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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이 카운터파트 요구하자 최선희 대신 등장한 김여정

등록 2020.07.10 18: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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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협상 권한 부여 요구하자 김여정 등판

비핵화 협상자는 최선희 제1부상이 맡을 듯

박원곤 "김여정 대미 일꾼 아니라 협상 안해"

임을출 "미국 역시 최선희가 실세라 평가"

[평양=AP/뉴시스]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강력히 반발하며 "남측이 이를 방치하면 남북 군사합의 파기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는 마당에 이런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2019년 3월 2일 베트남 호찌민의 묘소 헌화식에 참석한 모습. 2020.06.04.

[평양=AP/뉴시스]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4일 탈북민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강력히 반발하며 "남측이 이를 방치하면 남북 군사합의 파기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탈북민의 대북전단 살포에 불쾌감을 표하며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는 마당에 이런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봐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은 김여정 제1부부장이 2019년 3월 2일 베트남 호찌민의 묘소 헌화식에 참석한 모습. 2020.06.04.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10일 담화를 통해 북미 협상과 비핵화 문제에 관한 북한의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김 제1부부장이 등장한 시점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북한에 자신의 카운터파트(협상 상대)를 정해달라고 요청한 직후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이를 놓고 김 제1부부장이 핵협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중을 전달하기 위해 대리인 자격으로 등장한 차원인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김 제1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비핵화 협상에 관한 중요한 언급을 했다. 그는 "미국이 지금에 와서 하노이의 회담탁에 올랐던 일부 제재 해제와 우리 핵개발의 중추신경인 영변지구와 같은 대규모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다시 흥정해보려는 어리석은 꿈을 품지 않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제1부부장은 또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우리 위원장동지의 개인적 감정은 의심할 바 없이 굳건하고 훌륭하지만 우리 정부는 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 여하에 따라 대미전술과 우리의 핵계획을 조정하면 안 된다"고 북한의 핵 관련 방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우리의 핵을 빼앗는데 머리를 굴리지 말고 우리의 핵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데로 머리를 굴려보는 것이 더 쉽고 유익할 것"이라고 미국에 훈수를 뒀다.

김 제1부부장은 또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며 "조선 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의 행동과 병행해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향후 비핵화 협상 방침까지 밝혔다.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 밝은표정을 하고 있다. 2020.07.0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사진공동취재단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  밝은표정을 하고 있다. 2020.07.08.  [email protected]

이번 담화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을 총정리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양측 대표 간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나올 만한 중요한 사항들이다. 그런 사항을 핵협상 담당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아닌 김 제1부부장이 언급한 것이다.

김 제1부부장의 이 발언이 나온 시점 역시 주목된다. 비건 부장관은 방한 중이던 지난 8일 최 제1부상을 '권한도 없고 준비가 안 돼 자신과 마주 앉을 수 없는' 수준으로 격하시킨 바 있기 때문이다.

비건 부장관은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나와의 협상 대상을 임명할 때, 그리고 그 사람이 협상 준비가 돼 있고 협상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최 제1부상에 대한 '비토'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날 김 제1부부장의 담화로 최 제1부상의 위신이 깎이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 제1부상은 지난 4일 담화에서 "조미 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뤄 나가기 위한 도구로 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며 북미 대화 불가론을 폈다. 그런 뒤 6일 만에 김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북미)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른다"며 반대 입장을 내놨다.

김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여러 조건과 가능성을 언급하며 최 제1부상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장치를 마련하긴 했지만 최 제1부상의 협상 대표로서 위상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평양=AP/뉴시스】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9일 담화를 통해 "9월 하순께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최 부상은 미국에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들고나올 것을 요구했다. 사진은 최선희 부상이 2016년 6월 23일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밖에서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모습. 2019.09.10.

【평양=AP/뉴시스】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9일 담화를 통해 "9월 하순께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최 부상은 미국에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들고나올 것을 요구했다.사진은 최선희 부상이 2016년 6월 23일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 밖에서 기자들에게 브리핑하는 모습. 2019.09.10.

다만 북한이 비건 부장관의 협상 상대로 최 제1부상이 아닌 김 제1부부장을 내세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 제1부부장은 핵문제에 관한 전문성이 떨어지고 대표성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이날 뉴시스에 "현실적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면 최선희가 나올 것이다. 김여정은 대미 일꾼이 아니라서 최선희가 나오게 된다"며 "김여정 담화를 봐도 최선희가 했던 말을 완전히 뒤집기 힘드니까 조심스럽게 썼다는 것이 눈에 띈다"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여정은 김정은의 분신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실무는 최선희가 하면 된다. 김여정이 직접 나와서 하는 협상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김여정이 메신저로서는 역할을 하지만 실무 고위급 협상에 나와서 하기는 어렵다"고 평했다.

임 교수는 "외무상이 리선권인데 리선권이 회담을 제대로 할 권한을 가질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 역시 최선희가 실세라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서 최 제1부상을 상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 때문에 비건 부장관의 비토 발언은 최 제1부상 개인에 대한 공격이나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최 제1부상에게 비핵화 관련 권한을 부여하라는 요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직후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된 비건은 그간 최 제1부상을 비롯해 김혁철 전 주스페인 북한대사,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등을 상대로 협상을 벌였지만 협상에 진전은 거의 없었다.

임을출 교수는 "미국은 (비핵화 관련 권한이 부여되지 않은 최 제1부상 등을) 만나봤자 핵문제를 제대로 협상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김정은 지침을 와서 외우는 수준이기 때문"이라며 "비건의 말은 핵문제를 언급하고 협상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나오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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