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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강남 재건축…'2년 거주' 규제, 자충수 됐다

등록 2020.11.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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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등 초고가 재건축 '들썩'…강남 8주만에 반등

'규제 역설'에 재건축 속도 내는 데…법 개정은 '답보'

'제2의 압구정 나올 수도'…정부 "조기 개정에 최선"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모습. 2020.08.04. dadazon@newsis.com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모습. 2020.08.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인준 기자 =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등 최근 강남권 재건축 사업 진척에 대한 기대감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의 대응이 뒤쳐져 시장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6·17 대책을 통해 조합 설립 전 재건축 단지에 대해 '2년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해왔으나, 사실상 연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져 당초 목표였던 내년 초 시행은 물 건너간 상태다.

이에 조합 설립을 포기했던 단지들이 재건축 속도를 내기 시작할 경우 강남 아파트값이 다시 급등세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번 주 강남구 아파트값 상승률은 0.03%를 기록해, 8주 만에 상승 전환했다.

특히 압구정동 초고가 재건축 단지들이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압구정동 현대7차는 지난달 27일 전용 245㎡는 종전 최고가 65억원 대비 2억원 높은 67억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이 지역 재건축 단지들은 모두 수십억원을 호가해,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등 보유세 강화 정책 속에 그동안 관망세가 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급반전되며 수십여 건의 거래가 체결되고, 이에 따라 호가가 오르는 등 집주인에게 협상력이 넘어간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한 주 동안만 30여 건의 거래가 체결된 것으로 전해졌으며, 현재 집주인들이 호가를 높이거나 계약 체결을 미루는 사례도 있다"라고 전했다.

압구정동 재건축 단지들이 상승세를 나타내는 배경은 그동안 지지부진 했던 조합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조합 설립 인사를 위해서는 각 동별 소유자의 과반수와 전체 소유자의 75%(4분의 3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압구정동에는 24개 단지(1만466가구)가 6개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나뉘어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미 3~5구역이 동의율 75%를 넘겨 조합 설립총회를 앞두고 있으며, 다른 단지들도 뒤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압구정 재건축 단지에서 조합 설립이 가시화되는 배경으로 정부 규제를 꼽는다.

정부는 올해 말부터 수도권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단지를 소유한 조합원이 2년 이상 거주한 경우에만 분양권을 인정하기로 했다. 낡고 오래된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투자 목적으로 매입하기 때문에 집주인이 사는 경우가 드물다. 소유주가 거주하지 않으면서 투기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해 시세차익만 거두는 것을 봉쇄하겠다는 취지다.

만약 조합 설립을 하지 못하면 실거주 2년 미만의 조합원은 재건축 분양권을 받지 못한다. 내년에 실거주 의무가 강화되면 거주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한 경우 조합 설립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사업이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이는 다시 아파트값 호가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한강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강남 노른자위 땅에서 추진되는 아파트 재건축이 현실화되고 있는 데다, 앞으로 조합이 설립되면 이 지역 아파트는 사기가 더 쉽지 않게 된다. 조합 설립 인가 이후에는 10년 이상 소유, 5년 이상 거주한 1주택자, 해외 이주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외에는 조합원 지위와 입주권을 양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 규제 발표가 '벌집을 들쑤신 듯' 지역 내 아파트값만 자극해놓고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을 통해 '2년 거주' 규제를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도정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올해 마지막으로 열린 상임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통과하지 못해 연내 법 개정이 사실상 불발됐다.

재건축 시장은 이에 혼란 양상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가 크다.

특히 규제 적용이 미뤄지면서, 연내 조합 설립을 포기했던 단지들이 다시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점쳐진다.

여기에 정부가 최근 공급대책과 전세대책을 통해 역세권 주거지역에 대한 용적률을 700%로 상향 조정하기로 한 것도 재건축 단지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강남권 재건축 시장이 한동안 잠잠하던 서울 아파트 매매시장에 불을 댕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상 정부와 여당이 판을 벌려 놓고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가 어렵게 됐다.

일부에서는 '2년 거주' 규제 적용이 당분간 실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 시행으로 서울 전역이 전세대란을 경험하고 있고, 수급난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내고 정비사업 이주수요까지 전세시장에 가세할 경우 전세 대란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다만 조기 법 개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연내 법 처리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정부는 '2년 거주' 규제를 중점 과제로 분류하고 조속한 처리를 국회에 요청하는 등 최대한 빨리 규제 적용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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