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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푸른언덕' 사는 정밀아 "면목 있는 사람이 되고 싶죠"

등록 2020.11.27 10: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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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3집 '청파소나타' 호평

[서울=뉴시스] 정밀아. 2020.11.27. (사진 = 금반지레코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밀아. 2020.11.27. (사진 = 금반지레코드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듣는 순간, '서울 청파동 풍경이 그려진다'고 백번 써 봐도 소용없다. '백문불여일청(百聞不如一聽)'이다. '늦은 밤까지 기차소리가 들리는 이 동네에는 / 좁은 골목 사이로 잘린 햇빛 돌아나가지"('오래된 동네' 중)

싱어송라이터 정밀아가 3년 만에 내놓은 정규 3집 '청파소나타'에 실린 곡들을 재생하는 순간 청파(靑坡), 즉 '푸른 언덕'의 정경이 눈 앞에서 펼쳐진다.

남대문 밖에 서울역이 세워지면서 선로의 동서편에 후암동과 함께 청파동이 생겨났다. 정밀아는 지난해 10월 이곳으로 이사했다. 그녀가 사는 곳 주변으로는 아직 아파트가 없다.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몰려 있다.

최근 청파동에서 만난 정밀아는 편안해보였다. "집 주변 백반 집들의 한끼 가격이 일괄적으로 5000원이에요. 제일 비싼 것도 8000원이죠. 퀄리티가 좋아서 요즘 제 '찐 즐거움'이 됐어요. 하하"

서울역 인근으로 이사한 건 '실리적인 이유'도 있다. 코로나19 이전 전국 투어를 다닐 때 밤 늦게 서울역에 올라오면 연희동 집까지 가는 일이 번거로웠다.

이사 이후 심심함도 줄었다. 서울역 벤치에 앉아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만 구경해도 시간이 훌쩍 간다. 이번 앨범 타이틀곡 '서울역에서 출발'은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지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서울역에 배인 심적 풍경을 노래했다. 

[서울=뉴시스] 정밀아. 2020.11.27. (사진 = 금반지레코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밀아. 2020.11.27. (사진 = 금반지레코드 제공) [email protected]

정밀아는 자주 걷는다. 집에서 출발해 서울역을 거쳐 남대문과 명동을 지나 을지로까지. 뚜벅뚜벅 서촌까지 걸어갈 때도 있다. '생활 포크'라 이름 붙이고 싶을 정도로, 그녀의 노랫말에 일상의 풍경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고 구체적인 이유다. 많이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생각하고 소리를 수집하고 또 글을 모은다. '일상의 채집가'다.

그래서 정밀아의 음반에는 무조건적인 희망이 아닌, 일상의 희로애락을 조심스레 건들면서 뭉근한 위로를 안긴다.

"깊은, / 바다를 가로지른다 해도 / 결국 내 심장이 뛰는 곳으로/ 나는, 나는 향하려오. //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라."('서시' 중)

3년 전에 발표한 '서시'가 그런 맥락에 있는 곡이다. 이번 앨범의 시작점이 된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의 가사를 프린트해 벽에 붙여 놓은 뒤, '청파소나타' 전체 배치를 생각했다.

지난 2017년 내놓은 정규 2집 '은하수'는 명반으로 통한다. 문학적인 노랫말과 정갈한 멜로디의 감성적인 합. 이번 '청파소나타'를 발매 하기 전까지 음악적으로 더 많은 고민을 했을 법하다.

"전작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제가 면밀히 잘 알고 있잖아요. 팬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 만큼 뭔가라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면목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시선이 깊고 더 넓어졌으면 하는데, 그런 건 표현을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런 사람이 돼야 가능한 거잖아요. 정말 그런 사람이 됐으면 했어요."

[서울=뉴시스] 정밀아. 2020.11.27. (사진 = 금반지레코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정밀아. 2020.11.27. (사진 = 금반지레코드 제공) [email protected]

가사를 쓸 때는 "단순히 음과 음 사이를 채우기 위해 그냥 쓰는 말들이나 접속사 없이, 정제된 한국어로 잘 썼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한예종 조형예술과 출신인 정밀아는 미술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진, 영상 작업을 한다. 음악은 어릴 때부터 교회 반주, 성가대를 하면서 자연스레 곁에 있었다.

"순수 미술 작가로 살아가는 몇 가지의 모양이 있는데, 그 방식이 제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뭔가 우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연히 그 자리에 음악이 있었던 거죠. 음악과 미술 작업은 시너지가 됩니다. 하나를 못할 때, 다른 하나를 할 수 있는 '저만의 루틴'이 구축되는 거죠."

정밀아는 함부로 말을 내뱉지 않는다. 자신이 내뱉는 언어와 멜로디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라는 말은 너무 무겁다며, 그 단어를 꺼내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대신 허투루 하지는 않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조금 허기진 것은 마음의 가난"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위한 이번 노래들이 그래서 소중하다. 겨울이 왔다. 이제 정밀아의 '춥지 않은 겨울밤'을 들을 차례다. "노래도 듣기 싫은 밤/ 서울의 소릴 그냥 들으며/ 어디까지 걷네"

정밀아는 오는 28일 오후 3시·7시 구름아래소극장에서 콘서트를 연다. 방역 지침을 철저하게 지킨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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