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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북한문학 연구 향한 어느 학자의 뚝심

등록 2021.03.27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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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북한 '문학신문' 기사목록", '미디어로 다시 보는 북한문학' 표지(사진=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역락 제공)2021.03.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북한 '문학신문' 기사목록", '미디어로 다시 보는 북한문학' 표지(사진=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역락 제공)2021.03.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석사논문을 쓸 때였으니 2016년 가을이었을 것이다. 이 무렵 나는 해방 직후 북한 지역의 영화 활동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고 있었다.

찰스 암스트롱의 논문을 보니 해방기 북한에서 발행하던 '영화예술'이라는 잡지를 인용해 글을 썼다. 나도 이 잡지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에 국립중앙도서관은 물론 전국에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다 뒤지고 다녔다.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에서 나온 '북한논저목록'이라는 책을 보니 그 책에 해방기 북한에서 나온 단행본은 물론 잡지의 목차까지 실려 있었다. 이렇게 상세한 자료집이 있다니 그곳에 가면 자료를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혹시 원본은 없더라도 최소한 복사본 정도는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춘천까지 달려갔다.    

물어물어 아시아문화연구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부는 한쪽에 커다란 금고를 갖춘, 마치 전당포처럼 생긴 사무실이었다. 조교인 듯한 사람이 어떻게 왔냐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서울서 자료를 찾아 그곳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건넸고 그는 안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미국 기록보관소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의 목록만 실어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허탕을 친 게 분명했다.     

힘들게 춘천까지 왔으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조교 선생은 아시아문화연구소에서 낸 책들이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그 책을 보여주었다. 멀리서 왔으니 책이라도 가져가라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구매하라는 것이었다. 미련을 남겨 둘 수 없어 그랬는지 책을 들척거리다가 책을 구매해 나왔다. 그때 내가 들고 나온 책이 김성수 선생이 펴낸 '북한 문학신문 기사 목록'(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94)이었다. 북한 문학신문의 1956년 창간호부터 1993년까지 주요 기사들을 정리해 낸 책이었다.     

그때 산 '문학신문 기사 목록'은 내가 연구자로 논문을 쓰는데 요긴하게 사용했다. 김성수 선생이 수십 년에 걸친 신문들을 들춰보고 그것을 연구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정리해 놓았기에 나는 이 목록만 봐도 누구의 어떤 글이 언제 실려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2018년 서울도서관에서 '평양책방'이라는 전시를 하면서 김성수 선생과 처음 인사를 나눴다. 이후 김성수 선생이 주도하는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초대되기도 하고 관련 행사에서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북한문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연구자이자, 관련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김성수 선생은 학문적 이야기를 나눌 때 반짝거리는 눈과 지치지 않는 열정이 어느 청년보다 더 대단했다.    

얼마 전 내가 운영하고 있는 한상언영화연구소로 김성수 선생님이 찾아왔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선생의 저작 '문학신문 기사 목록'을 보여드리니 너무 반가워하며 그 책을 얼마나 고생하면서 완성했는지를 이야기해주었다. 당시 미국 기록보관소(NARA)에 근무하고 있던 방선주 선생을 통해 그곳에 있는 문학신문을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해 당신이 조교로 있던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를 통해 받았다고 한다. 북한자료이다보니 개인이 소장할 수 없었기에 그랬다고 했다.

문제는 마이크로필름을 읽을 수 있는 기계가 한림대 안에는 의대에만 있었다는 것이다. 병원이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눈치를 보며 목록작업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너무 귀중한 자료라 복본을 만들라고 이야기해 통일부 자료실에 한 권 비치했는데 나중에 보니 한림대에 보관 중이던 자료는 분실됐다고 했다. 그때 복본을 만들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뻔했냐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작년에 김성수 선생은 '미디어로 다시 보는 북한문학'(역락, 2020)이라는 역작을 출간했다. 북한의 대표적 문학잡지인 '조선문학' 70여 년의 역사를 한 권으로 분석한,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이 책은 조선로동당의 문예정책을 문학적으로 구현하는 매체인 '조선문학'이라는 문학잡지의 서지적 특징부터 그 잡지 안에 담긴 다양한 메시지들과 작품들을 주제별, 시기별로 마치 날실과 씨실이 엮듯 촘촘하게 엮어내고 있다.    

책을 펼쳐보고 나서 30여 년간 북한문학을 연구해온 중견 연구자의 뚝심이 느껴졌다. 이 책은 북한 문예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책이 될 것이 분명하다. 김성수 선생님이 우리 연구소에서 자료들을 검토하는 모습을 보니 곧 이에 필적하는 또 다른 책이 다음번 저작으로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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