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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스토킹 범죄 방관…'세모녀 살인' 비극 낳았다

등록 2021.04.15 16: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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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재현 기자 = "일일이 답변을 못할 것 같은데 일단 양해를 구합니다."

지난 9일 포토라인 앞에 선 '노원구 세모녀 살인 사건' 피의자 김태현. 그는 심경을 묻는 질문에 첫마디를 이렇게 뱉었다.

수십 대의 카메라들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당황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자신을 이해해달라며 입을 뗀 것이다.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도, 과거를 후회하는 순간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했다. 경찰에게 먼저 팔을 놓아달라고 말한 이후 카메라들과 눈을 마주치며 무릎을 꿇었다. 마스크를 벗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맨 얼굴을 스스로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눈앞의 상황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의 행동 같았다.

이는 단지 포토라인에서만의 행동이었을까. 주어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김태현의 범행 동기와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호감을 갖고 있던 피해자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뒤를 쫓아다니며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의 시발점은 상대방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스토킹'이었다.

상대방을 통제하려다 못해 해쳐버리는 스토킹은 그 자체로 엄연한 범죄고 이번 사건처럼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강한 처벌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차원의 예방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스토킹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았다. 스토킹을 당했다는 신고 건수가 2018년 2772건, 2019년 5468건, 지난해 4515건으로 늘어왔는데도 말이다. 

상응하는 처벌법도, 확실한 예방책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범죄'로 분류되면서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변화의 움직임은 있다. 지난달 일명 '스토킹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반의사불벌 조항이 남아있는 등 여전히 피해자를 보호하는 대책은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지점이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는 법은 오히려 피해자를 숨게 만든다. 피해자들은 보복을 두려워하며 신고하는 것조차 꺼려한다. 이런 이유로 한 전문가는 스토킹을 '암수범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는 곧 피해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돼 범죄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초점을 맞춰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피해자를 보호해 더이상 우리 주변의 '또다른 김태현'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게 해야할 시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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