 시민사회와 손잡고 종교계 설득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배 원내대표는 "심 대표가 다음 주부터 종교계 지도자들을 찾아 직접 면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내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을 설득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배 원내대표는 "민주당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장에게 (법안 통과를) 공식 권고했고 각당 대표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라 본다. 각 당마다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실시해 발표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5%가 차별 금지를 법제화하는 데 찬성했다. '성적 지향·정체성' 항목에서도 응답자의 73.6%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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