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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피아니스트 김광민 "미각과 음감은 연결돼 있어요"

등록 2020.07.13 13: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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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 유명한 미식가

'놀면 뭐하니?' 출연 등으로 재조명

내달 15일 롯데콘서트홀서 콘서트

[서울=뉴시스] 김광민. 2020.07.13. (사진 = 오드아이앤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광민. 2020.07.13. (사진 = 오드아이앤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회사 근처 충무로 냉면집 만두가 이야기의 김을 피어오르게 했다. 지난 2018년 4월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 당시 방문한 옥류관을 돌아보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뜸이 들기 시작했다.

강남에 옥류관과 비슷하게 냉면을 만드는 식당을 비롯 서울의 강북·강남 그리고 의정부와 광명사거리 등 수도권 냉면집을 거쳐 집에서 냉면 만드는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소고기 사태를 사다가 핏물을 빼고 한 시간 정도 삶은 뒤 고기를 쓸어 놓고요. 면도 직접 뽑으면, 좋지만 그건 힘드니 마트에 가면 100% 메밀로 만든 면을 팔아요. 끓는 물에 6분 정도 끓이고 2분가량 찬물에 헹구면 차지게 되죠."

최근 대학로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에서 만나자마자 펼쳐진 작곡가 겸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60·동덕여대 실용음악과 교수)의 '냉면찬가'는 대화를 포문을 여는 근사한 10분가량 서곡 같았다.

그런데 미식 평론가가 아닌 음악가를 만나러 온 자리가 아닌가. 점심에 냉면을 먹었지만, 저녁에 또 냉면이 먹고 싶다는 마음을 삼키고 겨우 물었다.

"요리와 음악의 공통점이 많죠?"

김광민의 눈빛이 확 변했다. "그럼요. 미각과 음감은 연결이 돼 있어요. 맛을 예민하게 느껴야 하는 것처럼 음도 예민하게 느껴야 하죠. 둘 다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진 직관이 중요합니다."

맛과 음의 달인. 미식가이자 미음(美音)가. 내공이 탄탄한 고수는 이렇게 본색을 드러낸다.

최근 MBC TV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방구석 콘서트' 편에서 MC 유재석과 '티키타카'로 어설픈(?)면서 신선한 예능감을 보여줬지만, 김광민은 90년대 명민하고 서정성이 배인 곡들로 우리 음악의 지평을 넓힌 음악가 중 한명이다.
 
[서울=뉴시스] '놀면 뭐하니?' 김광민. 2020.07.12. (사진 = MBC TV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놀면 뭐하니?' 김광민. 2020.07.12. (사진 = MBC TV 캡처) [email protected]

정원영·한상원·한충완과 더불어 '버클리 음대 1세대'로 불리는 재즈 뮤지션. 세련되고 지적이면서도 대중성을 잃지 않은 김광민의 음악 덕에 한동안 국내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버클리 유학 붐이 불기도 했다.

1집 '지구에서 온 편지'(1991), 3집 '보내지 못한 편지'(1999)는 연주음반으로는 드물게 10만장 이상 팔렸다. 좀 더 실험적이었던 2집 '섀도우 오브 더 문(Shadow of the moon)'(1993)은 당시 대중적으로는 주목 받지 못했지만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 사이에서는 계속 명반으로 회자되고 있다.

5집 '타임 트래블'(2007) 수록곡 '학교 가는 길'은 지금도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명곡이다. 가수 겸 배우 아이유의 미니 3집 '리얼+' 수록곡 '나만 몰랐던 이야기' 연주를 맡기도 했다.

1집은 톺아볼수록 의미가 깊다. 수록곡 '지구에서 온 편지'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같이 건반을 쳤던 동료 유재하(1962~1987)에게 바치는 노래다. 수록곡 '레이니 데이(Rainy Day)'는 명 재즈 보컬 나윤선이 2001년 발표한 자신의 1집에서 노랫말을 붙여 다시 불렀다.

"맛을 느끼는 것은 미각이 좋아야 하잖아요. 음악도 귀가 좋으면 좋죠. 하지만 '절대음감'이라고 해도 불편할 수 있어요. 전조가 힘드니까요."
 
김광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수요예술무대'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일요예술무대' '토요예술무대' 등 요일에 따라 이름을 바꾸다가 수요일 심야시간대에 오랫동안 정착했던 이 프로그램의 출발부터 연주자로 함께 했다. 특히 오랜기간 MC를 봤다. 홀로 7년가량 사회를 봤고, 이후 가수 이현우와 느릿하면서도 편안하고 깊이 있는 듀엣 진행으로 인기를 누렸다.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3년 간 이 프로그램과 함께 했다.

[서울=뉴시스] '놀면 뭐하니?' 김광민. 2020.07.12. (사진 = MBC TV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놀면 뭐하니?' 김광민. 2020.07.12. (사진 = MBC TV 캡처) [email protected]

"'수요예술무대' 초창기에는 칙 코리아, 허비 행콕 등 재즈 뮤지션들의 무대가 많았어요. 그런데 당시 '오렌지족'이 재즈 음악을 한국에 가져왔다는 시선이 많았죠. '돈 많은 유학생'들이 자기네들이 즐기던 문화를 갖고 왔다는 여론몰이도 있었을 정도였죠." 하지만 재즈의 세련됨에 마니아들이 생겼고, 척박하던 재즈 공연 시장에도 점차 단비가 내리기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쳐온 김광민이지만 대학에서는 무역학을 전공했다.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정명훈처럼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해온 것이 아니면 계속 음악을 하는 것이 힘들지 않겠냐"는 부친의 말씀을 따랐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에서도 음악의 끈은 놓지 못했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동서남북'에서 활동했고 대학가요제에서 동상을 수상한 밴드 '시나브로'에도 몸담았다. 연주력이 뛰어났던 만큼 거장들이 그를 세션으로 요청했다. 김민기, 양희은, 조동진 등의 앨범에 참여했으며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건반 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특히 음악을 하는 것을 거듭 반대했던 김광민의 부친을 설득하기 위해 조용필이 직접 집에 찾아온 이야기는 유명하다. 조용필은 "아버님, 광민이는 음악을 계속 해야 합니다"라고 김광민의 부친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당시 조용필을 보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잔칫날'처럼 김광민 집에 몰려들기도 했다.

결국 세션 활동을 하며 대학생에게는 버거울 정도로 큰돈을 번 김광민은 그걸 밑천 삼아 미국으로 음악 유학을 떠났다. 현지에서 재즈뿐만 아니라 록, 펑크 등 다양한 장르 음악을 섭렵한 김광민의 서정성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김광민은 "어머니께서 어릴 때 들려주신 자장가, 부모님의 사랑, 바흐·베토벤·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가 큰 영감을 줬다"고 했다.

얼마 전 타계한 이탈리아 출신 영화 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도 마찬가지다. 김광민은 예전부터 이 거장에 대한 존중을 누누이 표해왔다. 특히 김광민이 좋아하는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은 이탈리아 영화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들 중 '석양의 갱들'(1971).

"'석양의 갱들'은 서부 영화인데 슬퍼요. 초등학교(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아파서 학교도 못 갔는데, 영화관에 갔죠. 제임스 코번이 나온 멕시코 혁명에 관한 영화였는데 음악이 너무 슬펐던 기억이 나고 아직까지도 좋아해요."

[서울=뉴시스] 김광민. 2020.07.13. (사진 = 오드아이앤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광민. 2020.07.13. (사진 = 오드아이앤씨 제공) [email protected]

그러면서 레오네 감독과 모리코네의 또 다른 합작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테마를 직접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김광민하면 또 떠오르는 수식은 '국내 실용음악학과 대부'다. 1998년부터 동덕여대 공연예술대학 교수로 재직해오고 있는 그는 특히 재즈를 연주하는 친구들이 설 무대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재즈 클럽도 없는데다가 연주를 해도 하루에 몇 만원도 못 벌죠. 재즈, 뉴에이지 분야에 대한 지원도 필요합니다. 비교적 현실적인 일들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끔 조언하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죠."

김광민은 내달 1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콘서트를 연다. 2017년 6집 정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 이후 3년 만의 단독 콘서트다. 롯데컬처웍스와 크레디아 뮤직앤아티스트가 공동 제작한 '썸머 브리즈'의 하나다. 프로그램은 구상 중으로, 자신의 대표곡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우울하고 경제도 좋지 않고, 코로나19로 공연도 힘든 때죠. 많은 분들이 정화되고 치유를 받아서 시원한 여름이 될 수 있는 공연으로 꾸밀 계획입니다."

재즈, 뉴에이지 음악 위주로 알려져 있는 김광민이지만 펑크, 프로그레시브 같은 음악에 관심이 많고 일가견이 있다. 향후 그의 음악적 부캐(부캐릭터)가 탄생하는 기대감이 드는 이유다. "'김광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한번 시작하면 흐지부지되는 게 싫어 신중하게 고민 중이죠."

교수실 문을 나가기 전 김광민에게 홍대입구역 건물 지하 푸드코트에 숨은 냉면 맛집이 있다고 귀띔했다. "한번 가볼게요. 냉면 맛집 정보가 있으면 교환합시다. 하하." 음을 매개로 한 하모니뿐만 아니라, 음식을 매개로 삶의 화음까지 만들어내는 그는 오선지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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