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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범죄 지어도 유지되는 의사 면허…국민 여론 싸늘

등록 2021.02.24 16:49:51수정 2021.02.24 16: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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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과실치사·성범죄 등 처벌 조항 삭제

10년 간 면허 재교부 103건 중 100건 승인

살인해도 면허 정지 안되는 전문직은 의사 뿐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대한의사협회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에게 면허 취소 조치를 내리는 의료법 개정안을 놓고 총파업을 예고하며 반발하고 있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가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02.22.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대한의사협회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에게 면허 취소 조치를 내리는 의료법 개정안을 놓고 총파업을 예고하며 반발하고 있는 22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가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02.2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2014년 가수 신해철의 의료사고로 기소됐던 의사 강모 씨는 2018년 대법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는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2심에서는 징역 1년으로 법정 구속됐다. 강씨는 구속되기 전까지 수 차례 자리를 옮겨가며 의사 생활을 계속했다. 강씨는 2017년 복통으로 전남 해남의 종합병원을 찾았던 환자 A씨에게 복막염 진단을 내리고 세 차례 개복 수술을 했다. 상태가 악화되자 A씨는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이틀 만에 사망했다.

강씨는 또 병원을 개원해 외국인 환자를 주로 받으며 수술을 계속했다. 그 사이 호주인 B씨가 강씨로 부터 위소매절제술을 받고 사망했다. 강씨는 B씨 사망도 의료과실이 인정돼 금고 1년6개월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강씨는 이 사건으로 병원 문을 닫고 페이닥터로 일했다. 그는 환자 C씨에게 복부성형, 지방흡입 수술을 하다 상해를 입혀 금고 1년2개월을 선고 받았다. 목숨을 잃는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의사면허 정지나 취소 조치가 없었던 사이, 감옥에 가기 전까지 그가 집도한 수술로 3명이 숨지고 1명이 상해를 입었다.

법원의 유죄 판결에도 의사 면허가 취소 되지 않은 것은 비단 강씨 뿐이 아니다. 2007년에는 경남 통영의 의사가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를 성폭행해 징역 7년을 선고 받았지만 면허가 취소되지 않아 계속 진료를 보고 있다. 2018년에도 한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의 신체를 불법 촬영했다 현행범으로 체포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지만 역시 의사 면허를 유지하고 있다.

수차례의 금고형 선고에도 강씨 등이 진료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의사면허가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허위 진단서 작성 ▲업무상 비밀 누설▲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진료비 부정 청구 ▲면허증 대여 ▲부당한 경제적 이익(리베이트) 취득 ▲비도덕적 진료행위(일회용품 재사용) 등을 위반해 '금고 이상' 형을 선고받은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의사 243명의 면허가 취소됐다.

이외에는 살인이나 성폭행, 절도 등 어떤 형사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아도 의사 면허는 유지된다. 2000년까지는 의료 사고에 따른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형 이상 처벌을 받으면 면허가 정지될 수 있었으나 '의사들의 적극적 진료를 막는다'는 이유로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과거에는 성범죄로 형이 확정되면 10년간 의료 관련 시설에 취업 할 수 없었지만 이 역시 2016년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사라졌다.

의사 면허 재교부도 손쉽게 이뤄진다. 의사 면허가 취소되더라도 취소 사유에 따라 1~3년 후 재교부 신청을 할 수 있다. 면허 등록 규정을 위반해 취소된 경우에는 1년 후, 자격정지 중 의료 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정지 처분을 받아 취소된 경우는 2년 후, 허위 진료비 청구나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으로 취소된 경우는 3년만 지나면 면허 재교부 신청이 가능하다. 아무리 심각한 경우라도 3년이 지나면 재교부가 가능하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최근 10년간 의사면허 재교부를 신청한 의사 103명 중 100명이 승인됐다. 재교부율이 97%에 달한다. 2019년까지 신청된 75건은 모두 승인됐다. 현행 의료법은 면허가 취소된 자가 취소의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改悛)의 정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면 면허를 재교부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신청만하면 다 주고 있어 사실상 '종신면허'라는 얘기도 나온다. 7명으로 구성된 보건복지부 의사 면허 심사위원회 7명 중 4명 이상이 동의하면 면허가 재발급 되는데, 심사위원회 4명이 의사다.
 
면허 재교부가 거부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산부인과 의사가 내연녀에게 약물을 과다투여해 살해한 사건이 거의 유일하다 시피한다. 산부인과 의사 김모씨는 2012년 자신의 내연녀에게 수면유도제 미다졸람 등 13가지 약물을 과다투여해 숨지게 하고 시체를 유기했다. 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김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김씨는 그러나 과실치사나 사체유기가 아닌 마약류 관리법 위반으로 면허가 취소됐다. 출소한 뒤 그는 한 병원에서 행정부장으로 일하다 퇴사했고, 2017년 8월 면허 재발급 신청을 했다. 유독 김씨 사건만 2년 여를 끄는 등 심사가 계속 보류됐으나 지난해 3월에야 최종적으로 발급이 거부됐다. 사회적 파장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현재 복지부를 상대로 면허 재발급 행정 소송을 낸 상태다.
 
살인 등 강력 범죄에도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되지 않은 전문직은 의사 뿐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법무사와 같은 전문직과 교사 등 공무원 등은 금고 이상 처벌을 받으면 면허가 취소된다. 하지만 의사는 살인 등 어떤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다시 의사로 일할 수 있다. 의사에 의한 강력범죄 건수도 적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5년간 살인·강도 등 4대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2867명 이다. 이 가운데 성범죄를 저지른 전문직은 의사(613명), 종교인(547명), 예술인(499명), 교수(211명), 언론인(70명), 변호사(41명) 순으로 많았다.

지난 19일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범죄의 종류와 관계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료인의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은 의사는 5년간, 집행유예인 경우 유예기간 종료 뒤 2년간, 선고유예는 유예기간만큼 면허가 취소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의 결격 사유를 모든 범죄로 확대할 경우 살인과 같은 중대범죄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등 과실범죄에도 제재가 가해질 수 있어 무고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변호사는 변호사법에서 인권에 대한 옹호와 정의 구현을 명시하고 있고, 의사는 의료법에서 국민건강 보호와 증진을 정해놓고 있어 그 역할과 전문성에 차이가 명확히 존재하는 만큼 변호사와 의사가 같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 일본은 벌금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으면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 된다. 독일·영국·프랑스의 경우 범죄의 종류에 대한 일률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고 직무수행과의 직·간접적 관련성 등을 고려해 면허취소 또는 직업활동 금지를 결정하고 있다.

미국은 면허 취소의 사유가 되는 범죄 기준이 주마다 차이가 있다. 테네시주의 경우 의료실무에서의 중과실, 습관적인 만취, 약물 오남용, 중범죄 유죄판결, 도덕적 해이 관련 범죄 유죄판결, 성범죄 등을 제시하고 있다. 메인주는 의사 면허도 다른 직종과 다름 없이 1년 이상의 자유형이 부과된 범죄에 대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협은 다른 직종이나 해외의 사례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의사 면허에 대한 보호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자 살인, 강도, 성폭행 등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수정안을 제시한 상태다.

의협은 고의성이 없는 교통사고와 같은 경우에도 금고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상 범죄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의사도 다른 전문직종과 동일한 면허 취소 기준을 둬야한다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 23일 전국 18세 이상 500명을 조사한 결과 의료법 개정안의 취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8.5%를 차지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26.0%,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5.5%였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가수 고(故) 신해철 씨의 수술을 집도했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세훈 전 서울스카이병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후 법정구속돼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2018.01.30.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가수 고(故) 신해철 씨의 수술을 집도했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세훈 전 서울스카이병원장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후 법정구속돼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2018.01.30.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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