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여의도 and]서훈의 '보안 철저' 경고와 박지원의 '병가지상사'

등록 2020.08.16 12:49:34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훈, 靑 출근 첫 날 "정보 유출 용서 안 해" 엄중 경고

국정원장 재직 시절 동선 노출돼 곤욕 치렀던 경험

박지원, 페북에 "교회 간다"…셀프 동선 노출 부적절

현직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같은 실수 반복 없어야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국가안보실장에 내정된 서훈 국정원장이 3일 오후 청와대 대브리핑룸에서 이임사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오르고 있다. 2020.07.03. since1999@newsis.com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국가안보실장에 내정된 서훈 국정원장이 3일 오후 청와대 대브리핑룸에서 이임사를 하기 위해 단상으로 오르고 있다. 2020.07.0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저는 무능력한 사람은 용납해도,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로 흘리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지난달 서울 내곡동에서 삼청동으로 출근한 첫 날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안보실 직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남긴 말이라고 한다. '영원한 정보맨'으로 살아온 그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외교관 출신인 전임자 체제의 관성에 젖어있던 안보실 직원들을 각성시키는 데는 저 한 마디면 충분했다고 한다. 공개 경고. 그의 뛰어난 업무 장악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 실장이 정보 유출을 각별히 단속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자신이 국정원장에서 안보실장으로의 교체 발표가 예정된 당일 특정 조간 1면에 관련 소식이 먼저 소개됐다. 전임자인 정의용 실장이 전날 고별 만찬을 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서 실장은 전임자의 발언까지 활자화 된 것은 내부자 소행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판단했다. 그 중에서도 동선 노출 부분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고 한다.

서 실장은 지난해 국정원장 재직 시절 동선 노출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MBC 김현경 기자의 만찬 회동이 기사화 돼 파장이 일었었다. 지하철을 이용한 양 원장의 뒤를 밟은 기자 때문에 의도치 않게 자신의 동선도 함께 노출됐다. 차량과 번호판까지 고스란히 찍혀 인터넷에 돌았다. 모든 일정과 동선 자체가 보안사항인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였다.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경철청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0.07.29.since1999@newsis.com

[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경철청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mail protected]

국정원 직원 역시 평소 신분 노출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대외업무 담당자의 명함에조차 이름 석자와 휴대전화 번호 외엔 어떤 것도 적혀있지 않다. 유독 여백이 많은 국정원 명함을 처음 받는 사람들은 묘하게 위압적인 느낌까지 받는다. 바로 옆자리 직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가족조차 정확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야 하는 조직이 국정원이다.

국정원 직원이 자신의 신분 노출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2014년 7월7일 당시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방송사 카메라기자로 신분을 위장한 채 청문회장에서 은밀히 자신의 자료를 도촬하던 국정원 직원을 적발해 냈다. 청문회장 밖으로 끌려나온 이 직원은 박 의원이 목에 걸린 신분증을 압수하려 하자 필사적 몸부림으로 막아냈다. 신분이 탄로나는 순간 처벌 받는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과거 재임 시절 즐겨봤다던 유명 첩보 드라마 '홈랜드(Homeland)'는 미국중앙정보부(CIA)를 중심으로 한 스파이들의 모습을 비교적 자세히 그리고 있다. 탈레반 소탕 작전에 관여한 전직 CIA 국장의 동선이 파키스탄 중앙정보부(PCI) 소속 공작원에게 노출돼 미국 대사관 전체가 위협에 빠진 에피소드는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2008년 작 '모스트 원티드 맨'에서는 근본주의 무슬림 기반의 테러조직 배후를 캐기 위해 체첸인 이사 카르포프의 동선을 끊임없이 추적한다. 두 첩보 드라마와 소설은 동선 노출은 곧 큰 위험이 동반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박지원 국정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서 비공개 회의를 하기 위해 자리 이동을 하고 있다. 2020.07.30.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박지원 국정원장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권력기관 개혁 당정청 협의에서 비공개 회의를 하기 위해 자리 이동을 하고 있다. 2020.07.30. [email protected]

박지원 신임 국정원장은 이달 초 집중 호우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내용의 페이스북 글로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섰다. 후보자 지명 순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SNS 중단을 선언한 지 한 달도 안돼 스스로 약속을 져버렸다. 더 큰 문제는 해당 글에서 자신의 동선을 노출한 것이었다. "교회에 간다", "아내에게 가려다 폭우로 연기했다" 두 문장을 공개적으로 띄웠다.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곧 수정했다. 평생을 정보맨으로 살아온 전임자가 동선 노출을 극히 조심하던 것과 '정치 9단' 출신 새 국정원장의 태도는 사뭇 대조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박 원장의 'SNS 금단(?)' 증세의 부작용을 보면서 2년 전 문 대통령의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고려호텔 프레스센터를 찾아 포털에 실린 자신의 기사를 검색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공통된 습관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본능에 충실했던 것으로 당시는 이해 했었다. 하지만 정보기관 수장에 오른 뒤로는 얘기가 다르다. 스스로 "앞으로는 정치의 政자도 꺼내지 않겠다"고 했던 현직 국정원장이다. 철저한 자기 통제로 유명한 박 원장인 만큼 SNS 절필은 물론, 동선을 노출하는 실수도 반복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초반에 보여준 모습은 '병가지상사'였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