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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국내 첫 장기이식병원장 "10년 후 모든 이식 가능"

등록 2021.03.11 12:00:00수정 2021.03.11 16: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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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식날 뇌사자 가족 장기기증...심장·신장 이식 수술

이식 후 '생명나눔 주체' 공여자에 대한 관심 지속돼야

"장기생존율 높이고 공여자·수혜자 삶의 질 향상 목표"

[서울=뉴시스] 황정기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장. (사진= 은평성모병원 제공) 2021.03.11

[서울=뉴시스] 황정기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장. (사진= 은평성모병원 제공) 2021.03.11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2009년 각막을 기증하고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잇는 국내 첫 장기이식병원이 문을 연 4일 밤. 뇌사 상태였던 A씨는 심장, 췌장, 폐, 간, 신장 등의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날 은평성모병원에서는 심장과 신장 이식 수술이 진행됐고, A씨는 총 6명의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

황정기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김수환 추기경 기념 장기이식병원장(혈관이식외과 교수)은 지난 9일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개원식 이틀 전 장기기증 의사를 밝힌 뇌사자가 있었다"면서 "뇌사 판정까지 이틀이 걸려 개원식날 밤 공여자(기증자)와 수혜자(이식환자) 2명을 대상으로 이식 수술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현재 수혜자 2명 모두 빠르게 건강을 회복 중이다.

문을 연 첫날부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한 병원은 '수혜자·공여자 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해 수혜자는 물론 공여자가 수술 후에도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계획이다.

담당 의료진은 물론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약제팀, 영양팀, 사회사업팀,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팀을 이뤄 공여자와 수혜자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수술 트라우마와 상실감 관리, 수술 후 재활과 운동, 면역억제제 등 복약 지도, 영양상태 평가와 식단 관리, 이식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 등을 지원한다. 병원 내 교육실에서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수혜자와 공여자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도 적극 알릴 예정이다.

소장 이식 권위자인 황 원장은 "수혜자도 중요하지만 생체 공여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다"며 "하지만 이식 수술 후 공여자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체 이식 공여자는 이식 후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수 있고, 재활이나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며 공여자 돌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기이식병원은 지난해 6월 병원 설립 예비타당성 조사 보고회를 시작으로 문을 열기까지 총 9개월 가량이 소요됐다. 각막이식센터, 간이식센터, 소장·다장기이식센터, 신췌장이식센터, 심장이식센터, 폐이식센터 등 6개 이식센터(센터당 15~20명)를 갖추고 있다.

개원 전 장기이식병원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마음 한켠에선 "잘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됐다고 한다. 황 원장은 "개원 전부터 권순용 은평성모병원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소위 '빅5'도 안하는데 우리가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스스로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장기이식 분야에서 승부를 걸 만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황 원장은 "장기이식은 병원에서 가장 잘할 수 있고 잘 하고 싶은 분야"라면서 "여러 과와의 긴밀한 협진이 이뤄지는 컨트롤타워(장기이식병원)가 생겨 모든 이식을 관장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권순용 원장 이하 의료진들의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병원은 '10년 후 월드클래스' 반열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황 원장은 "월드클래스가 되기 위해 장기 이식자의 장기생존율을 높이고, 합병증 최소화와 수혜자·공여자 케어 프로그램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면서 "향후 팔, 다리, 안면 등 복합조직 이식을 포함해 모든 장기 이식이 가능한 병원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개원 전부터 오랜시간 준비해온 폐이식 도전을 시작으로 국내 장기이식 분야 '빅7' 진입, 연구 활성화를 통해 이식 분야에서 선두로 올라서면 양적 성장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으로 황 원장은 기대하고 있다.

이식 대기자 수에 비해 장기 기증자 수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뇌사자 장기기증'에서 '순환 정지 후 장기기증(DCD)'으로 사망자 장기기증을 확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국내 장기기증 문화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과제다. DCD는 심장이 멈춰 사망한 것이 확인된 고인에게서 빠른 시간 내 장기를 구득해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황 원장은 "우리나라는 DCD를 시행할 법적·제도적 기반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며 "생체 이식이 이미 최대치에 달한 상황에서 DCD가 가능해지면 기증자 부족의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짚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0만명당 생체 기증자 비율은 전 세계 2위다.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 개선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식 대기자는 날로 늘어가는 반면 장기 기증자는 이에 크게 못미쳐 신장이식만 해도 평균 5년 가량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황 원장은 "언젠가는 내가 아니면 가족이 기증자나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며 "장기기증 사연이 가능한 많이 대중에 알려지면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황 원장은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시절 신장 이식 권위자인 문인성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교수(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를 보며 외과 전문의의 꿈을 키웠다. "환자가 간 이식 후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고, 소변도 못보고 일주일에 3번씩 혈액투석을 해야해 힘들어하던 환자가 신장을 이식받은 후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식 분야로 마음을 굳혔다"고 말할 때 시종일관 차분하던 목소리가 활기차게 커졌다. 장기이식병원의 미래가 밝게 느껴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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