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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언의 책과 사람들]'중국의 붉은 별'이 한국에 출간되기까지

등록 2021.05.0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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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중국의 붉은 별(사진=한상언 제공)2021.05.0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중국의 붉은 별(사진=한상언 제공)2021.05.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미주리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 1905-1972)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실무 경력을 쌓기 위해 뉴욕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돈을 싸들고 부나방처럼 모여드는 사람들로 흥청거리는 월스트리트의 모습에 호기심을 갖게 된다.

수중에 가지고 있던 돈을 주식시장에 투자하기로 한 그는 욕망이 쌓아올린 거대한 탑처럼 하늘로 치솟는 주가에 경탄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낀다. 고향으로 돌아갈 무렵 그의 주머니에는 원금의 몇 배나 되는 돈이 들어와 있었다.

스노우가 뉴욕을 떠난 얼마 후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대공황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이 월스트리트의 폭락장 이전에 주식으로 돈을 번 스노우는 대학을 졸업하고 수중의 돈을 가지고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는 아시아 여러 나라를 다니며 그 나라에 대한 기행문을 써서 신문사에 투고 하고 나중에 그 글을 책으로 묶어 낼 생각이었다. 상하이에 도착한 그는 그곳 영사관에 근무하던 여인 엘렌 포스터(Helen Foster, 1907-1997, 필명 : 님 웨일즈)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중국전문 기자로 남게된다.

그가 중국에 머물던 시기는 일제의 중국침략이 본격화 되던 시기였다. 1차 상하이사변이 일어나 일본의 영향력이 상하이까지 미치게 되고 만주사변을 통해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이 성립되었다. 여기에 공산주의 혁명가들을 소탕하기 위한 국민당군의 총공세가 시작되면서 이를 피하기 위한 홍군의 대장정이 있었다.

베이징으로 옮겨 온 그는 좌익계통의 인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1936년 쑨원의 부인인 쑹칭링의 소개장을 가지고 시안으로 가게 된 그는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대장정을 마치고 근거지로 삼은 연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연안에서 그는 이름만 알려진 중국공산당의 새로운 지도부와 만난다. 마오쩌둥을 비롯해 여러 혁명의 지도자들과 인터뷰하고 연안에서의 생활을 경험한 후 베이징으로 돌아 와 그들과 나눴던 이야기와 그들의 생활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가 쓴 원고는 영국으로 보내져 빅터 골란츠(Sir Victor Gollancz)가 세운 런던의 레프트 북 클럽(Left Book Club)을 통해 1937년 출간된다.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모습을 서방세계에 알린 르뽀 문학의 기념비적 저작인 '중국의 붉은 별'이 탄생하게 된 이야기이다.

오랫동안 남한 사회에서 마오쩌둥은 1·4후퇴로 기억되는, 한국전쟁의 승리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를 좌절시킨 원흉이자 지금의 분단 상황의 고착화를 만들어낸 용서할 수 없는 인물로 기억되었다. 북한과 김일성에 대해 남한 사회가 지닌 증오와 적의는 그대로 마오쩌둥에 투사되었다. 마오쩌둥이라는 이름은 남한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공산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1930년대 중반 중국공산당의 지도부에 대해 서방언론이 알지 못했던 것처럼 1970년대 죽의장막을 헤치고 서방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낸 중국에 대해 우리 사회는 그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리영희 선생이 쓴 '8억인과의 대화'(1977), 태창문화사에 나온 '주은래'(1979), '강청'(1979) 등의 번역서는 중국에 대해 알려주는 유의미한 자료였다. 미중간의 해빙 무드에서 나온 현대 중국에 관한 책들은 중국에 대한 정보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채워주었다.

1985년 두레출판사에서 신홍범의 번역으로 출간된 '중국의 붉은 별'은 중국공산당의 중심인물들이 서방에 알려지게 된 그 첫 순간을 우리 독자들에게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책을 번역한 신홍범은 조선일보 사태를 촉발한 인물이었다. 1974년 조선일보 편집위원의 가필을 통해 실리게 된 유정회 국회의원의 칼럼이 언론의 중립 의무를 저버렸다는 이유로 편집국장의 해명을 요구하자 회사에서는 그를 회사의 위계를 해쳤다는 이유로 해직시켜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해직자 복직 투쟁은 결국 30여명의 기자들이 집단 해고당하는 일로 번지게 된다. 그때 탄생한 것이 바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였다.

그 초대위원장이 두레출판사를 세운 정태기였다.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은 조선투위 출신의 정태기와 신홍범의 손으로 만들어져 우리 사회에 소개된 책이다.

독서인으로 에드가 스노우의 책을 알게 된 것과 책을 수집하면서 1937년 영국에서 발행한 '중국의 붉은 별' 초판을 소장하게 된 것은 행운이라 말 할 수 있다.

어느 무협소설 보다도 흥미로운 혁명가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흥미진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들춰봐야 할 책이기에 그렇다.

▲한상언영화연구소대표·영화학 박사·영화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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