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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터뷰]최지선 "여성아이돌의 이름은 왜 컬러풀할까요?"

등록 2021.02.04 13:53:48수정 2021.02.04 14:5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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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은 칭찬일까?' 출간

[서울=뉴시스] '여신은 칭찬일까?'. 2021.02.04. (사진 = 산디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여신은 칭찬일까?'. 2021.02.04. (사진 = 산디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공원소녀·소녀주의보·오마이걸·우주소녀·이달의소녀·걸카인드·리치걸·비걸스·위걸스·지걸스·키튼걸스 포켓걸스… 등등. 좀 더 과거로 가면 소녀시대·브라운아이드걸스·원더걸스·걸스데이까지.

최지선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출간한 '여신은 칭찬일까?'(산디 펴냄)에서 여성 아이돌을 둘러싼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여돌의 이름은 왜 컬러풀할까?, 여돌의 노래는 누구를 향하는가?, 걸 크러시는 진화일까?, 여돌이 요정이라면 그건 칭찬일까? , 여돌은 왜 교복을 자주 입을까?, 여돌의 힙합은 (불)가능한가?, 여돌의 힙합은 (불)가능한가? 등 여자 아이돌의 특수성을 살펴본다.

'여성 아이돌'(여돌)은 '소녀'나 '걸', 또는 그 인접어를 사용하는 이름이 많다는 걸 짚어낸다. 

방탄소년단 같은 독보적 사례를 제외하고, '성공적인 이력'을 쌓은 남성 아이돌 그룹의 이름에선 '소년' 또는 '보이' 같은 단어는 잘 채집되지 않는 점도 파악한다.

골든차일드·제국의아이들·스트레이키즈·뉴키드 등의 '아이들' '차일드' '키드'처럼 성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중립적인 언어가 사용된다. 

수많은 여자 아이돌은 신비로운 인상을 주는 요정 혹은 여신의 다른 이름으로 통하지만 남자 아이돌은 남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모든 아이돌은 비슷한 수련 과정을 통해 완성되지만 우리가 아이돌을 기대하고 소비하는 방식에는 이처럼 성별 차이가 있다.

최 평론가는 서면 인터뷰에서 "여돌 이름에 '소녀' '걸'이 포함된 경우가 다수인 건, 여돌 그룹이 '소녀(걸) 정체성'을 갖는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여돌 그룹이 추구하는 소녀는 여돌의 실제 나이가 어찌 됐든, 여러 가지 소녀성 또는 소녀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이상의 통계를 살펴보면 남돌은 앨범의 영향이, 여돌은 싱글의 영향이 더 크다. 이는 여돌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반면 남돌이 '덕후적'으로 소비된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남돌을 향한 구매력은 앨범을 중심으로 공연과 관련 상품 판매 등으로 순환되지만, 팬덤의 기반이 약한 여돌은 음악 자체보다 다른 외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결국 남돌보다는 여돌에 대한 시장과 산업을 예측하기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EXID나 여자친구처럼 우발적인 사건이나 역주행을 통해 인기를 얻는 일이 여돌에게 더 많이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p.88)

 '여신은 칭찬일까?'책 제목의 '여신'은 호의가 담겼더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수식이다. 그 안에 외모에 대한 평가가 담겼기 때문이다.

최 평론가도 반성하는 일이 있다. 직업 특성상 순위·별점 등으로 대변되는 '계량화하는 작업', 몇몇 계보·유형으로 나누는 일을 해야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여돌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거나(가령 섹시함 대 순수함 같은 이미지로) 또는 단순히 희생자나 피해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최 평론가는 "우리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이돌 모두 마찬가지이고요. 그들은 외모·실력에서 칭찬을 받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면서 "그 가운데 여돌이 왜 그런 '섹시한 전략'을 취하게 됐을까, 우리는 또 왜 그러한 이미지를 소비하면서도 또 손쉽게 개인을 단죄하게 됐을까 생각해봤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레드벨벳(위), 블랙핑크(아래). 최지선 평론가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혼합한 그룹명을 택한 레드벨벳과 블랙핑크에 대해 "복합적이고 대조적인 이미지와 음악을 창출하려 시도한다"고 읽는다. 2021.02.04. (사진 = SM, YG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레드벨벳(위), 블랙핑크(아래). 최지선 평론가는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혼합한 그룹명을 택한 레드벨벳과 블랙핑크에 대해 "복합적이고 대조적인 이미지와 음악을 창출하려 시도한다"고 읽는다. 2021.02.04. (사진 = SM, YG 제공) [email protected]



최 평론가는 책에 기존 다른 평론가 칼럼의 문장 하나를 빌려왔다. 웨이브x네이버연예 기획 시리즈 '스.압.주.의'에서 최민우 평론가가 쓴 '정말 지금 케이팝은 매력적인 음악'일까' 중 하나다.

최민우 평론가는 해당 글에서 "일부 '평론가'나 매체가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모욕과 비난을 여성 가수에게 퍼붓는 건, 그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상업성과 선정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편리한 알리바이를 동원해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썼다.

최지선 평론가는 이 문장에 이렇게 부연한다. "(선정성은) 이 사회가 기대하는 것 또는 손쉽게 대중의 인기를 모을 수 있는 전략이라고 판단해 아이돌 음악에서 특히 오랫동안 사용돼온 노선인데, 단순히 그것을 여성 아이돌의 잘잘못으로만 못박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 평론가는 "아이돌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지적이 선정성의 화살로 향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이른바 혐오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최 평론가도 "전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분투하는 여돌도 있지요. 한편으로 여러 사건을 겪은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요?"라고 전했다.

책에서 '왜 창작하는 여돌은 드물까?'라는 꼭지도 눈길을 끈다. 물론 전반적으로 여성 저작자 자체가 적다. 여성을 수동적 소비자로, 남성을 능동적 생산자로 한정하는 오래된 통념도 문제다.

최 평론가의 고민은 한발 더 나아간다. "작사·작곡·연주 등을 하는 음악인만이 아티스트로 추앙되는 현상에도 이상한 편견이 작동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심한다.

모든 아이돌이 '작곡돌' '창작돌'이 될 필요는 없다. 아이돌 그룹 내에서 보컬리스트와 퍼포머도 중요하다. 대중음악의 생산과 소비, 유통의 방식이 모두 급변한 상황 속에서 고전적인 아티스트 개념 역시 흐릿해지고 있다.

"남자애들(남자 연습생들)이라 그런가? 자작곡이 엄청 많다."남돌 그룹 멤버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엠넷 「프로듀스 X 101」(2019)에서 심사위원 소유의 혼잣말이 포착되었다(1화, 2019.5.3.). 뒤집어 말하면 '여자애들'의 자작곡은 없거나 적다는 뜻이다. 위험천만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발언이다. (…) 창작자 양성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던 YG엔터테인먼트조차도 여돌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투애니원의 씨엘이 나중에 창작의 지분을 할당받기는 했지만 그룹 전성기 시절에는 창작자 역할이 부여되지 않았다. 투애니원의 후배 그룹 블랙핑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S.E.S.는 동일 소속사의 H.O.T.와는 대조적으로 앨범에 창작곡을 수록하도록 적극 장려되지 않았으며 바다의 작사가 조금 포함되었을 뿐이다."(pp.207~213)

[서울=뉴시스] 엠넷 '달리는 사이'. 청하는 숨차 하는 오마이걸 유아에게 "너 뛸 때 같이 뛸게"라고 말한다. 2021.02.04. (사진 = 엠넷 캡처.)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엠넷 '달리는 사이'. 청하는 숨차 하는 오마이걸 유아에게 "너 뛸 때 같이 뛸게"라고 말한다. 2021.02.04. (사진 = 엠넷 캡처.) [email protected]


최근 여성아이돌 사이에서는 경쟁보다 연대가 화두다.

엠넷 '퀸덤' '굿걸' '달리는 사이' 등처럼 여돌끼리 함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고민을 나누며, 힘을 합치는 프로그램이 최근 대거 등장했다. 여돌을 조명하는 폭이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

최 평론가도 "아이돌 스스로 여러 가지 고민을 공유하는 일은 중요해 보입니다. 또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여성 아이돌의 모습도 고무적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퀸덤' '굿걸' '달리는 사이' 같은 프로그램을 배치한 일은 유의미하다"고 봤다.

"물론 이러한 편성이 이전에 방송사가 잘못한 문제들을 덮을 수는 없겠고, 또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시대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편성임에는 틀림없겠네요. 사람들이 변화의 목소리를 원하는 만큼 다양한 시선의 방송 프로그램도 만들어질 수 있어요."

책의 마무리는 밝지 않다. 이미 세상을 떠난 여돌,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지탄을 받는 여돌, '걸스 캔 두 애니싱(Girls can do anything)' 같은 당연한 문구가 적혀 있는 휴대폰 케이스를 지닌 것으로 곤욕을 치른 여돌….

최 평론가는 이성애 기반의 연예 산업에서 여돌이 여성 수용자인 남성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본다. 여성의 권익과 평등에 대한 주제에 여돌이 접근하기라도 하면 '메갈' '페미' 등 두 글자로 압축된 낙인을 받기 때문이다.

최 평론가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변한 건 그리 많지 않다며, 이런 시대에서 여돌이 자신만의 꿈을 오래도록 펼치며 살아가는 일은 가능할까라고 반문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음악이자 문화로 정착돼 가고 있는 지금, 단순한 논리로 아이돌 음악의 시비를 가리거나 가치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암울한 그늘과 화려한 음악을 동시에 바라보며, 여러 복잡한 심경이 교차합니다. 그면서도 여러 도전을 하고 있는 여성 아이돌의 성장과 변화를 기대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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