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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북한 수해 대처, 예전과 다르다고?

등록 2020.08.14 17:5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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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신속하게 수해 현장 방문해 대책 지휘

이례적으로 피해 모습을 거리낌 없이 공개

김정일 시대보다 문제 해결 능력 나아진 측면 있으나

자력갱생, 정면돌파전으로 식량 부족 등 난제들 풀기엔 역부족

인도적 대북지원 가능성 열어놔야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북한에 지난 7월 19일경부터 시작된 장마는 폭우와 태풍을 동반하면서 8월 열흘간에만 최대 800mm 이상 집중 호우가 발생하는 등 전국 평균 315mm가 넘는 비가 내렸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년도 12월 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자연재해 대응을 논의했던 만큼 직접 수해 현장을 찾기도 하고 '국무위원장 전략예비물자' 양곡을 보내며 신속한 복구에 나섰습니다. 이번 <창 넘어 북한>에서는 북한 수해 상황을 보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에디터 강영진입니다.
이제 막바지입니다만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습니다. 피해도 막심합니다. 수해를 입은 분들이 하루빨리 안정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번 주는 북한의 수해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장마전선이 한반도 남쪽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북한에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지요. 오늘자 노동신문은 농작물 피해 면적이 3만 9,296정보이며, 주택 1만 6,680세대와 공공건물 630여동이 무너지거나 침수되고, 도로와 다리, 철길이 끊어지고 발전소 댐이 무너지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인명피해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북한도 우리 못지않게 지금 수해복구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물난리는 많은 걱정을 일으킵니다.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1990년대 후반의 ‘고난의 행군’도 직접적으로는 3년 동안 큰 물난리와 가뭄, 냉해가 되풀이되면서 발생했습니다. 공산권 경제 블록이 해체돼 외톨이가 된 북한에 자연재해가 연거푸 이어지면서 식량 생산이 큰 폭으로 줄어들어 대규모 기아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당연히 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력한 국경봉쇄와 국내 이동제한 조치를 6개월 넘게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북한은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제제재를 3년째 받고 있습니다.여기에 신기록을 세운 장마가 이어지면서 북한 대부분 지역에서 물난리가 발생했습니다.말 그대로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20세기말의 끔찍했던 ‘고난의 행군’을 떠올리는 게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당시 고난의 행군을 우리가 나서서 막는 건 여건상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길거리에 굶어 죽은 사람이 즐비하다는 소문이 들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북한 어린이들 사진을 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움은 지금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번에 고난의 행군 같은 일이 되풀이될 조짐이 있다면 적극 나서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올해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지난 7일 북한 매체들은 일제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 일대를 직접 시찰하면서 복구와 지원 대책을 지시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어 9일에는 이른바 '국무위원장 전략물자' 양곡이 대청리에 전달됐고, 다음날에는 노동당 중앙당 직원들이 마련한 지원물자가 전달됐습니다.
 
지원품 전달식이 열리고 ‘김위원장의 친어버이 같은 보살핌에 감격해 마지 않는’, 대청리 주민들의 모습을 전하는 기사들이 노동신문과 북한 TV에 수해사실보다 더 크게 보도된 건 물론입니다. 수해 현장마저 김위원장 우상화에 활용한다는 느낌이 들어 개운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20여년 전 참극이 벌어지는 걸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을 떠올리면 안도감이 들기도 합니다. 적어도 북한 당국이 예전과 달리, 재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으니까요.

이번에 북한은 이례적으로 수해 현장을 거리낌 없이 공개했습니다. 물에 잠기고 무너진 허름한 북한 농촌 마을 모습을 북한 매체가 직접 공개한 건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피해 사실도 비교적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북한에서 큰 물난리가 났다고 기사를 쓰면서 피해규모를 알기 힘들어 애를 먹었던 일을 생각하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시절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낙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협박하고 애원하던 안내원들이 생각납니다. 김정일 시대엔 아무리 큰 물난리가 나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현장에서 대책을 지휘한 사례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달라진 북한의 모습은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있는데도 한사코 감추기만 한다면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이번에 김위원장은 물에 잠긴 대청리 마을에 800채의 주택을 새로 짓도록 지시했습니다. 북한 당국의 문제 해결 능력이 김정일 시대에 비해 훨씬 나아졌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물론 김위원장이 황해도 시골마을까지 간 걸 대대적으로 알리는 건 김위원장 우상화를 위한 정치적 목적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이 이번에 수해현장을 공개한 건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실용주의적 자세입니다.

하루 이틀 사이 일단 장마가 끝날 것이라고 합니다. 비는 그치더라도 피해를 복구하기까지, 또 이재민들이 다시 안정을 찾기까지, 우리도 북한도 한동안 정신없이 매달려야 할 형편입니다. 우리로선 피해 현장을 복구하고 이재민을 안정시키는 것으로 이번 물난리는 사실상 마무리될 겁니다. 그런데 북한은 우리와 달리 수해현장 복구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부족 국가입니다. 매년 100만 톤 이상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번 수해가 북한의 식량난을 한층 가중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무너진 집과 도로와 하천을 새로 짓고 정비하는 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요. 그렇지만 이미 죽어버린 벼와 옥수수를 되살릴 길은 없습니다. 죽진 않았더라도 물에 잠겼던 벼와 옥수수가 제대로 영글 수 없다는 건 상식입니다.

올해 중국은 북한에 식량을 80만톤이나 지원했다고 합니다. 내년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식량지원이 필요할 지 모릅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제재만 해도 버거웠는데 코로나19가 겹치고 큰 물난리까지 당한 상황에서 지금까지처럼 '자력갱생'과 '정면돌파전'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대처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김위원장이 수해현장을 시찰하는 모습에서 보인 실사구시적인 자세를 우리와 미국을 향해서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얼마 전 김여정이 뜬금없이 트럼프 미대통령에게 미국의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장면이 담긴 DVD를 받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과 다시 만나면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 뭔가 꿍꿍이가 진행중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또 올 들어 한사코 우리 정부를 상대하지 않겠다면서 개성 사무소를 폭파해버린 북한의 태도가 최근 달라지는 조짐도 있습니다. 우리 정부를 향한 비난이 사라진 겁니다. 뭔가 변화가 있는 걸까요? 마침 우리 정부의 대북 라인도 모두 바뀌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이후 가장 큰 피해가 났다는 이번 장마가 남북간에 새로운 기류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다음 주부터 2주 동안 한미합동군사연습이 진행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미국 본토에서 미군이 추가로 투입되진 않고 컴퓨터 시뮬레이션 위주로 훈련이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번 훈련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면 2개월여 남은 미국 대선 때까지 북한이 어떻게 행동할 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창넘어 북한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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