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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백제 왕릉, 지금보다 훨씬 컸다…부여 능산리 고분 확인

등록 2020.07.15 15: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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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부여 능산리 고분군 항공사진.(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7.1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부여 능산리 고분군 항공사진.(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7.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정규 기자 = 사비시대 백제의 왕릉 규모가 현재까지 드러난 규모보다 훨씬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백제 사비도읍기의 왕실묘역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에 대해 지하물리탐사를 실시해 백제 사비기 왕릉의 배치와 규모를 이같이 확인했다고 15일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백제 후기 능원의 종합적인 학술연구를 위해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대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묘역 중앙부와 진입부를 대상으로 지하물리탐사를 실시했다. 지하물리탐사는 땅의 물리적 성질 변화를 측정해 땅 속 구조물이나 매장문화재의 분포를 판단하는 고고과학 기술의 일종이다.

조사 결과 각 봉분의 외곽에 호석(護石·무덤의 봉분 외곽에 두르는 돌)으로 판단되는 이상체 반응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사비기 백제 왕릉의 봉분은 현재 복원·정비돼있는 지름 20m의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됐을 것으로 파악됐다.

왕릉의 배치는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모여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두 기씩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왕과 왕비의 무덤이 함께 조성됐거나 가족단위로 무덤이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사비기 왕릉군으로 백제 능원제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고분군의 서쪽에 있는 능산리 사지(능사)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출토된 바 있다.

[서울=뉴시스] 부여 능산리 중앙고분군과 남쪽의 평탄대지에 대한 지하물리탐사 결과.(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7.15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부여 능산리 중앙고분군과 남쪽의 평탄대지에 대한 지하물리탐사 결과.(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7.15 [email protected]

이 지역에 백제 고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1757년 제작된 '여지도서'에도 능산(陵山)으로 표시돼있는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굴조사는 1915년 일본인인 구로이타 가쓰미(黑板勝美)와 세키노 다다시(關野貞),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谷井齊一)가 처음 실시했지만 정식보고서 없이 간단한 설명과 사진 몇 장만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는 1966년 보수공사 중 조사된 7호분과 함께 총 7기의 고분이 정비돼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국립부여박물관과 함께 능산리 고분군중 동하총(1호분) 내부 관대(棺臺) 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이어 능산리 중앙고분군의 전체 시굴조사도 계획돼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러한 조사를 통해 고분간의 선후관계가 확인된다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사비기 왕릉의 주인과 백제 후기 능원의 모습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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