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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관찰 예능의 거짓의 맛'…재발 방지책은 없나

등록 2021.04.1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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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패밀리가 떴다' 대본 유출본(사진=커뮤니티 캡처)2021.04.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패밀리가 떴다' 대본 유출본(사진=커뮤니티 캡처)2021.04.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며,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여 시청자를 혼동케 하여서는 아니된다."(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절 객관성 제14조)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등 2000년대는 명실공히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였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그 이전의 예능프로그램들과 달리 특별한 '포맷'없이 연예인 출연자들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이내 주류 예능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리얼'(실제)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들춰진 사건이 발생했다. 2009년에 당시 주말 최고 인기프로그램인 SBS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이 유출된 것이다.

 배경만 주어졌을 뿐 상황은 출연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믿었던 시청자들의 생각과 달리 대본에는 '대사'는 물론 '행동'과 '지문'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었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실제라 믿었던 시청자들은 실망감과 배신감을 표출했고, 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사실성 논쟁으로 이어졌고, 이로써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여전히 '리얼'한 방송에 갈급했고 이를 대체하며 등장한 것이 2013년 '아빠! 어디가?'로부터 시작된 '관찰예능'이었다.  8년이 지난 2021년도 관찰예능은 예능판을 이끄는 최대 장르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서울=뉴시스]MBC 프로그램 '일밤-아빠! 어디가?'는 2013년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사진=방송화면 캡처)2021.04..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MBC 프로그램 '일밤-아빠! 어디가?'는 2013년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사진=방송화면 캡처)2021.04..09 [email protected]

문제의 '아내의 맛'을 비롯해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전지적 참견 시점', '슈퍼맨이 돌아왔다',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살림하는 남자들', '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 그리고 최근 방영을 시작한 '1호가 될 순 없어'까지 전 방송사를 포함하면 그 수가 10개는 거뜬히 넘는다.

관찰예능은 리얼 버리아이터와 차별화를 위해 'TV 속의 TV'에서 연예인의 일상을 보여줬다. 스튜디오의 출연진이 관찰자가 되서 시청자와 함께 연예인의 '실제 일상'을 들여다보는 식이었다.

시청자들은 마치 다큐멘터리나 CCTV 속에서 연예인의 '실제 모습'을 바라보는 듯 느꼈다. 그들의 일상에는 어떠한 개입이나 연출도 없는 듯 보였고, 이를 통해 제작진은 버라이어티가 겪었던 '사실'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요즘의 시청자들이 관찰 예능을 보면서 '과장'이나 '연출'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아내의 맛'의 논란은 단순히 '연출'이 과했기 때문이 아니라 함소원과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거짓' 혹은 '실제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실제'인 척 방송한 데 따른 결과다.

실제로 관찰 예능이라 할지라도 원활한 촬영을 위해서 연출은 필수다. 한 지상파 PD는 "TV조선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보통의 관찰 예능은 대본이 없다. 촬영 구성안이라고 해서 상황 정도를 제시한다. 당연히 방송이다보니 장소, 소품 등 미리 짜여진 판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큰 그림은 회의로 논의한 상태로 (녹화를) 시작한다"고 관찰예능의 녹화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통 연출을 과하게 하지 않는데, 그 팀은 어땠을지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서울=뉴시스]'아내의 맛'에서 논란이 된 방송분. 한 누리꾼은 방송에서 함소원, 진화 부부가 이사를 위해 방문했던 집이 이미 함소원 부부가 소유했던 주택이라고 주장했다.(사진=방송화면 캡처)2021.04.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아내의 맛'에서 논란이 된 방송분. 한 누리꾼은 방송에서 함소원, 진화 부부가 이사를 위해 방문했던 집이 이미 함소원 부부가 소유했던 주택이라고 주장했다.(사진=방송화면 캡처)2021.04.0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아내의 맛'의 8일 사과문에 따르면 '아내의 맛' 제작진은 관찰영상 제작 과정에 연출이 개입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번 논란을 함소원의 잘못으로 돌렸다. 제작진은 "저희는 모든 출연진과 촬영 전 인터뷰를 했으며, 그 인터뷰에 근거해서 에피소드를 정리한 후 촬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출연자의 재산이나 기타 사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이기 때문에 제작진이 사실 여부를 100% 확인하기엔 여러 한계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함소원씨와 관련된 일부 에피소드에 과장된 연출이 있었음을 뒤늦게 파악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는 또 제작진이 출연자의 관찰영상을 촬영하는데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무책임함을 여과없이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아맛' 제작진이 프라이버시 문제는 본인들이 다 알 수 없는 문제라고 발을 뺐다. 하지만 방송 자체가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건데 그것에 대해서 진위를 알 수 없다는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강조했다. 

함소원의 잘못인지 제작진의 잘못인지는 차치하고, 방송심의의 규정을 쉽게 어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방송에서 거짓을 송출했다고 해서 이를 제대로 처벌할 규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9일 기준 방송심의를 담당하는 방송통신심의의원회에는 함소원과 관련한 민원이 총 19건 제기됐다. 하지만 5기 위원회가 아직 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민원들이 언제 처리될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처벌된다고 하더라도 방심위에서 내릴 수 있는 법정 제재는 관계자 징계와 과징금 부과가 최대 수준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관찰예능 제작진은 암암리에 조작을 연출이라는 이름을 합리화해 왔다. '조작'과 '연출'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방심위는 이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이 무엇을 심의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방심위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에서 생방송 투표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안준영 PD가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9.11.05.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홍효식 기자 =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에서 생방송 투표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안준영 PD가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9.11.05. [email protected]

그렇다면 방송의 의무를 저버리고 시청자를 기만한 죄를 법으로 물을 수 있을까? 그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지난 3월 엠넷의 '프로듀스' 시리즈의 투표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CJ ENM 소속 제작진 PD와 CP(책임프로듀서)가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인 피해자들을 기망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는 사기 부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고, 시청자들의 중복 투표로 인한 일부 사기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안씨 등 프로듀스 제작진은 특정 기획사의 연습생이 최종 데뷔 그룹으로 선발될 수 있도록 투표수를 조작한 점으로 업무방해 및 사기 등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프로듀스 101' 투표 조작 사건 당시 시청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진행했던 김태환 변호사는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재산상의 지출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기만해서 돈을 쓰게 해야 한다. 그냥 속이는 것만으로는 사기죄가 되지 않는다. '프듀' 사건의 경우 시청자들이 문자투표를 통해 100원을 지출했기에 사기가 될 수 있었다. '아맛'의 경우 사기죄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어떻게 보면 PD가 개인적 판단 하에 방송사에 피해를 끼친 거니 방송사게 제작진에게 업무방해를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능은 기본적으로 과장을 한다는 게 깔려 있다. 이 정도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시청자를 기만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결국 현재 예능에서 이러한 일의 반복을 막기 위한 방법은 제작진의 자정 노력과 사실 확인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뿐이다.

정덕현 평론가는 "'아맛' 해명글을 보니 명쾌한 재발 방지 대책이 없다. 단순히 시즌 종료라고 말했다. 상황이 괜찮아지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것을 암시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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