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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and]조문 논란에 드러난 정의당 세대 갈등…'성장통'일까

등록 2020.07.19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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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조문 놓고 진보정당 1·2세대와 3세대 마찰

심상정 등 중장년-류호정·장혜영 역사 경험 차이

'사회운동 동지' vs '젠더감수성 우선' 가치 충돌도

親與 성향 당원 상당수…민주당 2중대 갈등 상존

"우린 범여권 아냐" vs "소수 운동권 전락할 거냐"

혁신위, '포스트 심상정' 위한 지도체제 개편 박차

"과도기적 연합정치 거쳐야 리더십 및 세대 교체"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2020.07.16. bluesoda@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2020.07.1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을 둘러싼 정의당의 이른바 '조문 파동' 여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안은 심상정 대표로 비견되는 진보정당 1·2세대로부터 근래 주축을 이룬 신진 3세대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정의당의 세대 갈등이 드러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성장통'을 극복하고 리더십 교체를 비롯한 혁신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10일 박 시장 빈소가 차려진 것이 시발점이었다. 류호정·장혜영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2차 가해를 우려해 조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류 의원은 박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를 향해 '네 잘못이 아니야(It' not your fault)'라는 영화 '굿 윌 헌팅' 대사를 인용해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반면 심상정 대표, 배진교 원내대표, 강은미 원내수석부대표는 직접 조문을 했다. 심 대표는 두 의원의 조문 거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조문을 온 것으로 답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말 사이 류·장 의원 페이스북과 정의당 당원게시판에는 조문 거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탈당하겠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정혜연 전 부대표는 11일 "원내에서 우리당의 스피커가 되는 청년 국회의원이 지금의 상황의 원인이라는 것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조문 거부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박 시장 장례를 마친 13일에는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탈당하겠다는 당원들에 맞서 두 의원을 행동을 지지하는 당원들이 SNS에 '#탈당하지_않겠습니다' '#지금은_정의당에_힘을_실어줄_때'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다. 정의당 지도부에선 박 시장 조문도, 피해자 보호도 모두 당의 입장이라고 표명했다.

불붙던 내홍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14일 심상정 대표의 공개 사과였다. 심 대표는 "두 의원의 메시지가 유족들과 시민의 추모 감정에 상처를 드렸다면 대표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그러자 두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부터 '도로 민주당 2중대'라는 비판이 혼재돼 더욱 어지러운 상황이 됐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로써 이 분에 대해 가졌던 마지막 신뢰의 한 자락을 내다 버린다. 저 말 한마디로 피해자가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라 절망했던 그 '위력'에 가담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심 대표가 전직 비서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뉴시스] 심상정 당대표의 의원총회 사과 발언에 대한 철회 요구 성명서(왼) 류호정 비례의원 당원소환 연서명(오)

[서울=뉴시스] 심상정 당대표의 의원총회 사과 발언에 대한 철회 요구 성명서(왼) 류호정 비례의원 당원소환 연서명(오)


15일 성남시위원회 소속의 한 당원이 류호정 의원에 대한 '당원소환' 연서명을 올리자,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저스트 페미니스트)은 '심상정 당대표의 의원총회 사과발언에 대한 철회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연서명을 받으며 맞불을 놓는 장면도 연출됐다.

주초 절정으로 치닫던 내홍은 주후반에 들어서며 가라앉는 모양새다. 장혜영 의원은 16일 TBS 라디오 '김지윤의 이브닝쇼'와의 인터뷰에서 심 대표와 만난 사실을 밝히며 "저나 류 의원에 대한 존중의 의사가 달라졌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고 하는 거는 확인을 할 수가 있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심 대표도 전직 비서를 지칭하는 표현을 '피해자'로 정정했다.

정치권에선 일련의 사태를 놓고 정의당의 세대 갈등이 표면에 드러났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심상정 대표(61세), 배진교 원내대표(51세), 강은미 원내수석부대표(49세)는 모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50·60세대로, 진보정당 활동가 1~2세대에 해당한다.

장혜영 의원은 33세, 류호정 의원은 27세로 장애인 인권 및 페미니즘, 청년노동 문제에 천착하다 지난 21대 총선 전 입당했다. 진보정당 3세대로 분류된다. 두 의원을 비판한 정혜연 전 부대표는 30세로 연령대는 같지만 지난 2009년 입당해 일찍부터 진보정당 활동에 몸을 담아왔다.

이런 세대차는 자연히 '역사적 경험'의 차이로 이어진다.

박 시장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설립과 참여연대를 주도하고 '희망제작소'를 세운 사회운동가인 동시에 9년 가까이 서울시장을 지내며 시민사회단체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진보정당 1·2세대는 박 시장과 연대감 또는 동지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반면 진보정당 3세대는 박 시장과 시민사회운동의 궤적이 그닥 겹치지 않는다. 박 시장을 운동가가 아닌 단지 '서울시장'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성추행 의혹에 따른 피해자와의 연대의식과 젠더감수성에 더 민감하다. 최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의 동반 폭락을 주도한 것이 여성·30대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 이른바 '민주당 2중대' 논란이 더해졌다. 민주화운동 동지 세대가 민주당과 정의당 양당의 핵심부에 두루 분포한 데다가, 과거 선거 국면마다 이뤄졌던 '야권연대'의 경험은 진보 1·2세대와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정의당 장혜영(오른쪽), 류호정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0.07.1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정의당 장혜영(오른쪽), 류호정 의원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0.07.14. [email protected]


고(故) 노회찬 의원 사망 후 친(親)민주당 성향 당원들이 대거 입당한 것도 정의당의 민주당에 대한 태도를 복잡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이들의 입당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노 의원 후원회장을 지낸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과 민주당이 부딛히는 갈등 국면마다 이들의 비판적인 목소리가 대두됐다.

진보정당의 전통적 가치인 노동에 젠더·환경 등의 가치를 배경으로 입당한 3세대로선 이들 민주당 성향 당원과의 갈등을 피하기 어렵다. 총선 국면인 지난 3월 당시 청년선거대책본부장이던 장 의원은 정의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찬성했던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는 입장을 공개리에 밝혀 이미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김종철 선임대변인은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정의당 관련 보도에서 '범여권 정의당' 표현은 가급적 피해달라"면서 여권과 거리를 벌렸지만, 성현 혁신위원은 혁신위 회의에서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는 것이 혁신이 아니라, 민주당 2중대 '공포증'을 벗어나는 것이 혁신"이라고 주장해 대조를 이뤘다.

성 혁신위원은 "민주당 2중대라는 잘못된 인식은 오히려 우리 당을 소수의 운동권 정당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며 "이념적으로 더 선명해지는 것이 우리가 갈 길이라면 왜 진작에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은 다수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대중정당의 길을 가지 못했는가"라고 반문했다.

결국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다양한 세대와 가치가 정의당에 유입된 만큼 당대표 1인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체제에서 벗어나 연합정치로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심 대표는 21대 총선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얻은 뒤인 지난 5월 임기 단축과 함께 "당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아젠다 혁신, 새로운 리더십으로의 교체를 위한 독립적인 집행권한을 갖는 혁신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면서 '포스트 심상정'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정의당 혁신위원회는 현 당대표·부대표의 골간을 유지하되, 당대표의 권한을 분산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에 가까운 지도체제 개편 혁신안을 가다듬고 있다. 혁신안 초안은 오는 19일 공개될 예정이다.

정의당 당헌상 '당대표의 보좌역'인 부대표에 권한을 넘겨주고 당대표에 몰린 의결 구조도 손질하는 방안이 고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당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과도기적 단계인 집단지도체제의 연합정치 모델이 일단 필요하다"며 "이 단계가 일정하게 지나야 당의 리더십 교체와 주도 세대가 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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