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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오래된 다방 손님이 된듯한 기분…연극 '다방'

등록 2021.04.22 1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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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연극 '다방'. 2021.04.22. (사진 = 극단 백수광부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다방'. 2021.04.22. (사진 = 극단 백수광부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최근 개막한 연극 '다방'은 세월을 켜켜이 쌓는 근현대사극이다. '낙타상자' 등으로 알려진 중국 현대 작가 라오서의 '찻집'을 우리 역사에 맞게 번안했다.

1938년 일제강점기부터 혁명 후인 1961년, 직선제 이후 올림픽을 앞둔 1988년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묵묵히 견녀온 다방(茶房)에 대한 이야기다.

입장부터 실제 오래된 다방에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다방 문처럼 생긴 입구를 열고 들어가면, 다방 주인 '한성덕'은 사람 좋은 얼굴로 손님을 맞이한다. 객석은 무대를 중심에 두고 양 갈래로 나눠진다. 무대 소품인 테이블과 의자 뒤에 객석이 놓여 있어 마치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2시간 동안 점점 머리가 희끗해지는 한성덕을 보고 있으면, 관객도 실제 삶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성덕은 위인이 아니다. 사람은 좋지만 일본 순사, 악질 경찰 등에게 적당히 뇌물을 주고 난처한 상황을 무마하는 소시민이다. 다방 안에서 일본 앞잡이에 딸을 파는 소작농을 봐도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도 다방을 운영하며 삶을 살아가는 건 만만치 않다. 얼굴과 직업만 바뀔 뿐,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이들은 항상 존재한다.

수당을 받겠다며 죄 없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비리 경찰, 시민들을 마구 대하는 폭력 군인, 정부 일을 한다며 으스대는 용역 깡패 그리고 다방을 함부로 접수하는 재벌까지….

한성덕은 버티고 버티지만, 끝까지 다방을 지켜내지는 못한다. 다방과 함께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그 역시 건너간다. 

[서울=뉴시스] 연극 '다방'. 2021.04.22. (사진 = 극단 백수광부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다방'. 2021.04.22. (사진 = 극단 백수광부 제공) [email protected]

그럼에도 '다방'에서 '평범함의 위대함'을 본다. 자기 자리에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안간 힘을 쓰는 이들의 노력을 본다. 다방의 단골 손님이었던 '김이재'와 '고병국'도 그런 이들이었다. 양반 출신인 김이재는 힘을 잃는 가운데도 불의에 맞섰고, 고병국은 나라를 부강하기 위해 기업을 운영했다.

하지만 한성덕처럼 김이재와 고병국의 말년 역시 평안하지 않다. 세 사람은 막바지에 곧 없어질 다방에서 향을 피우며 서로 살아온 삶을 위로한다. 그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일종의 '진혼굿'이다.

연극은 끝자락에 세월호, 박사방 등 1988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국내 사건·사고를 영상으로 훑는다. 우리 사회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음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동시에 이런 일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지도 생긴다. 사적 영역에서 추구한 품위가 꼭 행복으로 귀결되지 않더라도, 공적 영역에서 함께 기억할 때 공동체는 특별해진다. 연극은 그 행위의 하나다. '다방'은 그걸 증명한다.

'다방'은 극단 백수광부 25주년 기념공연 첫 번째 프로젝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사업 선정작이기도 하다. 윤성호 작가가 번안을 맡고, 극단 백수광부의 대표인 하동기가 연출했다.

한성덕 역의 유성진을 비롯 김경희, 이민애, 민병욱, 박정민, 홍상용 등의 출연 배우들이 모두 호연한다. 작품에 대한 입소문이 나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오는 25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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