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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넘어북한] ‘회의’ 또 ‘회의’…김정은이 자꾸 회의하는 이유는?

등록 2021.04.10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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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말단조직 '세포비서대회'… '10가지 과업, 12가지 품성' 강조

경제제재 풀려던 북미 정상회담 실패… 김정은 영도 큰 타격

현재 경제 등 위기에 주민 붙들려 줄이은 회의 개최

"내부 자원만으로 경제 풀려니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경제적 압박 받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

한편, 노동신문은 조직지도비서 조용원 이례적 부각

【서울=뉴시스】강영진 박수성 기자 = 지난 6-8일 평양에서 세포비서대회가 열렸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주민들과 직접 접촉이 가장 많은 당세포 1만 명을 모아놓고  현재 요구되는 10가지 과업과 12가지 품성을 강조했습니다. 앞서 북한은 연초부터 당대회, 전원회의, 시·군 당책임비서 강습회 등 각종 회의를 연달아 열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창 넘어 북한>에서 짚어봤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뉴시스 북한팀 박수성입니다.

어제 평양에서 사흘 동안 열린 세포비서 대회가 끝났습니다.

전국에서 당세포비서 1만 명이 평양에 모였습니다. 규모도 크지만 김정은 총비서가 나와서 연설할 정도니 북한에서 중요한 정치행사라 할 수 있습니다.

당세포는 사람의 몸에 비유한 표현으로 당 기층조직 가운데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조직 단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조직 내에서 특정 부서의 당원이 5명에서 최대 30명까지의 규모일 때 당세포가 조직됩니다. 이 조직의 책임자가 당세포비서입니다.
[서울=뉴시스]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해 폐회사를 했다고 9일 방송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1.04.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해 폐회사를 했다고 9일 방송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1.04.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북한에서 당세포비서를 중시하는 건 주민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가장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노동당 규약 41조를 보면, “당세포는 당원들의 당생활의 거점이며 당과 대중을 이어주고 군중을 당의 두레에 묶어 세우는 기본단위이며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조직 동원하여 당의 로선과 정책을 관철하는 직접적 전투단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당 결정에 잘 따라줘라, 어려워도 극복해라, 조금만 참자” 하면서 주민들을 어르고 달래면서 일이 되게끔 만드는 게 세포비서들의 역할이라고 말합니다.

북한은 주요 고비 때마다 당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당세포를 강조했는데요, 1차 핵위기 당시인 1994년 3월과,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등으로 당조직의 이완이 심했던 2007년 10월에 세포비서대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은 전반적으로 당의 의사결정구조를 중시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직접 관장하는 권위주의적 인치였습니다.

세포비서대회는 몇 차례 열렸지만 노동당 회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당대회와 당대회를 대신하는 당대표자회,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 주요 회의를 한 번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치 중심의 통치스타일을 잘 보여줍니다.

이에 비해 김정은은 노동당을 통치 시스템의 중심으로 복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당대회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세포비서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고 특히 올해는 연초부터 당대회와 전원회의,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 세포비서회의 등 모든 수준의 당회의를 연달아 열고 있습니다.
[서울=뉴시스]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해 폐회사를 했다고 9일 방송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1.04.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북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에서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해 폐회사를 했다고 9일 방송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2021.04.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런데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올해는 유난히 회의를 많이 열고 있습니다. 1월에 8차 당대회, 2월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3월에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 4월에 당세포대회 등 각종 회의를 연달아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제재와 코로나19로 자원 수입이 막힌 상태에서 내부 자원만으로 경제문제를 풀어가려다 보니, 결국 개인의 노동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서 "북한이 경제적 압박을 많이 받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고 평했습니다.

북한은 핵 개발 때문에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는 유엔 경제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이 족쇄를 풀어보려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나섰지만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실패했습니다. 김정은의 ‘영도’에 큰 흠이 생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만회하기가 만만치가 않습니다. 경제난을 해결하려면 제제를 풀어내야 하는데 그게 막혔으니 달리 뾰족한 수를 찾기가 어려운 겁니다.

하노이 회담 결렬 뒤 반년 동안은 신형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를 연달아 쏴대는 것으로 회담 결렬에 대한 분풀이를 했습니다. 그것만으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자 가을에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 '특출한 능력을 가진 신비로운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했지요.

연말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자력갱생"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4일 동안 계속 연설하면서 제시한 자력갱생 전략은 시작도 하기 전에 연초부터 덜컹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큰 암초에 부닥쳤습니다.

열악한 의료시스템 때문에 코로나가 유입되면 통제가 안 돼 체제 붕괴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처음부터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고 나섰습니다.

모든 대외 교역을 중단하고 해외 체류 북한 주민들 귀국조차 막았고 북한 내 외교관조차 출입을 억제했습니다.

또 코로나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김정은은 자신도 걸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한 번도 거르지 않았던 김일성 생일 참배까지 빼먹으면서 은둔했지요. 당시 김정은 사망설까지 돌았던 건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어쨌거나 북한은 지금 사실상의 코로나 청정국이지만 그로 인한 대가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대외교역을 중단한 때문에 물자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는 겁니다.

임을출 교수님 말대로 올 들어 연달아 각급 회의를 개최하고 있는 건 북한 주민들이 이런 위기에 휘둘리는 걸 막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차원으로 봐야 할 겁니다.

김정은 본인 입으로 세포비서대회 폐막사에서 "우리의 전진도상에는 많은 애로와 난관이 가로놓여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당 제8차대회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은 순탄치가 않습니다"라고 인정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각종 회의를 연달아 여는 것으로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세포비서대회에서 김정은은 세포비서가 담당할 10가지 과업과 갖춰야 할 12가지 품성을 강조했습니다. 긴 시간 동안 22가지 항목을 일일이 설명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는 세포비서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학창 시절 교장선생님 훈화에 몸을 비비 꼬았던 저로선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느끼지만 세포비서들은 그런 티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자칫 졸거나 몸을 비비 꼬는 것을 들키면 총살당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무엇보다 세포비서들이 김정은이 시키는 대로 '10가지 과업을 12가지 품성을 갖추고'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는 한 걸까요?

오늘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워낙 북한에 비판적인 매체여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기사 제목이 "북 당세포비서 위신 길거리 장사꾼보다 못해"입니다.

기사 내용은 "노동당 조직의 말단 간부인 당세포비서는 장마당 길거리 장사꾼보다 가난하게 살고 있어 주민들 속에서는 위신이 서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또 각 기업마다 가외로 돈을 벌어서 조직원들을 먹여 살리는 일을 담당하는 이른바 8.3당원들이 세포비서의 생활비를 대주고 있기 때문에 "세포비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이고 "8.3 당원들은 당생활총화에 불참할 자격을 가진 당원"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포비서들을 아무리 교육한들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기사의 결론입니다.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해 개회사를 했다고 7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2021.04.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6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 참석해 개회사를 했다고 7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2021.04.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이번 세포비서대회를 보도하는 노동신문에 좀 이상한 낌새가 있었습니다. 최근 핫하게 뜨고 있는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가 이례적으로 특급 대우를 받은 겁니다.
 
첫날 회의 개막을 알리는 기사는 1면에 김정은 개회사, 2면, 3면, 4면에 회의 진행과정을 보도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두 기사에서 김정은의 개회사와 진행과정 보도기사에 언급된 김정은의 발언은 모두 3,249자인데 비해 조용원이 한 보고를 전하는 기사는 모두 4,535자에 달하고 있습니다.

노동신문이 최고지도자의 발언보다 다른 사람의 발언 내용을 더 길게 보도한 건 전례가 없지는 않아도 꽤 이례적입니다.
물론 조용원 비서의 보고 내용이 총비서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그럴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둘째 날 회의를 보도한 노동신문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 위원회 위원이며 당중앙위원회 조직 비서인 조용원동지와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이 지도"라는 제목을 1면과, 2면, 3면 상단에 큼지막하게 달아 놓은 겁니다.

기사에는 제목에도 본문에도 김정은 총비서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날 신문은 오전 6시 조금 넘어 공개되는 평소와 달리 오후 늦게 공개됐습니다.

3일째 폐막을 알린 오늘 날자 노동신문은 또 어제와는 대조적입니다. 이날 신문은 평소보다 한 시간쯤 늦게 공개됐습니다.

김정은의 결론을 3개면에, 폐회사를 2개면에 싣는 등 김정은 발언만 5개면에 실었습니다.
 
김정은 발언 뒤 한 면에 회의 참가자들의 토론 내용을 실었습니다만 조용원 조직비서의 이름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혹시라도 어제 노동신문이 김정은 총비서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조용원 조직비서를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입니다.

북한에서 노동당 조직지도부를 관장하는 건 매우 큰 권력을 갖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래서 김정일은 총비서인 자기가 직접 조직비서 겸 부장을 담당했었습니다.

노동신문이 어제 자에서 조용원 비서의 이름을 과도하게 부각한 건 조직지도부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점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창 넘어 북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창넘어북한] ‘회의’ 또 ‘회의’…김정은이 자꾸 회의하는 이유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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