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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남북관계, 퀀텀점프를 이루려면

등록 2021.03.12 1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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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남북관계, 퀀텀점프를 이루려면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둘러싼 논란을 보노라면 이 논란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과연 같은 나라에 사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정부 여당과 진보 진영은 한미훈련을 축소 내지 연기함으로써 북한을 달래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야당과 보수 진영은 한미훈련을 정상적으로, 아니 더 강하게 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해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목표는 같은데 수단과 과정은 극과 극이다. 양 진영 사이에 타협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해 보인다.

북한 문제를 대하는 시각차는 접근 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정부 여당과 진보 진영은 북한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가운데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는 이른바 '내재적 접근'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반면 야당과 보수 진영은 북한 외부의 일반적인 세계 질서의 틀로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는 '외재적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차이는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로 다가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남북관계처럼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는 현대물리학에도 존재한다. 현대물리학의 근간인 양자역학에서 기본 이론은 '불확정성 원리'다. 입자의 위치나 속도를 재려면 빛을 입자에 닿도록 해야 하는데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파장이 짧은 빛을 사용하면 빛의 에너지로 입자가 튕겨 나가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반대로 입자의 속도를 재기 위해 파장이 긴 빛을 쓰면 위치의 정밀도가 떨어진다. 이처럼 위치와 속도 가운데 하나를 정확하게 재려 하면 다른 한쪽의 오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불확정성 원리다. 이 원리는 미시세계에서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확률적으로 계산할 수밖에 없음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불가지론적 성격을 띤다.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우리는 북한이라는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내재적 접근이든 외재적 접근이든 외부 관찰자가 북한의 행보를 완벽하게 예측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 지도부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다 보면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망각하기 쉽다. 반대로 외부의 시각에서만 북한을 보면 북한의 변화 속도를 놓치기 쉽다. 결국 관찰자로서 우리는 북한의 향후 행보를 확률적으로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양자역학은 남북관계 해법의 열쇠도 쥐고 있다.

양자역학에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라는 개념이 있다. 짝을 이룬 두 입자는 아무리 서로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변동하면 그에 따라 즉각 다른 한쪽이 반응을 보인다는 불가사의한 특성을 갖는다. 두 입자를 멀리 떼어놓아도 상태의 상관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양자 얽힘 현상처럼 남북한은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에 따라 일시적으로 멀어질 수 있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으로 구성된 남북한이 아예 결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자 도약이라는 개념도 있다. 흔히 퀀텀 점프(Quantum Jump)로 불리는 이 개념은 미시세계에서 입자들의 상태가 계단처럼 불연속적으로 바뀌는 것을 가리킨다. 양자 도약은 짧은 시간 동안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원자나 분자에서 일어나는 도약은 1조분의 1초를 뜻하는 피코(pico)초보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2017년 전쟁 직전까지 치닫다가도 지도자의 결단만으로 2018년과 같은 평화 시기가 도래하곤 한다. 비관론에 빠지지 않고 때를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도약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마음가짐 역시 양자역학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통일을 준비하려면 내재적 접근법과 외재적 접근법 중 하나만을 신봉해선 안 된다. 북한은 우리에게 협력 대상인 동시에 경계 대상이다. 우리에게 북한은 한민족으로서 공존해야 할 이웃사촌이자 전쟁에서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던 적이다. 이 두 사실을 모두 외면해선 안 된다.

양자역학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한 물질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다 갖고 있다는 '파동-입자 이중성'이 그것이다. 파동-입자 이중성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그 이후에 펼쳐지는 화려한 양자역학의 세계, 현대물리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없다. 상대성이론과 광양자설을 발표해 고전역학의 전성시대를 끝냈던 천재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성립된 양자역학을 평생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결과 아인슈타인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큰 학문적 도약을 이루지 못했다.

진보든 보수든 현대사에서 북한이란 존재가 가진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한편 지금과 다른 미래를 논하려는 마음가짐을 갖지 않는다면 남북한 양자 관계는 앞으로 오랫동안 다음 단계로의 도약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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