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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돌'...갤러리현대, 박현기 'I’m Not a Stone'

등록 2021.04.20 15:30:00수정 2021.04.20 19: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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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갤러리현대 아트 빌보드 프로젝트 박현기 '무제'.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2021.4.21. photo@nwsis.com

[서울=뉴시스] 갤러리현대 아트 빌보드 프로젝트 박현기 '무제'.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2021.4.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둥근 삼각형 모양의 돌멩이가 마치 사람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건물 외벽에 설치된 거대한 흑백 사진.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의 '아트 빌보드 프로젝트'로 미디어아티스트 박현기(1942~2000) 작품이다.  ('아트 빌보드 프로젝트'는 갤러리현대의 '갤러리 밖의 갤러리'로 지난 겨울 사진가 이명호의 "유산#3- 서장대'를 시작으로 선보였다.)

흑백 사진 제목은 '무제'. 박현기가 1981년경에 촬영한 것으로, 평생 돌을 작품의 주재료로 사용한 작가의 미학적 사유와 예술적 시도를 보여준다.
 
사진 중앙에는 카메라 삼각대 위에 삼각형의 돌이 비디오카메라처럼 놓여 있고, 후경은 작가의 활동 무대였던 대구 시내 풍경이다.

1981년 대구 맥향화랑의 개인전에서 선보인 '도심지를 지나며'를 제작하며 촬영되었다. 당시 작가는 16m길이의 거대한 트레일러 위에 거울이 부착된 3m가 넘는 인공 바위를 싣고 대구의 도심지를 40여분 간 횡단하는 기념비적 퍼포먼스 '도심지를 지나며'를 실행했다.

작은 돌에도 거울을 부착하고 여기에 비친 사람과 도시의 풍경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돌이라는 무생물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돌을 삼각대에 올리거나 창틀에 두고 돌끼리 쌓아 도시를 조망하도록 했고, 그 시각적 효과를 촬영해 사진으로 남겼다.

박현기는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과는 결이 좀 다른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불린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1970년대부터 돌과 (모니터 속) 돌을 쌓은 ‘비디오 돌탑’시리즈를 선보였다.

 '관념적인 비디오 아트의 독창적 세계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돌과 물, 나무 같은 자연물과 인공의 비디오 영상을 병치한 ‘비디오-설치’ 작업을 전개했다. 반면 그의 작품 세계는 비디오 아트에 국한하지 않는다. 2000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진, 조각, 설치, 퍼포먼스, 판화, 드로잉, 포토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폭넓게 실험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서울=뉴시스] 갤러리현대 박현기 개인전 포스터.

[서울=뉴시스] 갤러리현대 박현기 개인전 포스터.



21일 갤러리현대에서 박현기 개인전 'I’m Not a Stone(아임낫어스톤)'이 개막했다.

'나는 돌이 아니다'라는 전시 제목처럼 박현기의 돌들은 쌓여있거나 무리지어 잔잔한 파동을 전한다. 거대한 돌덩이 하나가 철판과 맞물린 이우환의 돌과는 다른 분위기다.

박현기가 돌에 천착한 건 성황당 돌무더기 풍경때문이었다. 한국전쟁 피난길 고갯마루에서 마주한 돌무더기는 그에게 깊게 각인되었고 이후 돌들이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분신같은 존재가 됐다.

이번 전시는 박현기의 기념비적 대표작 10점을 재조명한다.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수식에 가려진 그의 방대한 예술 세계에 주목했다.

전시장에 강가의 돌을 그대로 옮겨와 인간과 미술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성찰한 '무제'부터 '만다라', 'TV 돌탑' 등이 사후 최초로 공개됐다.

갤러리현대는 "이번 대표작중 'TV 돌탑' 등 3점은 유족과 미술평론가, 테크니션으로 구성된 ’박현기 에스테이트’의 자문과 검수를 거쳐 재제작했다"며 "이 전시는 아시아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아티스트로 재평가되고 있는 박현기의 미술사적 성취와 위상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혔다. 5월30일까지.
[서울=뉴시스] 박현기, Untitled, 1983(2015년 재제작), 돌과 마이크, 스피커, 소리, 가변크기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서울=뉴시스] 박현기, Untitled, 1983(2015년 재제작), 돌과 마이크, 스피커, 소리, 가변크기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서울=뉴시스] 박현기, Untitled, 1988(2021년 재제작),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모니터, 돌, 가변크기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서울=뉴시스] 박현기, Untitled, 1988(2021년 재제작),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모니터, 돌, 가변크기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박현기는 누구?

박현기는 1942년 일제강점기 일본 오사카의 한국인 가정에서 아버지 박준동과 어머니 이갑수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5년 해방 직전 그의 가족은 고향인 대구로 돌아와 정착했다.

초등학교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주를 보였던 그는 고등학교 때는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각종 미술대회에서 수상했고 1962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이후 건축학과로 전과하여 1967년에 졸업한 그는 1970년대 초 대구로 귀향하여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했다. 인테리어 사업으로 경제적 안정성을 얻고 더욱 실험적인 미술 작업에 몰두했다.

1974년부터 1979년까지 5회에 걸쳐 진행된 '대구현대미술제'의 창립 멤버로 이강소 김영진 최병소 등과 함께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서울=뉴시스] 박현기, 만다라 시리즈, 1997-1988,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캔톡, 가변크기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서울=뉴시스] 박현기, 만다라 시리즈, 1997-1988,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캔톡, 가변크기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1978년 서울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작고 후 15년이 지난 2015년에 그가 남긴 풍성한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조망한 회고전 '박현기 만다라'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렸다.

갤러리현대 대구문화예술회관 가마쿠라갤러리 박영덕화랑 선재미술관 인공화랑 시나노바노시화랑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맥향화랑한국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 2000년 광주비엔날레 1980년 파리비엔날레 1979년 상파울로비엔날레 '국제 비디오아트 페스티벌'등 국내외 기획전에 참여했다. 1999년 8월경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2000년 1월13일 별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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