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터뷰]"가치를 입는 거죠"…'음악을 입다' 백영훈

등록 2020.08.09 09:56:46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뮤직티셔츠' 300여벌 모은 음악마니아, '음악을 입다' 발간

[서울=뉴시스] 2003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기념 티셔츠. 2020.08.09. (사진 = 백영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2003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기념 티셔츠. 2020.08.09. (사진 = 백영훈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제가 왜 음악을 소유하는 것에 무게를 두느냐, 고민해본 결과 뮤지션의 아웃풋까지 아끼기 때문이에요. 음악을 좋아하는 것에서 나아가 태도와 가치까지 내재화하겠다는 뜻인 거죠. 그래서 음원도 듣지만 CD도 사고 LP도 사고 자서전까지 사는 거 아닐까요?"

졸졸졸 흐르는 시내처럼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흘러 듣는 시대, 백영훈(50) 오라클코리아 상무가 '뮤직 티셔츠'를 입고 소유하는 이유다. 뮤지션의 음악뿐만 아니라 정신과 태도까지 소유하겠다는 다분한 선언.

백 상무가 최근 펴낸 저서 '음악을 입다 – 스트리밍 시대에 음악을 애정하는 새로운 방법'(브릭스 펴냄)은 '티셔츠의 음악학'이라고 부를 만하다.

뮤직 티셔츠 300여벌을 모은 '음악 애호가'인 백 상무가 옷장뿐 아니라 추억까지 열어젖힌 '음악 창고'다. 뮤직 티셔츠는 뮤지션의 얼굴, 로고, 앨범 커버, 공연 기념 이미지 등 음악과 관련한 것이 프린트된 모든 티셔츠를 가리킨다.

최근 삼성동에서 만난 백 상무는 "저의 티셔츠에 대한 지론은 사람을 나타내는 미학이라는 거예요. 자신의 개성, 취미, 취향의 기승전결"이라고 말했다.

"어느 날 건널목을 지나는데 30대 초반의 젊은 친구가 라디오헤드 티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가사가 적힌 티셔츠였는데, 서로가 말은 안 했지만 티셔츠만 보고도 동질감을 느끼고 즐거운 자극을 받았죠. 티셔츠만으로 관계에 화학 작용이 생기는 겁니다."

[서울=뉴시스] '음악을 입다'. 2020.08.09. (사진 = 브릭스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음악을 입다'. 2020.08.09. (사진 = 브릭스 제공) [email protected]

지난 2003년 직접 다녀온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을 기념하는 검정 티셔츠를 입고 나온 백 상무가 젊은 기운을 풍기며 17년 전의 얼굴로 해맑게 말했다. 

백 상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뮤직 티셔츠는 '1995년 10월 5일, 서울, 코리아'가 박힌, 팻 메스니 그룹(PMG)이 앨범 '위 라이브 히어' 발매를 기념해 내한한 공연 버전이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었던 백 상무는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시기임에도 공연이 너무 황홀해 역사의 현장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3만원을 주고 산 '위 라이브 히어' 티셔츠를 해질 정도로 입고 다닌 탓에 그 옷은 몇 년 만에 잠옷이 됐다. 그렇게 십년의 세월을 백 상무와 함께 티셔츠가 버텨내는 동안 메스니는 꾸준히 앨범을 발표했다.

자연스레 백 상무는 그의 앨범 재킷이나 연주 모습이 그려진 옷을 여러 벌 사들였다. 메스니를 입는 것이 메스니를 듣는 것과 동격이 됐다. 백 상무는 "그가 그렇듯 나 역시 계속해서 무언가를 모색하며 그가 진행하는 현재의 음악을 늘 새롭게 듣는다"고 책에 썼다.

언젠가 책을 한번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백 상무가 '음악을 입다'를 집필하는데 큰 영감을 준 건, 어느 날 회사 근처 카페에서 열람한 '빈티지 티셔츠' 관련 책이었다. 텍스트는 거의 없고 각종 티셔츠의 디자인을 담은 책이었다.

[서울=뉴시스] 라디오헤드, 2012년 지산 록 페스티벌 공연 기념 티셔츠. 2020.08.09. (사진 = 백영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라디오헤드, 2012년 지산 록 페스티벌 공연 기념 티셔츠. 2020.08.09. (사진 = 백영훈 제공) [email protected]

이후 백 상무가 집에서 티셔츠를 정리해봤더니 티셔츠의 90% 이상이 음악 관련된 것들이었다. 8박스에 가득 담겨졌다. 뮤지션·앨범 관련 내용과 함께 티셔츠를 살 때의 추억, 각종 에피소드를 매개로 독자와 음악을 나눌 수 있는 책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특정 분야에 열광하는 이들을 '덕후'라는 이름으로 희화화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전문 지식과 열정이 문화를 진화시키는 원동력인 것이 증명된 뒤 '마니아'라고 칭하며 대접을 해주는 것이 현재 사회 분위기다. 백 상무는 본업에 충실하면서 '인생의 여분의 시간'을 음악을 듣고 콘서트를 가는 것으로 채웠다.

사실 백 상무는 어릴 때 라디오 PD를 꿈꿨다. 중학교 1학년 때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Billie Jean)'을 듣고 음악이라는 신세계에 빠진 그는 펫 숍 보이즈, 제프 벡, 메탈리카, U2, 라디오헤드, 욜라탱고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각종 음악을 섭렵했다.

2000년대 들어 언니네이발관, 나윤선 같은 국내 뮤지션들에게 빠져 들었다. 언니네이발관과 나윤선은 관련 티셔츠가 없어 아쉽게도 이번 책의 명단에서 빠진 뮤지션들이다. 

백 상무에게 소유한 티셔츠 중 가장 아끼는 세 벌을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첫 해외 원정 공연 관람이었던 2003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기념 티셔츠, 라디오헤드가 첫 내한공연했던 2012년 지산 록 페스티벌 티셔츠, '데이비드 보위 블랙 스타-폴 스미스 에디션'을 꼽았다.
[서울=뉴시스] '데이비드 보위 블랙 스타-폴 스미스 에디션'. 2020.08.09. (사진 = 백영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데이비드 보위 블랙 스타-폴 스미스 에디션'. 2020.08.09. (사진 = 백영훈 제공) [email protected]


백 상무의 음악적 취향은 유연하다. 아이돌 그룹도 포함된다. '샤이니'를 가장 좋아하는데 '누난 너무 예뻐' '뷰'를 명곡으로 꼽는다. 트와이스, 블랙핑크도 좋아하는 그룹이다.

그렇게 예민한 감수성으로, 젊은 기운을 품고 사는 백 상무의 모습에서 꼰대의 흔적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제가 스스로 꼰대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회사 직원 중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다만 제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만큼 고루한 생각과 미학을 강조하거나, 제 취미를 정답처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코드가 통하더라도, 조심스럽게 다가가려고 하죠."

백 상무는 업도 아닌 음악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그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라며 한참을 뜸들였다. 그러면서 역시 음악 마니아인 영국 작가 닉 혼비가 자신에게 노래는 '수수께끼 같다'고 말한 내용을 떠올렸다. 본인에게 음악은 수수께끼 같고, 금방 풀리면 시시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다.

"음악은 제가 하고 싶지만 못한 표현을 대신 해주는 '아웃풋'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것을 어떻게 일깨워주는 지는 몰라서 계속 해석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마음의 수수께끼가 되는 거죠. 날씨, 자신의 연애와 처지 등이 결부돼 더 새롭거나 각별하게 다가오고. 그것이 음악의 매력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